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정당화 위한 증언들, 역사의 심판대에서 ‘자백’이 되다

2018.11.01 06:00

<제5공화국 전사(前史)>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비롯한 신군부의 집권 과정을 자신들의 관점에서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특히 신군부의 정권탈취 시발점이 된 12·12 쿠데타를 미화하는 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노태우·황영시·백운택·박준병·박희도·최세창·장기오·유학성·차규헌 등 당시 쿠데타 주역들의 생생한 증언을 대거 실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들 신군부 주역들은 <5공 전사>에 실린 증언에서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판단을 입을 모아 칭송하고 우국충정에 감사한다. 또 군의 신뢰 회복과 국가 혼란 진정을 위한 ‘구국의 결단’을 도운 것이었다고 말한다. 이들의 증언은 12·12 진행 과정에서 신군부가 무엇을 정당화하려 했는지, 무엇을 숨기고 무엇을 강조하려 했는지 판단할 수 있는 자료다. 자신들의 관점과 입맛에 맞게 정리된 증언은 절반의 진실과 절반의 거짓으로 구성돼 있다.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5공 전사>의 진실과 거짓은 이후 신군부가 역사의 심판대에 섰을 때 그들 스스로의 목줄을 죄는 올가미가 됐다.

■신군부는 반란을 사전에 모의했다

1979년 12월5일 허삼수 합수본부 조정통제국장

[5공 전사-8화]12·12 정당화 위한 증언들, 역사의 심판대에서 ‘자백’이 되다


“언제든지 출동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어라. 병력은 약 50여명이 좋겠다.”


▶ 12·12 사건 일주일 전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은 최석립 중령(경호실 33헌병대장)을 불렀다. 이후 최 중령은 정예요원 60명으로 집중 훈련에 들어갔다. 병력은 12·12 당일 육군참모총장 공관 인근 위병소를 장악했다.


노태우 9사단장

[5공 전사-8화]12·12 정당화 위한 증언들, 역사의 심판대에서 ‘자백’이 되다


“정승화 총장을 수사해야겠다는 합수본부장 전두환 장군의 결심이 이미 11월 초에 확고히 섰으며 다만 적절한 시기만 기다려 온 것”“정 총장이 그러한 (자진사퇴) 제의에 응하면 ‘총장 대신 합참의장이라도 하십시오’ 하려고 했다.”


▶ <5공 전사> 인터뷰에서 노태우 9사단장은 전두환 합수본부장이 11월 초부터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연행을 계획했다고 했다. 전 합수본부장과 하나회 군인들은 군 인사에 개입할 의도를 갖고 12·12 사건을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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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대법원 “피고인 전두환, 노태우 등은 군 지휘권을 장악하려 정 총장의 체포, 그 후 대통령에 대한 강압·병력동원 등 반란행위에 대해 개별·순차적으로 모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적어도 정 총장의 체포를 알고 난 뒤 이를 용인·지지하면서 집단을 이뤄 병력을 동원하거나 이에 가담한 이상 공모하여 반란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볼 수 있다.”


■대통령의 정당한 재가는 없었다

1979년 12월12일 유학성 군수차관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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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 지금 합수본부장이 조치하고 있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대통령께서 반드시 재가를 해 주셔야 합니다. 빨리 조치 안 하시면 일대 혼란이 일어나고 이런 일기에 군이 자칫 잘못하면 혼란이 가중되고 전쟁을 자초하게 됩니다.”


▶ 1979년 12월12일 전 합수본부장을 비롯한 군 장성들이 최규하 대통령에게 정승화 총장 수사 재가를 요구하고 있을 때, 이미 합수본부 수사관들은 정 총장 체포를 진행한 뒤였다.

1979년 12월12일 정도영 보안사령부 보안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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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 연행 사건은 사령부에서 그 내용을 알고 있는 것이고 각하의 재결을 얻은 것이며, 따라서 모든 조치는 사령부에서 할 텐데 육본 상황만 수시로 보고해달라.”


▶ 비상이 걸린 육본 상황실에 도착한 변규수 육본 보안부대장이 보안사령부에 전화를 걸자, 정도영 보안처장은 ‘대통령 재가를 받았다’는 거짓말을 한 뒤 육본 동향 파악을 지시했다.

