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귀농·귀촌지 ‘전남 순천’
그 기대는 얼마 가지 못했다. “‘텃세’가 있더라. 밭에 갈 때마다 주민들한테 인사하고 말을 거는데 경계하는 눈빛이 있어. 주민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묘한 분위기가 느껴져. 다가가기 힘들더라.” 아버지는 마을에 정을 붙이지 못했고 결국 귀농을 포기했다.
“10년 기자 생활, 여기가 한계야. 사표 쓰고 귀농할까봐.” 부모님에게도 이야기를 했더니 고개를 저으신다. “연고 없는 동네 가면 말 붙이기도 힘들다니깐…” 기자 생활 10년인데 말걸기가 그리 힘들까 싶다가도 시골 ‘텃세’가 걱정은 된다. 시골 인심 좋다는 소린 다 옛말인가. 농림축산식품부와 공동기획으로 귀농·귀촌 취재를 진행했다. 정말 텃세라는 게 있을까. 실제 현지 주민들은 텃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주민과 귀농인들이 좋은 마을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곳은 없을까.
■장수마을에 온 40대 ‘맥가이버’
지난 7월8일 전남 순천 월등면 화지마을을 찾았다. 백운산에서 조계산으로 이어지는 삼밭봉(384m) 초입의 작은 마을이다. 복숭아와 매실 밭, 물을 댄 논이 함께 어우러진 광경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뒷산 삼밭봉에서 내려오는 물이 모이는 마을 우물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이맹순 이장(66)이 말했다. “우리 마을 이름에 벼화(禾)자가 들어가는디, 옛날 아주 가물어가꼬 숭년(흉년)이 들었어. 우리 마을에만 물이 나는 논(샘받이논)이 있어가꼬 볍씨 종자를 확보해서 요로코롬 나누어서 심었다는 얘기를 어르신들이 해주시더라고.”
어려울 때 이웃이 함께한 얘기가 전설이 돼 마을 이름이 될 정도로 정겨웠던 마을에는 현재 30여 가구가 산다. 대부분 80대 노인들이다. 화지마을은 창녕 조씨 집성촌이었는데 이제는 다른 성씨가 많다. 조씨 집안에 45년 전 시집온 이장은 “지금은 다 돌아가시고, 이사 가고 조금만 산다”고 했다. 몇 년 전부터 퇴직 교사, 목사 등 도시에서 살던 중장년들이 귀농하기 시작했다. 4개월 전에는 정보기술(IT) 벤처 회사를 운영하던 김현철씨(49)가 귀농했다.
마을 초입에 있는 김현철씨의 집에는 ‘맥가이버 공작소’라는 명패가 붙어 있었다. 맥가이버는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 인기 있었던 미국 드라마의 주인공인데, 위기 순간마다 주변의 도구를 활용해 뚝딱뚝딱 뭔가를 만들어 위기를 모면하는 ‘해결사’다.
순천시는 지난 5월부터 ‘마을 맥가이버’라는 공공근로사업을 시작했다. 50세 미만 귀농·귀촌 희망자들은 순천 소재 농촌 마을의 빈집에서 5년간 무료로 거주하고, 대신 8개월간 공공근로 급여(월 185만원)를 받으면서 마을 어르신들의 불편사항을 해결하는 ‘맥가이버’로 활동한다. 전기·수도 수리 등 관련 교육도 받는다. 귀농인들이 마을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돕고, 고령화된 마을에도 활기를 더하겠다는 취지다.
화지마을에서는 김씨가 ‘맥가이버’다. 그는 새벽마다 삼밭봉으로 이어지는 마을 뒷길을 정리하고 예초(풀베기) 작업을 한다. 뒷산 가는 길에 마을을 돌면서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드린다. 이날 아침 김씨와 함께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비탈길을 오르자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저 왔어요. 어머니, 상추 다 자랐네요?”(김씨), “(너무 자라서) 세부렀어.”(할머니), “물에 놔두면 괜찮아요. 제가 따갈게요.”(김씨), “먹을라고? 뽑아가소.”(할머니)
마을 뒷길에 들어섰다. 김씨를 따라 톱으로 길을 막고 있는 나뭇가지 등을 쳐내고 길게 자란 잡초를 잘라냈다. 뒷산에는 복숭아, 매실 나무가 자랐다. 열매는 다 물러 녹아버렸거나, 벌레 먹은 것들이 많았다. 마을 어르신들이 심었는데 뒷산을 오르는 일이 힘들어지다보니 몇 년째 방치됐다고 한다.
