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민단체 강남역 살인사건 2주기 추모집회
서울 강남역 인근 노래방 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살해된 ‘강남역 살인사건’ 2주기인 17일 사건 발생 장소 인근에서 추모집회가 열렸다. 검은색 상·하의에 흰 우의를 걸친 2000여명의 여성들은 쏟아지는 빗속에서 “여전히 여성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세태는 변하지 않았다”며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나왔다”고 외쳤다.
340여개 여성·노동·시민단체가 모인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이날 오후 7시 서울 신논현역 6번 출구 앞에서 ‘강남역 살인사건 희생자를 추모하는 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를 열고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여성이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세상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집회에 모인 이들은 “여성폭력 중단하라” “사법정의 실현하라” “불법촬영 처벌하라” 등 구호를 외쳤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직장인 박모씨(29)는 2년 전 강남역 10번 출구에 ‘살아남아서 미안하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나부터 나서서 행동하겠다’는 내용의 포스트잇을 붙였다고 했다. 그는 “오늘도 유명 유튜버가 성추행을 당하면서 강제로 찍힌 반나체 사진이 인터넷에 유포됐다는 기사가 나왔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여전히 달라진 게 없다”며 “2년 전 포스트잇에 쓴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여성들이 요구하는 안전한 세상은 결국 남성들에게도 살기 좋은 세상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마스크를 쓰고 집회에 참가한 취업준비생 이모씨(27)는 “오늘 집회 소식을 다룬 기사의 댓글에서 ‘내가 카메라 들고 가서 여자들 얼굴 찍어 낯짝을 못 들고 다니게 하겠다’는 글을 봤다”며 “더 이상 여성들이 조롱거리가 되지 않고 성적 대상화가 되지 않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업의 성차별 채용, 정치권의 차별적인 여성 정치인 공천 문제 등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었다. 취업준비생 권모씨(26)는 “은행들이 ‘남성을 뽑아야 한다’면서 여성 지원자에 대해서만 커트라인 점수를 높였다는 소식을 듣고 화가 났고 허탈했다.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했다. 취업준비생 김모씨(27)는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는데 그런 대통령이 나온 집권당에서 오는 6월 지방선거 광역단체장에는 모두 남성들을 공천해 배신감이 들었다”며 “여성만 목소리를 내서는 안된다. 사회가 다 같이 분노해줄 순 없나”라고 말했다.
직장인 이모씨(33)도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을 계기로 성차별·성폭행을 양산하는 사회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수없이 나왔는데도 여전히 기업이나 정치권은 성차별적인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학생 김예지씨(24)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많은 여성들이 집회·시위 자리에 나가 차별적인 사회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세상을 바꾸려 하고 있다”며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여성 동지들이 있다는 점이 힘이 된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우리는 여기서 세상을 바꾼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강남역 10번 출구로 행진했다. 이날 부산, 대구, 전북 전주, 경남 창원 등지에서도 추모집회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