[5공 전사-8화]12·12 정당화 위한 증언들, 역사의 심판대에서 ‘자백’이 되다


1994년 대법원 “대통령이 1979년 12월13일 05:10경 정 총장의 체포를 재가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정 총장이 체포되고,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피고인들이 동원한 병력에 의해 육군본부와 국방부가 점령되고 피고인들의 반란을 저지·진압하려고 한 장성들이 제압된 후에 이뤄진 것으로서, 이는 사후 승낙에 불과하며, 사후 승낙에 불과한 위 재가로 인해 이미 성립한 피고인들의 기왕의 반란행위에 해당하는 정 총장의 체포행위나 병력동원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대통령을 강압했다

1979년 12월12일 전두환 합수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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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승아. 병력이 너무 많이 와 있지 않느냐? 인근 주민이라든가 다른 분들이 공포심을 갖을 염려가 있으니 불필요한 병력은 철수시키는 것이 좋겠다.”


▶ 노태우 9사단장의 지시를 받은 고명승 청와대 상황실장은 총리공관을 지키던 구정길 특별경호대장과 대원들을 무장해제·감금한 뒤 101경비단, 55경비대 등 경찰 병력을 동원해 총리공관을 접수했다. <5공 전사>가 설명하는 이들 병력의 배치 목적은 ‘대통령 경호’가 아니라 ‘전두환 합수본부장 일행의 신변 보호’였다.

1979년 12월12일 황영시 1군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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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이 헌법도 국가와 국민의 안정을 보위하기 위한 것인데 지금 안정이 흔들리는 판에 헌법절차 따지고 들 때가 아니라고 한 일이 있는데 지금 계통 밟아서 대통령 재가를 얻을 때가 못 됩니다.”


▶ 총리공관으로 몰려간 황영시·유학성·차규헌·백운택·박희도 등 군인들은 최규하 대통령에게 정 육참총장 수사 재가를 요구했다. 그러나 최 대통령은 절차를 문제 삼으며 서명을 미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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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대법원 “대통령이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총격사건이 있었다는 보고를 받아 이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위 정동호 등이 국무총리 공관을 점거·포위한 가운데 위 피고인 등 수도권의 군 지휘관 등이 늦은 저녁시간에 갑자기 집단으로 대통령을 방문하여 1시간이 넘도록 머물면서 정승화 총장의 체포에 대한 재가를 거듭 요구하였음을 알 수 있는 바, 이러한 행위는 대통령에 대한 강압이라고 보지 아니할 수 없으므로, 이와 반대되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12·12는 반란이다

1979년 12월12일 백운택 71훈련단장

[5공 전사-8화]12·12 정당화 위한 증언들, 역사의 심판대에서 ‘자백’이 되다


“우리들은 나라를 위해서 일을 바로 하려던 것이었는데 이렇게 상대방에서 병력과 전차를 동원하다니 잘못하면 우리가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냐?”


▶ <5공 전사>는 12·12 주역들의 병력동원을 철저히 ‘정당방위’론에 입각해 서술하고 있다. 합수본부가 병력을 동원하지 않으면 ‘대의가 허사로 돌아가고, 군이 분열되며, 자칫 국가도 붕괴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1979년 12월12일 박희도 1공수특전여단장

[5공 전사-8화]12·12 정당화 위한 증언들, 역사의 심판대에서 ‘자백’이 되다


“나는 각하 명령에 의해 병력을 출동하여 육본과 국방부를 점령하러 갑니다.”


▶ 박희도 1공수특전여단장은 수경사령부와 특전사령부의 병력 출동 금지 지시에 불복하고 전 합수본부장의 지시에 따라 병력을 출동시켰다. 특전사령관의 지시를 전달한 이순길 부사령관에게 박 단장은 ‘각하 명령’이라는 거짓말로 행군을 강행했다.

[5공 전사-8화]12·12 정당화 위한 증언들, 역사의 심판대에서 ‘자백’이 되다


1994년 대법원 “군형법상 반란죄는 다수의 군인이 작당해 병기를 휴대하고 국권에 반항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이고, 여기에서 말하는 국권에는 군의 통수권 및 지휘권도 포함된다고 할 것인바, 피고인들이 대통령에게 정 총장의 체포에 대한 재가를 요청했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한 대통령의 재가 없이 적법한 체포절차도 밟지 아니하고 정 총장을 체포한 행위는 정 총장 개인에 대한 불법체포행위라는 의미를 넘어 대통령의 군통수권 및 육군참모총장의 군지휘권에 반항한 행위라고 할 것이며, 원심이 적법히 인정한 바와 같이 피고인들이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위와 같은 행위를 한 이상 이는 반란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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