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못해 인권침해에 대한 진실규명을 못한 점 마음 깊이 사과드립니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을 찾아 머리 숙여 사과했다. 미리 준비해온 ‘사과의 말씀’을 읽으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린 문 총장은 “또 다시 인권침해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검찰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진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27일 오후 3시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검찰총장의 사과가 있었다. 이날 문 총장은 “과거 정부가 법률 근거도 없이 내무부 훈령을 만들고, 보호를 명분으로 국가 공권력을 동원해 국민을 복지원 수용시설에 감금하고 강제노역 및 인권유린을 행했다”며 “해당 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외압에 굴복해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않고 종결했다는 과거사위원회의 조사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이 진상을 명확히 규명했다면 형제복지원 전체의 인권침해 사실이 밝혀지고, 적절한 후속 조치도 이루어졌을 것”이라면서도 “검찰이 기소한 사건이 재판 과정에서 제대로 된 처벌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제대로 된 민주주의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의 특수감금죄에 무죄를 선고한 법원 판결이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문 총장의 발언을 들은 피해생존자모임 대표 한종선씨는 “형제복지원 사건 이후 감정이 무뎌져 검찰총장이 흘린 눈물의 의미도 사실 잘 모르겠다”며 “눈물의 의미를 잊지 말고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총 4가지 요구 사항을 발표했다. 국회에 계류중인 특별법이 통과할 수 있게 검찰 차원에서 강력하게 요구할 것, 시설을 이용한 인권 유린사건 범죄자들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해줄 것, 앞으로 검찰이 외압에 흔들리지 않도록 해줄 것, 한 번의 사과로 끝낼 것이 아닌 역사로 기록해 진상규명 이후에도 기억되게 할 것 등이다.
이에 문 총장은 “앞으로 검찰이 외압에 굴복해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며 “피해자들 개개인이 안고 있는 아픔을 국가 사회적으로 함께 나눌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데도 검찰이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5년 ‘내무부(현 행정안전부)훈령 410호’에 따라 경찰, 공무원 등이 부산 사상구 주례동에 있는 복지원에 사람들을 가둔 사건이다. 당시 부랑인들만 복지원에 수용했다고 홍보했지만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잡아와 감금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폭로됐다. 이 사건은 공식 사망자 수만 513명에 달하며 강제 노역과 구타, 학대, 성폭행을 일삼았다는 의혹까지 받는다.
검찰은 1987년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을 수사해 불법감금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겼지만, 대법원은 1989년 7월 정부 훈령에 따른 부랑자 수용이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검찰의 부실수사와 수사축소 의혹이 제기됐고, 재조사 끝에 문 총장은 지난 20일 법원의 판결에 법령위반이 있다는 이유로 검찰총장이 대법원에 사건을 다시 판단해달라고 요청하는 비상상고를 했다.
문 총장이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사과하는 것은 지난 3월20일 고 박종철 열사 부친을 방문한 이후 두 번째다. 당시 문 총장은 부산 수영구 남천동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해있던 고 박정기씨를 방문해 “과거의 잘못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