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행사 일회용품 사용
# 지난 9일 서울 강동구 천호동의 한 초등학교. 학교 공간혁신 우수 사례로 뽑힌 이 학교를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등 교육정책을 책임지는 고위 공무원들이 방문했다. 쾌적한 학교 환경을 만들겠다는 인사말을 하는 유 부총리 앞에는 분홍포장지를 두른 생수병에 투명 플라스틱컵이 덮여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조 교육감의 손에는 테이크아웃 커피컵이 들려 있었다(사진).
# 10일 충남 서산시 부석면 창리 어민회관에서 어민들과 간담회를 가진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의 앞에도 일회용품이 놓였다. 생수병에는 종이컵이 덮였고, 일회용 접시에 한과가 가지런히 놓였다. 같은 날 충북혁신도시에서 열린 자치단체장 및 공공기관장들과의 간담회 자리에도 박선호 국토교통부 1차관 앞에 생수병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정부 행사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모습들이다. 지난해 봄 전국을 혼란에 빠지게 한 재활용 쓰레기 대란을 계기로 정부 스스로 공공기관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하도록 했지만 구두선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직위가 높고 낮음의 문제는 아니었다.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 앞에는 유리잔에 물이 담겨 있었다.
환경부는 지난해 7월1일부터 중앙부처,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등 모든 공공기관에 적용되는 ‘공공부문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실천지침’을 발표했다. 지침에 따르면 사무실에선 일회용 컵과 페트병의 사용을 금지하고 회의·행사 시 다회용품 사용을 명시했다. 야외 행사 때도 생수병을 나눠주는 대신 음수대를 설치하고, 텀블러를 사용해 물을 마시도록 권했다. 아울러 일회용품 감량실적을 지자체와 공공기관 평가에 반영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환경부 자원순환정책과 관계자는 “지난해 발표 이후 모든 공공기관에 공문과 전화를 돌렸지만, 민간에서 행사를 준비하거나 일선 담당자들이 관련 지침을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신고’도 들어온다. 행사 사진이나 영상을 보고 시민들이 민원 전화를 걸어오거나, 외부 행사에 참석한 환경부 직원들이 알려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환경부에서는 관련 지침을 안내하는 것 외에 뾰족한 정책 수단은 없다. 지침이 법적인 강제가 아니라 권고 사항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