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잘못된 삶’이라는 혐오 너머 ‘존엄의 순환’

2018.06.22 20:26 입력 2018.06.22 20:35 수정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김원영 지음 | 사계절 | 324쪽 | 1만6000원

한국 사회의 장애인은 ‘잘못된 삶’ ‘잘못된 인간’이란 혐오와 멸시, 차별로 고통받는다. 그 잘못된 규정과 인식에 맞서 싸우는 일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국가책임제 도입을 위해 삭발하고(왼쪽 사진), 장애인들이 차별철폐 투쟁에서 오체투지를 하며(위 사진), 토론회 참석자가 피켓을 들고 특수학교 설립을 촉구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연합뉴스 이미지 크게 보기

한국 사회의 장애인은 ‘잘못된 삶’ ‘잘못된 인간’이란 혐오와 멸시, 차별로 고통받는다. 그 잘못된 규정과 인식에 맞서 싸우는 일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국가책임제 도입을 위해 삭발하고(왼쪽 사진), 장애인들이 차별철폐 투쟁에서 오체투지를 하며(위 사진), 토론회 참석자가 피켓을 들고 특수학교 설립을 촉구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연합뉴스

저자 김원영은 골형성부전증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이다. 장애와 질병에 노련하다. 휠체어 바퀴를 1.8초에 한 번씩 규칙적으로 밀 수 있다. 한 손에 책이나 커피를 들고도 절묘하게 방향과 속도를 유지하며 이동한다. 핵심은 우아함이라고 여긴다. “‘꺾어진 직선보다는 곡선’에 가까우면서도 그 곡선의 방향이 어디로 향할지 이전의 움직임을 통해 예측할 수 있는 상태”다. ‘우아하게’ 휠체어 바퀴를 굴리면서 동행인에게 한마디 건넬 줄도 안다. “방금 각도 좋았음?”

김원영은 노련함을 좁아터진 ‘정상인’ 화장실에서도 발휘한다. 양쪽 벽을 타고 절묘하게 용변을 처리하는 신체 운용 방식 말이다. 뇌성마비 친구는 앞니로 능숙하게 소주잔을 입으로 털어 넣는다. 시각장애가 있는 박사는 수업 시간 수강생의 반응을 알아보려고 ‘짝’ 하는 박수를 요청하며 이런 말을 한다. “여러분, 저는 눈에 뵈는 게 없어요. 아시죠.” 세련된 상호작용 기술 구사도 노련함에서 나온다.

“세상에 장애인이랑 결혼하신 거예요. 사모님이 진짜진짜 대단하시네. 장애인이랑 결혼한 여자는 또 처음 보네. 아내가 도망가기 전에 빨리 애 낳으세요.” 어느 장애인 남편과 비장애인 아내가 겪은 일이다. 김원영이 묻는다. “어떻게 더 노련해지란 말인가.” 한국 사회는 이들의 노련함으로 쉽게 돌파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당신이 어디에 가든 핵토(구토가 나올 정도로 혐오스럽다는 뜻의 은어)이고 병신이라는 사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노련함의 가장 고차원적 단계, 즉 모든 모욕으로부터 자아를 둘로 분리하며 보호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바라보는 나’를 안전하게 모셔다 두고, ‘보여지는 나’를 지켜보며 냉정해지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객관적 대상으로 바라보며 외부의 모욕과 분노로부터 평온을 지키는 기술이다. “아이고 가엾어라, 그래 어쩌다 몸이 그렇게 됐니.” “장애인 할인을 받기 위해서죠!”

김원영은 삶의 모든 순간이 일종의 공연(퍼포먼스)이라고 본다. ‘보여지는 나’가 ‘연극배우’처럼 특정한 역할을 연기하도록 지시한다. 자신은 보호하면서 세상이 원하는 배역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단계다. 삶을 게임처럼 대하는 태도다.

한국 사회는 고차원적 단계에 이르러도 돌파하기 힘들다. 김원영은 지금도 우아하게 직립보행할 수 없는 다리를 쳐다보면 한숨이 나온다. 잘못 태어난 것일까? 삶의 근원 문제를 들여다보게 된 건 ‘잘못된 삶 소송’(wrongful life suits) 때문이다. 장애아 부모가 산부인과 의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의 한 유형이다. 의사의 실수로 장애아가 태어나 아이와 부모에게 손해가 발생했으니 그것을 배상하라고 청구하는 것이다.

“저거 왜 태어났냐” “나 같으면 그냥 뒤진다”. ‘잘못된 삶’ ‘잘못된 인간’으로 분류되는 대표적 존재가 장애인이다. 한 발짝 세상 밖으로 나오면 사람들의 멸시와 혐오를 맞닥뜨린다.

1980년대 초 태어난 김원영은 어머니도 한때는 자신의 출생을 ‘손해’라고 느꼈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자신 같은 장애나 질병, 다른 성정체성을 가진 아이를 낳아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이런 자문과 딜레마의 상황은 외부와 타자에게서 온다. 김원영은 “모든 일상의 태도, 관념, 지향, 제도와 법규범이 ‘잘된 삶’과 ‘잘못된 삶’을 가른다”고 말한다. ‘잘못된 삶’은 착하지 않거나 나쁜 짓을 저지른 삶이 아니라 존중받지 못하는 삶, 하나의 개별적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실격당한 삶’이다.

장애나 질병은 몸에 완전히 부착되어 존재의 일부가 된 조건이다. 장애가 ‘덜 심해’ 보이는 목발을 휠체어 대신 이용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이 대목에서 김원영이 다시 묻는다. “‘어설픈 정상인’이 되기 위해 감추고 바꾸려는 노력을 어디까지 감내해야 하는 것일까?”

