① 흐물흐물 연체동물은 뼈가 없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죠!

2016.09.30 21:25 입력 2016.09.30 21:30 수정
글·사진 황선도 한국수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

오징어가 뼈대 없는 집안이라고?

물속에서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갑오징어(왼쪽 사진)와 우리가 흔히 오징어라 부르는 살오징어. 오징어와 꼴뚜기 다리는 10개이고 문어, 낙지, 주꾸미는 8개다. 오징어 다리 중 유독 긴 2개의 다리는 먹이를 잡거나 교미할 때 암컷을 끌어안는 데 사용한다.  FIRA 김광복 제공

물속에서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갑오징어(왼쪽 사진)와 우리가 흔히 오징어라 부르는 살오징어. 오징어와 꼴뚜기 다리는 10개이고 문어, 낙지, 주꾸미는 8개다. 오징어 다리 중 유독 긴 2개의 다리는 먹이를 잡거나 교미할 때 암컷을 끌어안는 데 사용한다. FIRA 김광복 제공

흑산은 자산이다. 김훈의 소설〈흑산(黑山)>에서 손암 정약전이 창대와 마주한 자리에서 말한다. “자(玆)는 흐리고 어둡고 깊다는 뜻이다. 흑(黑)은 너무 캄캄하다. 자는 또, 지금, 이제, 여기라는 뜻도 있으니 좋지 않으냐. 너와 내가 지금 여기에 사는 섬이 자산이다.(중략) 자 속에는 희미하지만 빛이 있다. 여기를 향해서 다가오는 빛이다. 이 바다의 물고기는 모두 자산의 물고기다. 나는 그렇게 여긴다”라고 했다. 그 자산에도 오징어가 살았다. 그래서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오징어가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오적어(烏賊魚) : 큰놈은 몸통이 한 자 정도이다. 몸은 타원형으로서 머리가 작고 둥글며,(중략) 머리끝에 입이 있다. 입 둘레에는 여덟 개의 다리가 있어(중략) 이것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물체를 거머잡기도 한다. 그 발 가운데 특별히 긴 두 다리가 있다.(중략) 이 오징어의 살은 대단히 무르고 연하다. 알(卵)이 있다. 가운데 있는 주머니에는 먹물이 가득 차 있다.(중략) 맛은 감미로워 회나 마른 포 감으로 좋다. 그 뼈는 곧잘 상처를 아물게 하며 새살을 만들어 낸다.’ 역시 관찰력이 뛰어나다. 형태뿐만 아니라 행동까지 제대로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이 글을 읽다 보면, 약전은 일을 거들어주던 창대한테 속았다는 생각이 든다. 오징어의 다리가 여덟 개라고 기술했는데, 다리가 여덟 개인 놈들은 문어나 낙지, 주꾸미와 같은 팔완류(八腕類, Octopod)이다. 오징어는 갑오징어나 꼴뚜기와 함께 다리가 열 개인 십완류(十腕類, Decapod)이다. 창대가 다리 두 개를 뜯어먹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위대한 손암 선생께서 관찰을 잘못할 리가 없지 않은가.

동해바다 깊은 곳에서 잡아 올린 대형 날개오징어.  FIRA 김광복 제공

동해바다 깊은 곳에서 잡아 올린 대형 날개오징어. FIRA 김광복 제공

<자산어보>에는 오징어의 유래에 대해서도 적혀있다. ‘날마다 물 위에 떠 있다가 날아가던 까마귀가 이것을 보고 죽은 줄 알고 쪼으려 할 때 발로 감아 잡아 가지고 물속에 들어가 잡아먹는다고 했다. 그래서 오적(烏賊)이라는 이름이 주어졌다고 했다. 까마귀를 해치는 도적이라는 뜻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오징어란 이름은 오적어에서 변화됐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회자된 지 오래다. 그런데 글을 다시 읽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오적어는 현재 우리가 말하는 오징어, 즉 ‘살오징어’가 아닌 듯하다.

살오징어와 달리 뼈(연갑)를 가진 갑오징어. <자산어보>에 나오는  ‘오적어(烏賊魚)’가  갑오징어다.

살오징어와 달리 뼈(연갑)를 가진 갑오징어. <자산어보>에 나오는 ‘오적어(烏賊魚)’가 갑오징어다.

<자산어보>에 기술되었듯이 상처를 아물게 하고 새살을 만들어 내며 해표소(海 魚票 消)라 기록된 그 뼈는 갑오징어의 연갑(軟甲)을 일컫는다. 뼈 없이 흐물거리는 오징어 따위에도 속 깊은 곳에 뼈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선생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각설하고, 오적어라 표기하고 오징어라 부르는 놈은 갑오징어다. 그렇다면 현재 살오징어에 해당하는 오징어는 당시 무엇이라고 불렀을까? <자산어보>에 고록어(高祿魚)라 부르며 귀중히 여기는 놈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고록은 꼴뚜기 종류를 부르는 사투리로 쓰이니, 머리가 복잡해진다.

