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연금 등에 고수익 약속…이익은 ‘코레일이 보장’ 뜻밖의 구조
정부가 철도 경쟁체제 도입을 명분으로 수서발 고속철도(SR)를 도입하면서 사학연금 등 주요 투자자에게 ‘위험 없는 고수익’을 보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SR이 목표로 한 실적을 내지 못할 경우 대주주인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손해를 입지만 나머지 주주들은 이익이 보장되는 구조여서 왜 이 같은 무리한 계약이 체결됐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26일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발간한 ‘2016년 철도업무편람’을 보면 국토부는 SR에 투자할 기관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행사 시기를 투자 후 3년6개월~8년6개월로 하고 수익률 5.6%를 보장하는 주식매수청구권(풋옵션)을 부여하는 조건을 걸었다. 그 결과 사학연금·산업은행·기업은행을 투자기관으로 유치했다.
이에 따라 2014년 12월 출자한 사학연금 등은 내년부터 2023년까지 풋옵션을 행사할 경우 투자원금에 연복리 5.6%를 가산한 금액을 지급받을 권리를 보장받았다. 현재 SR은 코레일이 41%로 가장 많은 지분을 갖고 있고 사학연금(31.5%), IBK기업은행(15%), 산업은행(12.5%)이 나머지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문제는 투자기관의 이익을 SR이 아니라 코레일이 보증한다는 점이다. 투자기관이 손실 위험 없이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SR이 져야 할 손해분을 코레일이 부담하는 구조에서 생긴다. 투자기관 출자액과 최소 보장 수익률 5.6%를 기준으로 만기(8년6개월) 시 풋옵션을 행사한다고 가정하면 이들 투자기관은 약 869억원의 수익을 거두는 것으로 분석됐다. 코레일은 이들 투자기관이 보유한 지분 59%에 대해 원금과 투자수익을 합해 2344억원을 지급해야 한다.
물론 이들 기관이 만기에 보유주식 전량에 대해 풋옵션을 행사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8년6개월이 지나면 해당 주식은 매도 등 거래가 가능한 일반적인 비상장주식이 된다. 투자기관 입장에서는 배당 추이 등 손익을 따져 주식 보유 여부를 판단하겠지만 위험부담 없이 가장 유리한 경우만 골라 선택하는 ‘체리피킹’도 가능하다.
사학연금 등 투자기관에서는 SR에 자금을 빌려줄 유인도 생긴다. SR이 이자비용을 늘리면 배당이 가능한 이익이 줄지만, 투자기관 입장에서는 이미 수익이 보장돼 있을 뿐만 아니라 채권에 대한 이자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SR 실적이 좋아지면 코레일의 부담은 줄어드는 구조지만, 이 역시 코레일에는 부담이다. SR의 실적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철도 이용객이 SR로 넘어갔다는 뜻으로, 사실상 고속철도에서만 운영이익을 내고 있는 코레일의 이익이 줄어듦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철도 경쟁체제 도입을 명분으로 코레일을 좌지우지하는 국토부가 무리한 계약을 체결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손혁 계명대 회계학과 교수는 “사학연금 등 공공자금을 운용하는 투자기관은 손해를 최대한 줄이는 계약을 체결할 유인이 있지만 코레일이 이런 계약을 체결한 것은 의외”라며 “투자자에게 이 정도 혜택을 주는 것은 일반 기업에서는 가능하지 않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