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최근 고구려 왕족을 모신 사이타마현(埼玉)의 고려(고마)신사를 찾았습니다.
“일본 왕실에 한국계 피가 흐른다”고 고백했던 일왕이기에 남다른 주목을 받았습니다. 과거사를 외면하고 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행보와는 확연히 대조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냥 ‘헤헤’ 거릴 것은 아닙니다. 이 신사가 일제강점기에 ‘내선일체의 성지(聖地)’로 부각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필자가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고려신사’ 관련 기사를 찾아보았더니 기사 앞에 빠짐없이 ‘내선일체’라는 수식어가 붙었습니다.
고려신사는 고구려 멸망 후 일본 조정이 마련해주었다는 고구려 유민촌을 다스린 고려약광(高麗若光)을 모신 신사입니다. 평범했던 이 신사가 1919년 3·1운동 이후 갑자기 유명한 답사코스로 각광받습니다. 조선총독부는 ‘내지시찰단’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의 각계인사들을 일본 본토에 파견한 이후 고려신사는 단골 답사코스가 됐습니다.
희한한 일은 총독부 정무총감을 지낸 고마다 히데오(兒玉秀雄) 백작 등 본토의 일본인들이 고려신사 후원회(봉찬회)까지 결성했다는 것입니다. 후원회 이사인 다케이 후미오(武井文夫)의 언급이 소름끼칩니다.
“고구려 망명객을 잘 대접해서 동화시킨 이 역사사실을 널리 알리는 것이야말로 내선융화입니다. 고려신사는 내선일체의 살아있는 모형이자 증거입니다.”
1940년 4월5일 식목일을 맞아 조선신궁은 고려신사에 오엽송과 개나리를, 고려신사는 조선신궁에 벚꽃나무를 사이좋게 선물했습니다. 그런데 매일신보의 제목은 ‘내선일체의 신목(神木) 교환’이었습니다. 양측은 “오늘도 내선인(일본과 조선인)이 손잡고 가야 한다”(조선신궁) “황국의 은혜에 고려왕의 영혼도 지하에서 기뻐할 것”(고려신사 봉찬회)이라는 덕담을 주고받았습니다. 지긋지긋한 ‘내선일체’ 타령이었습니다. 고려신사는 이처럼 내선일체의 도구로 철저히 이용당했습니다. 아키히토 일왕의 신사 방문을 굳이 백안시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냥 넘기기 어려운 어두운 역사의 편린이 고려신사에 숨어있다는 사실만큼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153회는 ‘아키히토가 방문한 고려신사에 숨겨진 내선일체의 흉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