“나무와 잡초로 가려져 있던 이 곳에 길을 냈어요. 맥가이버 하는 동안 매일 다니면서 가려진 것들을 다 쳐냈어요. 이젠 주민들이 오기에도 편하실 거예요. 꽃들을 심으면 근사하겠죠?” 김씨가 낸 길 너머 산 아래로 보이는 마을 풍광이 기가 막혔다.
이날 오후 옆마을로 갔다. “우리도 어르신들 집에 맥가이버가 좀 와줬으면 좋겠는디…” 하는 유평마을 장봉식 이장(62)의 말에 출장을 나갔다. 이날은 주로 전기를 다뤘다. “형광등이 접촉 불량이라서 큰일 날 뻔했어요. 그을린 자국까지 있더라고요.” 반나절 동안 김씨는 수도를 고치고, 마을 정자를 보수했다. 나도 물이 새는 수도를 새것으로 교체하는 일을 도왔다. 겨우 작업을 마치고 장 이장에게 물었다. “기자 때려치고 마을 맥가이버로 오면 받아주실 거예요? 집도 알아봐주실 거죠?” 이장은 대꾸도 않고 김씨를 돌아보며 말했다. “구관이 명관이네.”
■‘마을세’ ‘이장세’ 들어보셨어요?
외지인들이 마을에 잘 적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씨는 “가벼운 일이든, 중요한 일이든 이장과 소통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7월 매실 수확기에 다들 바쁘셨어요. KBS 9시 뉴스에서 저를 촬영한다고 했는데 주민분들이 신경쓰실까봐 말씀 드리는 걸 건너뛴 거예요. 나중에 촬영팀이 마을에 온 것을 보고 이장님이 혼을 내셨죠. 저는 배려라고 했던 게 오히려 실수였던 거죠. 악의를 담아 말씀하신 게 아니라 도움을 주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는 이번 취재도 이장에게 미리 이야기했다고 한다. 어쩐지. 내가 도착했을 때 마을 입구에 이장님과 새마을지도자님이 마중 나와 있더라니.
화지마을엔 행사가 많다. 정월 초하루에는 어르신들 모시고 공동 세배를 하고, 정월대보름에는 나뭇더미에 불을 붙이는 달집태우기를 한다. 5월엔 효도잔치를 벌인다. 귀농인에겐 주민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지만, 참여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싶었다. 보통 마을 행사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갹출해서 모은 마을발전기금(일명 마을세)을 사용하는데, 어떤 마을들은 귀농인들이 오면 수백만원씩 마을발전기금을 부담케 해 원성을 산다고 한다. 행사가 많은 화지마을은 어떻게 할까. 이맹순 이장에게 “귀농하면 마을세 얼마나 내야해요?”라고 물었다.
“우리 동네는 (귀농인들이) 오시면 인자 ‘동네분들 식사대접이라도 해드려야 되는디, 밥이라도 한끼 드시라’고 함씨롱 몇십만원은 주세요. 우리가 강요도 안 허고. 글고 인자 동네 사시면 행사할 때 동네사람들이 찬조금으로 능력껏 헐 때, 그럴 때 협조해주고 그런 거예요. (선주민이나 귀농인이나 마을세를) 따로 내는 건 없어요.” 행사마다 지자체 지원도 있고, 그동안 쌓인 찬조금도 있어 큰돈 들일 일이 없단다. 김씨도 ‘마을세’를 내지 않았다.
