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서, 가난은 농민의 얼굴을 하고 있다. 아주 가난에 찌들어서, 먹고살 걱정에 날마다 인상 쓰고 화내고 슬퍼하는 것도 농민이고. 가난한데도 늘 자기 일에 열심이고, 꿋꿋하고 활기찬 사람도 농민이고. 그리고 더 가난한 이웃들까지 챙기고, 늘 웃는 낯에 무슨 말이든 입만 열었다 하면 유머와 비유로 사람들을 웃겨재끼는 것도 농민이다. 그렇게 지금도 가난의 얼굴을 한 농민들이 시골에 살고 있다.
10년이라는 시간은 그리 긴 것이 아니어서, 지금도 마을 할매들은 한번씩, 어린 것들 데리고 마을 한가운데 살아줘서 고맙다는 인사치레를 한다. 이사 잘 왔다 하는. 처음에는 여 들어와서 우예 먹고살꼬 하시던 양반들이 그래도 이제 그 걱정은 많이 덜으셨다. 며칠 집에 틀어박혀서 출판 관련 일을 하고 있다 보면 누군가는 우리집 얘기를 꺼내면서, 날마다 집에서 저렇게 놀아서 어쩌냐고 이야기가 나오게 마련이었다. 그러면 옆에 누군가가 농사 그기야 집에 묵고, 조금 나누고 할 만치고, 돈 버는 거는 따로 있다 카대. 집에 가만히 들앉아 가지고 노는 게 아이고, 요즘은 그래 하는 일이 있다 하면서 거드는 사람이 있고.
사실은 마을에 아직 젊은, 거의 모든 사람들은 농사가 주업이어도, 공사장이든 공장이든 식당이든 어디 품을 팔러 다니든 몇 가지 일을 한다. 농사보다 다른 데서 벌어오는 돈이 많은 집도 몇 집 있다. 그래도 사람들끼리 모여서 이야기하고 웃고 떠들고 하는 때만큼은 농사일 이야기다. 농사일로 얼마나 벌어들였는가, 나물값, 과일값이 요즘 얼마나 나가나 하는 이야기가 목청 높게 한 바퀴 돌고 나면, 기다렸다는 듯 농사일을 어찌 했는가 하는 것으로, 어느 자리에서나 열띠게 이야기를 나눈다. 일하는 데에서 기뻐하고, 자존감이 생기고,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아쉽고 하는 마음도 생겨난다. 우리집 농사라는 것은 그저 식구들 먹을 만큼, 거기에 몇 집 더 밥상을 차릴 만큼이지만, 그래도 농사일이 조금 있다고 그 이야기들을 알아듣게 되었다.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나도 제법 으쓱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농사일 이야기를 할 때 그렇게 총기 있고, 재미지고, 사리가 밝던 사람들은, 자식들만큼은 가난에서 멀어지길 바란다. 손에 흙 묻히지 않게끔. 가난에서 멀어지려면, 농부에서 벗어나 농사일하고는 아주 딴판인 일을 하고, 시골에서는 아주 먼 데서 살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시골 마을 어귀에는 농부로부터 가장 멀리 벗어난 자식의 합격과 승진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린다. 아마도 그 이름 당사자는 볼 일이 없을 것이다. 이름이 난 사람일수록 고향을 돌아보는 일에서도, 부모의 삶을 헤아리는 일에서도 가장 멀리 벗어나 있기 쉽다. 어느 집 자식이 부모가 짓던 농사를 물려받았다고, 키우던 소를 함께 키운다고, 도시 나갔다가 돌아왔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가 번듯하게, 자랑하듯이 내걸리면 좋겠지만, 아직 그런 이야기들은 혹시 망해서 그런 거 아닌가, 무슨 일이 있었나 싶은 걱정과 함께 두런두런거리기만 한다.
마을에는 젊은 사람이 없다. 어느 한쪽으로는 늘 어수선하게 공사판이 널브러져 있다. 무슨 체험, 무슨 관광 이름 붙은 마을들 동사 앞엔 뚱딴지 같은, 아무도 좋아하는 사람이 없을 법한 시설물들이 서 있다. 살고 있는 사람들 형편에 어울리지 않는 축제 따위가 달마다 끊이지 않고 열린다. 제 논밭에서 꼿꼿하게 일하던 사람들은, 물건 팔아주는 사람들 앞에서 고개를 조아린다.
그러나, 며칠 봄비가 맞춤하게 내렸다. 완두가 익고, 감자 순이 쑥쑥 크고 있다. 모종 낸 것들 하루가 다르다. 밀 이삭이 익고, 물이 찰랑한 논이 하나둘 생긴다. 깍딴지게 매만지는 손길이 어디에나 있다. 마을 어른들, 볼 때마다 농사일 놓치지 않고 있는가 한마디씩 거들어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