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째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베네수엘라에서 16일(현지시간) 개헌 찬반 투표가 진행되던 중 총격이 발생해 1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추진 중인 개헌에 대한 찬반을 묻는 이날 투표는 개헌 계획에 반대하는 우파 야권 연합인 국민연합회의(MUD) 지도부가 자체적으로 추진한 비공식 국민투표로 사실상 ‘반정부’ 투표다. 법적 효력은 없지만 표심으로 정부를 압박하고 개헌 독주를 막아내겠다는 의도가 담겼다. 그러나 마두로 대통령은 야권의 투표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날 베네수엘라에서는 오는 30일 예정된 제헌의회 구성 투표를 위한 예행 연습 투표가 열렸다. 야권 투표의 의미를 축소시키려는 맞불 투표다.
연일 이어지는 시위로 지금까지 최소 93명이 사망하고 1500명이 부상당했다. 이날 선거에서도 사상자가 나왔다. 현지 일간 엘우니베르살은 수도 카라카스 외곽 바르가스주 카티아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무리가 투표를 하러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을 향해 총격을 가해 61세 여성 간호사 지오마라 에스콧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고 보도했다. 부상자 중 1명도 흉부에 총격을 받아 위중한 상태로 알려졌다. TV와 소셜미디어 등에 올라온 사건 당시 영상을 보면 투표소가 설치된 교회 인근에 갑자기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이 들이닥치고 총성이 들린다. 투표를 하러 모인 군중들이 비명을 저지르고 이곳저곳으로 도망치며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야당 의원 호르헤 밀란은 이날 트위터에 “투표를 방해하려는 무리가 사람들을 공격했다”고 적었다. 또다른 야당 의원 호세 마누엘 올리바레스는 엘우니베르살에 “바르가스주에서 비정상적인 일이 벌어졌지만 투표에 참가해 자기 권리를 행사하려는 시민들이 상황을 통제했다”고 말했다. 야당인 정의우선당 소속으로 MUD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는 카를로스 오카리스 수크레 시장은 “너무나 비탄스럽고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카티아는 수도 카라카스 외곽의 가난한 도시로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 시절부터 좌파 집권 정부에 대한 지지가 높았다.
야권은 이날 투표에 720만명 가까이 참가했다고 밝혔다. 2015년 총선 때 야권을 지지했던 770만명이나 2013년 대선에서 마두로 대통령에게 반대표를 던진 730만명에 못미치는 숫자다. 야권은 유권자 2000만명 중 1000만명 이상이 투표에 참가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전국 투표소가 2300개 정도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720만명 참가도 높은 수준이라는 평가다. 통상적인 선거 때 설치되는 투표소는 1만4000개가 넘는다. 야권은 이날 투표 참가자 98%가 개헌에 반대하고, 2019년 예정보다 먼저 조기 대선을 치러야 한다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4시로 투표가 끝난 직후 마두로 대통령은 TV 논평을 냈지만 투표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대신 야권을 향해 “평화로 돌아가자”면서 “헌법을 존중하고, 자리에 앉아 대화하기를 요청한다”고 말했다. 앞서 마두로는 야권의 국민투표에 대해 “그들은 자체 회의 만으로 투표를 만들었다”면서 “선거 규정도 확인 절차도 없다”고 평가했다. BBC는 마두로가 투표 자체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려 했다고 전했다.
친정부 성향 국영매체 텔레수르도 이날 야권 투표 보도를 피했다. 대신 제헌의회 예행 연습 투표가 예상을 뛰어넘는 투표율을 기록했다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카티아 총격 사건에 대해서도 야권의 개헌찬반 투표가 아니라 예행연습 투표소 근처에서 벌어진 사건이라고 썼고, 상황이 분명하지 않다고 전했다. 야권의 개헌 투표 자체를 없었던 일로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