김원영은 선배들이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모습에 눈길이 사로잡힌 특수학교 시절을 떠올린다. 휠라이. 앞바퀴를 들어올린 채 내리막길을 내려오는 기술을 보고 감탄했다. 기능과 패션의 일부로서 휠체어를 자기 몸처럼 다뤘다.

그도 휠체어를 자아 표현 수단으로 삼는 일을 또래들과 함께 익혔다. 다른 이들과 일체감도 느끼게 하는 몸의 재현 방식을 배우며 소속감도 경험한다. 김원영은 그저 당당한 척하는 정신승리법을 익힌 것이 아니라 일종의 ‘정신의 스타일’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친구들과 휠체어를 함께 타고 위험천만한 도로로 나간 일도 “(허세로 가득했지만) 저항적인 자기 인식과 세상에 대한 고유의 해석을 토대로, 자신을 비정상이나 결여된 존재가 아니라 고유성을 가진 존재로 인식”한 것이었다.

[책과 삶]‘잘못된 삶’이라는 혐오 너머 ‘존엄의 순환’

김원영은 결여나 결핍, 부족함 같은 장애를 받아들이는 일을 강조한다. 장애가 있는 몸, 미적 기준에서 벗어난다고 여겨지는 신체를 수용했다고 말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다. “자기 자신을 혐오나 피해의식에 기초하여 받아들이지 않고, 이 세상이 구축해놓은 외모의 위계질서에 종속되지 않으며 앞으로의 삶을 외모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나 억압 혹은 피억압자로서의 의식과 트라우마에 짓눌리지 않은 채 살아가겠다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를 수용하는 것이다. ‘잘못되고’ ‘실격된’ 인간적 요소들이 정체성으로 선언될 때 해방감을 맛볼 수 있다고 말한다.

김원영은 책 내내 ‘이야기’와 ‘서사’(내러티브)를 강조한다. 장애라는 정체성은 장애라는 경험에 맞서 한 개인이 작성해나가는 ‘이야기’ 그 자체다.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일은 긴 삶의 시간 동안 그것을 ‘써나가는’ 일이다. 서사(내러티브)는 자신에게 찾아온 어떤 상황을 자기만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자기 삶에 결부시켜 구체적으로 받아들인 결과다. 김원영은 출근한 장애인을 번쩍 안아 옮기는 ‘배려’를 두고도 “그런 방식은 장애인을 사무실로 들어가게는 하지만, 그가 휠체어를 자기 몸의 일부로 일종의 ‘스타일’로 삼아 오랜 기간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사람으로서 자기 이야기를 만들어왔다는 점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세상의 잘못된 평가와 위계적 질서에 맞서) 내 존재의 존엄성과 아름다움을 선언할 책임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 이것이 ‘정체성을 수용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취하는 실천적 태도이다.”

‘우리’는 이 실천적 태도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신체 한계를 뛰어넘은 장애인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건 어떤가? 사람들은 ‘불굴의 의지’를 발휘하는 장애인에게서 일종의 숭고미를 느낀다. 하지만 숭고미는 관조와 사색으로 이뤄진다. 관조가 가능하려면 그 대상이 자기 삶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해서는 안된다. ‘역경을 극복’한 장애인 이야기에 감동하면서도 장애아동을 위한 특수학교 설립은 반대한다. 장애인 봉사 활동에 매진하면서도 장애인이 이사 오는 것은 반대한다.

‘희망적으로 살라’고 격려하며 ‘희망의 아이콘’이 되라고 주문하는 것은? 김원영이 말한다. “하루 종일 오줌을 참으면서 희망을 가질 수는 없다. 오줌을 참을 때 필요한 건 희망이 아니라 화장실이다.”

김원영이 사람들에게 기대하는 건 “나의 가족, 연인, 친구, 혹은 버스에서 우연히 만나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창출하는 상호작용의 무대에서 인격적 존재로 대우받고 서로를 세심하게 존중하는 경험”이다. ‘예의 바른 무관심’과 ‘섬세한 도움의 손길’을 느꼈던 어린 시절 경험을 떠올린다. 다들 물놀이를 갈 때 김원영 곁을 지킨 친구가 내뱉은 말은 “피부 관리해야 돼”였다.

김원영은 “귀엽고 뭉클하고 놀랍도록 탁월한 상호작용 기술을 발휘해 인간의 존엄성이 모든 이념의 중심에 오는 세상을 향한 긴 순환을 시작한다”고 말한다.

김원영은 ‘서울대 출신 장애인 변호사’다. 그걸 내세워 그럭저럭 인생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는다. 자신의 경험을 씨줄로 장애학, 사회학, 법학 이론을 날줄로 현실의 모순과 문제를 들춰내며 인간 존엄과 존중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운다.

책은 전장이나 수용소를 체험한 이들의 반전과 인권 메시지를 녹인 여러 책에 비견할 수 있다. 전쟁은 끝나고, 수용소는 폐쇄됐지만 김원영을 비롯한 소수자들을 둘러싼 배제와 혐오의 공간은 그대로 남아 있다. 고통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수시로 되풀이된다. 김원영은 이 지점에서 자신의 경험과 개인사, 주장을 용기 있게 드러내면서 다른 장애인, 소수자, 빈자를 위한 변론도 진행한다.

책 추천사는 선전과 허언일 때가 많다. 책장을 덮으면 책머리 노명우의 추천 글에 공감할 수 있다. “이 책은 삶으로 쓴 텍스트이다. 나는 삶으로 쓴 텍스트를 사랑하고 심지어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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