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버스 좌석에 앉자 바로 옆 좌석에 앉아있던 남성은 허둥지둥 짐을 챙기더니 일어서버렸다. (중략) 친구 역시 대학 도서관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책상에 앉자마자, 맞은편에 앉아있던 사람이 가방을 싸서 사라졌다.”
지난 27일 영국 일간 가디언에 실린 맨체스터 대학의 대학원생 샘판의 기고문 일부다. ‘코로나바이러스 공포가 영국을 동아시아인에게 적대적인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라는 제목의 기고에서 그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공포가 커지고, 관련 보도가 두드러질수록 동아시아인으로서 큰 불편을 느낀다”고 했다. 샘판은 이 글에서 자신을 ‘동아시아인’이라고만 밝혔다.
샘판은 서구 시민들이 ‘동아시아인’을 싸잡아 적대하고 있음을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기만 해도 바로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자신 앞에서 ‘(런던의) 차이나 타운에 가지마, 거기 사람들에겐 병이 있어’ ‘중국인과 일하는 친구가 병균을 옮아온 것 같아’ 라고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떠는 사람들은) 우리가 영국인이든 아니든, 중국과 상관없는 국가 출신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동아시아인’을 하나로 묶어서 생각하고 있다”면서 “건강에 대한 그들의 우려가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인들을 ‘코로나 바이러스 위험인자’로 정형화시키는 것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샘판의 기고문은 한국사회에서도 급속히 퍼지고 있는 중국인 혐오정서를 돌이켜보게 만든다. 한국인 역시 ‘동아시아인’으로 묶여 바이러스 취급을 당한다면 그때는 인종주의적 혐오를 당하는 고통을 알게 될까. 샘판은 “단지 인종 때문에 나를 바이러스를 옮기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냥 인종주의자”라며 “코로나 바이러스는 비극이지만, 공포심 때문에 혐오와 인종주의를 허용해서 안된다”고 말한다.
영국에선 그나마 아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다. 네 사람이 확진을 받은 프랑스에선 ‘동양인 혐오’가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BBC에 따르면 프랑스의 한 지역신문 ‘르 쿠리에 피가르’는 1면에 마스크를 쓴 중국 여성 사진 위에 ‘노란 경보’라고 썼다가 격렬한 항의를 받았다. 인종을 암시하는 표현 때문이다. 결국 이 신문은 사과했다. ‘리카라’(인종차별과 유대인 배척을 반대하는 국제연맹)의 스테판 니벳 대표는 BBC에게 어떤 신문도 감히 “검은 경보”라는 헤드라인을 쓰지는 못할 것이라며, ‘노란 경보’ 헤드라인을 비판했다.
파리 시민인 샤나 쳉(17)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시내 버스에서 모욕감을 느낀 경험을 털어놨다. 쳉은 베트남과 캄보디아 출신이다. 그는 시내 버스 승객들이 자신의 면전에 대고 ‘저기 중국 여자 있다, 우리를 오염시킬 거야, 쟤는 집으로 돌려보내야 해”라고 수군거렸다고 했다. 쳉은 사람들이 자신을 “역겨운 시선으로”으로, “마치 바이러스라는듯” 쳐다봤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를 기반으로 인종주의가 퍼져나가자, 프랑스에 있는 중국인과 아시아인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나는 바이러스가 아니다(#JeNeSuisPasUnVirus)’라는 해시태그 운동도 벌이고 있다. 프랑스에 사는 한 중국인 청년은 “나는 바이러스가 아니에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Je Ne Suis Pas Un Virus(나는 바이러스가 아니다)’라는 문구를 들고 있는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