농촌에는 수년간 마을 공동체가 지속되면서 만들어진 ‘관습법’이 있다. 도시의 생활에 익숙한 입장에서는 잘 이해가지 않는 것도 많지만 규칙이 만들어진 이유를 살펴보면 귀농인들도 조금은 수긍할 수 있겠다 싶었다. 예컨대 ‘이장세’가 그렇다. 이장들은 업무에 따른 월급 차원에서 지자체(지역 농협 포함)에서 월 40만원을 받는다. 그런데도 주민들이 따로 돈을 걷어 이장에게 주는데 그걸 ‘이장세’라고 부른다. 점점 없어지는 추세이기는 해도 과거 수확기에 쌀 한 말, 보리 한 말 걷어 이장에게 주던 관습이 지금까지 이어지곤 한다. 화지마을도 상·하반기에 가구당 1만5000원씩 걷는다. 도시에선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지출’인데 김씨는 이렇게 말했다. “이장님이 자기 농사도 제대로 못짓고 마을 일 하느라 얼마나 고생하시는데요. 그거 알면 모른 체할 수 없어요.”
김씨는 최근 산마늘(명이나물) 농사를 시작했다. 가족과 함께하는 귀농은 아직이다. 아내를 설득하지 못했단다. “고등학생인 막내가 대학 가면 아내를 설득해 함께 내려올 생각이에요. 그 전까지 마을에서 기반을 마련해야 하니까 절실하죠.”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다. 아 그렇지, 우리 집에도 그런 분이 있었지. ‘사표 쓰고 귀농’할 생각에 귀농 기사를 쓰고 있다니까 아버지가 말했다. “이놈아, 네가 진작 귀농한다고 했으면 그 땅을 안 팔았지. 도지사가 나온다고 했는데….”
귀농·귀촌 희망자가 농촌에서 집을 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빈집은 많아도 살기 어려운 폐가가 많고, 멀쩡한 집도 외지인에게는 잘 빌려주지 않는다. 농촌에 머물면서 주민과 친분이 생겨야 부동산 중개사무소에선 볼 수 없던 매물이 나타난다. 운 좋게 살만한 집을 구했더라도 마을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다. 임시로 일정 기간을 거주하면서 귀농을 고민해볼 수는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초보 귀농·귀촌인들을 위해 시·군 단위 지방자치단체들 가운데 ‘귀농인의 집’을 운영하는 경우가 있다.
귀농인의 집이란 귀농·귀촌인들이 거주지나 영농기반을 마련할 때까지 2개월~1년 동안 거주할 수 있는 농촌의 임시거처다. 마을에서 빈집을 내놓으면 지자체들이 주거환경개선공사(리모델링)를 한 뒤 입주민 공고를 낸다. 임차비는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월 10만~20만원 수준(전기료, 수도료 제외)으로 책정된다.
다만 귀농인의 집 자체가 적고, 운영하지 않는 지역도 많다. 2020년 9월 기준 귀농귀촌종합센터 홈페이지에 등록된 귀농인의 집은 총 497곳이다. 전북 순창이 39곳으로 가장 많고 경북 문경(22곳), 경북 의성(19곳), 전북 완주(17곳) 순이다. 상당수가 전남·북, 경북에 있다.
일단 입주 신청을 하면 시·군, 귀농귀촌협의회 등에서 심사를 한다. 1인 단독 가구보다는 2인 이상 가구가 유리하다. 귀농 교육을 이수한 경우에는 우선순위가 부여된다. 관련 정보는 귀농귀촌종합센터 홈페이지(www.returnfarm.com) 및 시·군 농업기술센터 등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사표 쓰고 귀농’ 하려는 이재덕 기자의 사심 가득한 귀농·귀촌 도전기는 매주 수요일 경향신문과 유튜브 채널 <이런 경향>에 총 5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 [사표 쓰고 귀농①] ‘사표 쓰고 귀농’할까? 10년차 기자의 사심 가득한 귀농 도전기 https://news.khan.kr/3a5d
▶ [사표 쓰고 귀농②] 재주 없는 ‘곰손’인데, 귀촌할 수 있을까 https://news.khan.kr/7wWS
▶ [사표 쓰고 귀농④] 귀농이 부럽다고? "여기저기 일 천지야" https://news.khan.kr/XJFf
▶ [사표 쓰고 귀농⑤] '어디로 가지? 뭘 심지?'···나 정말 귀농할 수 있을까 https://news.khan.kr/acz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