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20대 비정규직 노동자가 홀로 설비를 점검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졌다. 발전사들이 힘들고 어려운 업무를 하청업체에 떠넘기는 ‘위험의 외주화’로 하청업체 노동자의 죽음이 반복되고 있다.
한국서부발전은 태안화력발전소의 석탄운송설비 컨베이어 벨트에서 한국발전기술 소속 현장운전원 김용균씨(24)가 11일 오전 3시23분쯤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사고가 나고 1시간 뒤에야 신고가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고용노동부는 사고가 난 태안화력발전소 9·10호기에 대해 작업중지 명령을 내렸다.
입사 3개월차인 김씨는 현장에서 석탄을 나르는 컨베이어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일을 해왔다. 10일 오후 6시 출근했고, 밤 10시쯤 운용팀 과장과 통화 후 연락이 끊겼다. 과장과 팀원들이 찾아나섰다가 숨진 김씨를 발견했다. 태안 화력발전소의 석탄취급 설비 운전을 위탁받은 한국발전기술 노조 관계자는 “꼼꼼하게 일한다고 평판이 좋았는데 평소 잘 안 보던 곳까지 살피려다 사고를 당한 것 같다”며 “컨베이어벨트 길이가 몇 ㎞에 달해 위치를 파악하는데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2인1조 근무규정은 지켜지지 않았다. 직원들이 4조2교대로 12시간씩 일하는데, 야간에는 근무자가 적어서 더 위험할 수 밖에 없었다. 노조 관계자는 “비용을 절감한다며 인원을 줄여서, 두 사람이 넓은 시설을 둘러보려면 따로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며 “사고가 났을 때 다른 사람이 있어야 장비를 멈출 수 있는데 그러지도 못했다”고 했다.
외아들인 김씨는 군 제대 이후 발전소에서 경험을 쌓으려던 사회초년생으로 전해졌다. 한국서부발전 등 발전소 운영사들은 설비를 점검하는 등 운영과 안전관리에 꼭 필요한 업무마저 외주화했으며,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방침에도 불구하고 외부 컨설팅까지 받으면서 정규직 전환을 거부하고 있다.
사고는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15일에는 이번에 사고가 난 태안화력발전소 3호기에서 노동자 1명이 구조물 사이에 끼어 숨졌다. 같은 달 1일에는 가스폭발사고로 2명이 다쳤다. 발전소 직원들이 사고를 신고하지 않고, 직원 차량을 이용해 병원으로 후송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지난 9월에는 인천 영흥화력발전소에서 하청업체 노동자 3명이 바다로 추락해 2명이 숨졌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 지회가 이날 공개한 ‘태안 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주요 안전사고·사망사고 현황’을 보면, 2010년부터 8년 동안 이 발전소에서는 모두 12명의 하청 노동자가 추락 사고나 매몰 사고, 쇠망치에 맞는 사고나 대형 크레인 전복 사고, 김씨와 같은 협착 사고로 숨졌다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에 따르면 2012~2016년 346건의 안전사고로 발전소 노동자들이 다치거나 죽었다. 이 중 337건인 97%는 하청노동자 업무에서 발생했다. 이 기간 사고로 숨진 40명 중 37명이 하청노동자였다. 한국발전기술 노조 관계자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설비 관리감독 권한이 없다보니 안전 문제가 있어도 바꾸기 어렵다”면서 “본사의 정기 안전회의에 하청업체 노동자들도 참석해 의견을 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더이상 없길 바랐지만 또다시 외주화가 노동자를 죽였다”며 발전회사들을 비판했다. 사고 몇 시간 뒤인 11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문재인대통령, 비정규직 대표 100인과 만납시다’ 기자회견에 나온 비정규직 노동자 이태성씨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정규직 안해도 좋으니 더 이상 죽지만 않게 해달라’고. 그런데 오늘 또 동료를 잃었습니다. 하청노동자지만 우리도 국민입니다. 죽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 길은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