우리가 흔히 울릉도 오징어라 부르는 살오징어.

우리가 흔히 울릉도 오징어라 부르는 살오징어.

오징어는 문어, 낙지와 함께 몸에 골격이 없고 유연한 연체동물이며, 그중 ‘머리에 다리 달린 동물’이란 뜻의 두족류에 속한다. 오징어 신체구조는 배-머리-다리의 순서로 되어 있다. 우리가 흔히 오징어의 머리라고 부르는 부위는 실제로는 오징어 배다. 배의 횡단면은 원통형으로 내장과 먹물 주머니가 들어있으며, 이 몸통에 일명 오징어 귀라고 부르는 삼각형의 지느러미가 붙어있다. 지느러미는 헤엄칠 때 방향키 역할을 하는데, 비행기의 꼬리날개와 같다. 오징어 다리는 10개라고 하는데, 이 중 유달리 긴 2개는 팔에 해당하는 촉완(觸腕)이다. 이 긴 팔은 먹이를 잡을 때나 교미할 때 암컷을 힘껏 끌어안는 데 사용한다. 수컷의 다리가 변형되어 정포를 암컷에 옮겨주는 교접완(交接腕)은 생식기의 역할을 한다. 다리와 배 사이에 눈과 입이 달린 부분이 있는데, 머리다. 결국 머리 위에 다리가 달린 형상이다. 어릴 적 오징어 눈이라고 하며 까서 먹던 키틴질의 그것은 눈이 아니고 오징어 이빨이다. 일반적으로 물고기는 머리를 앞쪽으로 해서 유영을 하지만, 오징어는 꼭 그렇지는 않다. 오징어는 물을 뿜어내는 수관인 누두(漏斗)의 방향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전후좌우 어디로든지 헤엄칠 수가 있다.

문어

문어

세상의 암컷은 불행하다고 하지만, 특히 오징어 암컷은 가엾기 짝이 없다. 성숙한 오징어 수놈은 교미 시기가 되면 몸뚱이가 오색의 영롱한 빛으로 변해 음흉스럽게도 소녀 오징어를 노려 겁탈한다. 암컷을 발견한 수놈은 열개의 팔다리를 번쩍 들어 펴고는 흡사 무도회에서와 같이 암컷 앞에서 춤을 추듯 빙빙 돌며 구혼을 한다. 수컷의 구혼을 받은 암컷은 미성숙한 어린놈인지라 힘없이 수컷이 하자는 대로 몸을 맡긴다. 수놈이 팔짱을 끼어 잡는 순간 암놈의 몸도 화려하게 색을 바꾸고, 둘은 물밑 안전지대로 서서히 이동한다. 이때가 수컷의 정자가 암컷에게 옮겨지는 순간이다. 암놈은 수란관에 캡슐 형태의 정자주머니를 보관했다가 난자가 성숙한 뒤에야 수정하여 부화시키고 삶의 최후를 맞는다. 그 삶이 길어야 1년이니 원통하고 억울한 것이 암컷 오징어 일생이다. 그런데 최근 학설에 의하면 오징어는 짝짓기를 시도할 때 반짝거리는 시각적 신호로 의사소통을 통해 암컷이 주도적으로 수컷의 정자를 받을지 결정한다고 하니 확인해 볼 일이다. 시대가 바뀌어 여성의 힘이 점점 세지고, 오히려 불쌍한 것은 남성이 아닌가 싶다.

물회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치물회를 선호한다. 육질이 물컹거리지 않고 씹는 식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한치는 다리가 짧아 한치(3.3㎝)밖에 안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그 생물학적 실체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가 흔히 ‘한치’라고 부르는 것들은 오징어과(Family Loliginidae)에 속하는 화살오징어(Loligo bleekeri), 창오징어(Loligo edulis), 한치오징어(Loligo chinensis)라는 종들을 통칭한다. 다만 이들 세 종류의 오징어가 사는 곳이 조금씩 다르다. 화살오징어는 동해 남부 해역에서 봄철에 잡히고, 제주 해역에서는 여름철에 창오징어가 많이 잡힌다. 화살오징어는 창오징어와 비교해서도 꼬리 끝이 아래로 처져 있고 더 슬림하게 보여 꼬리가 뾰족한 게 가장 두드러진다. 화살오징어의 지느러미는 몸통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긴 마름모꼴이다. 이런 형태 때문에 물속에서 유영하는 모습이 마치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날렵하다. 화살오징어는 ‘창’보다 뾰족한 ‘화살촉’같이 생겼다 해서 붙인 이름이다. 나라마다 부르는 이름은 다르지만 의미는 매한가지이다. 영어로는 애로 스퀴드(Allow squid), 일본명도 같은 의미인 야리이카(ヤリイカ, 槍烏賊)이다.

일명 ‘호래기’라고 부르며, 잡은 즉시 한입에 호로록 먹어치우는 작은 오징어는 반딧불오징어(Enoploteuthis chuni)나 반원니꼴뚜기(Loliolus japonica)를 일컫는 것 같다. 지역마다 작고 여린 오징어를 통칭하기도 한다. 외신에서나 희귀종으로 보도될 만한 대형 오징어가 동해안에서도 가끔 잡히는데, 살오징어목에 속하는 날개오징어(Thysanoteuthis thombus)이다. 어민들은 종종 1m 정도로 큰 날개오징어를 대포알처럼 크다고 해서 ‘대포알오징어’ 또는 ‘대포한치’라 부르기도 한다. 현지에서 주민들이 부르는 방언은 학술적으로 공식화한 표준명과는 차이가 있는데, 방언이란 자연발생적인 특성상 유사한 여러 종을 싸잡아 부른다. 그러니 굳이 고쳐서 가르치려 할 필요는 없다. 다만 혼동을 줄 경우에만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리가 열 개인 두족류로 갑오징어목(Order Sepioidea), 갑오징어과(Family Sepiidae)에 속하는 참갑오징어(Sepia esculenta)가 있다. 몸속에 서핑보드 모양의 석회질로 된 연갑을 가지고 있어 우리가 흔히 갑오징어라고 말한다. 연체동물 중 가장 뼈대가 있는 집안의 자식이다. 한때 인터넷상에서 게임 캐릭터를 닮은 귀여운 모습으로 인기몰이를 했던 귀꼴뚜기(Euprymna morsei)를 포함한 꼴뚜기류가 언뜻 보기에 비슷해 보이는 살오징어목에 속하지 않고 갑오징어목, 꼴뚜기과(Family Sepiolidae)에 속한다고 하니 분류체계는 오묘하다. 볼품없고 보잘것없는 것의 비유로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고 하지만, 알고 보면 갑오징어 족보에 올려져 있는 뼈대 있는 가문이다. 같은 두족류지만 다리가 여덟 개인 팔완류로 문어, 낙지, 주꾸미는 문어목(目, Order Octopoda)에 속한다. 이렇게 연체동물은 세분화되고 복잡하여 분류체계를 공부하는 일이 쉽지 않다.

낙지

낙지

오징어, 문어, 낙지 등의 두족류에는 시커먼 먹물 주머니가 있다. 위험에 처했을 때 먹물을 내뿜고 도망가는 것을 종종 보았을 것이다. 이 오징어의 먹물로도 과연 붓글씨를 쓸 수 있을까? 우리가 붓글씨를 쓰는 먹물은 탄소가루로 만든 것이어서 종이에 써지지만, 오징어가 뿜는 먹물은 단백질의 일종인 멜라닌 색소라서 같은 까만색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탈색된다. 금방 쓴 상태도 먹물처럼 검지 않아 글씨 쓰는 먹물로 사용하기 어렵다. 그래도 옛날 일부 선비들은 오징어 먹물로 글씨를 쓰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오징어의 먹물로 글씨를 쓰면 해를 지나서 먹이 없어지고 빈 종이가 된다. 사람을 간사하게 속이는 자는 이것을 써서 속인다’고 했다. 소위 배웠다는 사람들을 얕잡아보는 말로 ‘먹물’이란 표현을 쓰곤 한다. 조금 안다고 말만 무성하고 정작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는 약삭빠르게 뒷걸음질하는 기회주의 꼴을 보고는 ‘먹물근성’이라고 한다. 오징어 먹물이 세월과 함께 바래듯, 식자들에게 스며있는 먹물근성도 시간이 지나 성숙해지면서 저절로 빠졌으면 좋겠다.

정약전의 <자산어보> 친필.

정약전의 <자산어보> 친필.

우리 집안은 증조할아버지가 정신적 중시조 같은 존재다. 증조부께서 내 어릴 때 “개화되면서 상것이 없어졌지, 양반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상반을 구분하자는 봉건적인 사고라기보다는 사람의 도리를 다하고 살지 않는 세태를 걱정하는 말씀으로 나는 알아들었다. 돈 좀 있다고 행세하는 사람, 권력이 있다고 완장 차는 사람이 넘쳐나는 작금의 시대를 예견하신 듯하다. 지금 인간세계에는 족보가 무의미해졌지만, 물고기 세계에는 여전히 가문이 남아있다. 일명 ‘분류체계’라는 것인데, 종 분화 과정에 따른 족보인 셈이다. 뼈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연체류에도 뼈가 남아있고, 뼈대로 갑옷 무장한 갑각류 속에는 뼈가 없으니 눈에 보이는 세상이 다 진실은 아니다.

▶필자 황선도

[전문가의 세계 - 漁! 뼈대 있는 가문, 뼈대 없는 가문] ① 흐물흐물 연체동물은 뼈가 없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죠!


해양학과 어류생태학을 전공했고, 수산자원생태로 이학박사가 된 토종과학자이다. 20년간 국립수산과학원에서 일하면서 7번이나 이사하는 등 주변인으로 살았으나, 덕분에 어느 바닷가든지 고향으로 여긴다. 지금은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으로 해양생태계 복원과 수산자원 조성을 위해 일하는 ‘물고기 박사’다. 50여편의 논문을 썼고 저서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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