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주 이전 임신중단만 무죄이고 이후는 여전히 유죄라는 국가
낙태죄를 수호하려는 한국 사회
학생들을 모아 순결서약식을 하던
20년 전 미션스쿨 강당이 떠오른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미션스쿨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동학대다. 어두컴컴한 강당에 중학교 1, 2학년을 모아놓고 임신중단(낙태)이 얼마나 끔찍한지 설파하는 비디오를 틀었다. 조작된 것이 분명한 비디오 속 내용은 잔인하고 충격적이었다. 또 다른 이벤트는 순결 서약식이었다. 순결 사탕을 먹고, 사비를 내서 맞춘 순결반지를 끼고, ‘True love is waiting’ 같은 플래카드가 걸린 곳에서 전교생이 혼전순결을 외쳤다. 지금 보면 코미디지만 그 당시에는 정통 학원물이자 비극적인 드라마였다. 화장실에서 임신 테스트기가 발견되고 누군가는 친구들에게 다급하게 돈을 빌리러 다니는 동안 학교에서 찬 ‘똥볼’은 그딴 식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낙태죄를 수호하려는 한국 사회에서 그 음침한 미션스쿨 강당의 냄새가 난다.
2019년 4월, 헌법재판소는 형법상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020년 10월6일, “정부가 7일 ‘낙태죄’에 대한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낙태죄를 유지하되 임신 14주까지의 임신중단은 처벌하지 않는단다. 여성들이 꾸준히 요구해왔으며 법무부 양성평등 정책위원회가 권고한 ‘헌재가 제시한 수준 이상의 임신중단 비범죄화’가 아니다. ‘14주 이전까지만’ 무죄이고, 그 이후의 임신중단은 여전히 유죄라는 것이다. 사사오입도 아니고 이게, 뭐지? 추석연휴 동안 신나게 나훈아 콘서트에 관해서 썼던 글을 내려놓고, <배틀 그라운드 : 낙태죄를 둘러싼 성과 재생산의 정치>(성과재생산포럼 기획, 백영경 외 11인, 후마니타스, 2018)를 집어 들었다. 이 글에서는 책의 기준에 따라 낙태와 임신중절, 임신중지라는 용어를 서로 다른 의미에서 사용한다. 많은 부분을 인용할 예정이니, 해당 이슈에 관심이 있다면 책 전체의 일독을 권한다. ‘뒷광고’ 아니고 제 돈으로 샀답니다.
여성에게 죄책감을 주입하면서
임신·출산으로 침해당할 기본권을
국가가 보장하지는 않는다
‘낙태죄’는 1953년부터 있었으나, 2010년부터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프로 라이프 의사회가 불법 낙태 단속을 사법 당국에 요구하며 임신중절을 시술하는 병원을 고발하면서 ‘낙태 정국’(40쪽)을 맞았다. 그 이전까지 임신중절은 문화적 금기일지언정 불법이라는 인식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사회는 공공연한 임신중절을 통해 인구를 조절해왔기 때문이다. 둘도 많다는 인구 정책 슬로건 아래, 제한된 기회 안에서 남아를 출산해야 하는 여성은 성별감별 임신중절로 내몰렸다. 이때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지금과 정확히 반대의 형태로, ‘임신중절을 하지 않을 자유’를 빼앗기며 침해당한다. 나는 3년 전, 인터넷에서 무작위로 모집해서 ‘88 용띠 여자 30살 파티’를 열었다. 1987년, 1988년, 1990년은 남아선호사상과 호랑이띠, 용띠, 백말띠 여자는 드세다는 한국적 미신의 합작으로 대대적인 성별감별 낙태가 이루어진 해이다. 12명의 여자가 모여 아들이 아니어서 죽을 뻔했으나 어찌어찌 태어나 서른 살이 된 서로를 축하했다. 성별을 감별할 수 있을 만큼 자란 태아는 당연히 14주 이상이다. 피임 교육이나 도구가 지금보다 열악할 때이니 계획에 없는 임신중단은 일상적으로 이루어졌다. 가부장제가 필요할 때, 정상 가족 안에서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는 방편으로서, 임신중절은 조장되고 묵인됐다.
2010년 이후 임신중절이 필요한 여성은 법의 테두리 바깥으로 밀려났다. 시술할 곳을 찾기 어려워지고, 비용이 폭등하고,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가짜 약이 유통되고, 시술을 빌미로 의사가 성폭력을 저지르고, 의료사고가 발생해도 불법 시술을 받은 여성의 과실이 인정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파도 위의 여성들>은 네덜란드 산부인과 의사 레베카 곰퍼츠가 시작한 프로젝트 이름이자 이 과정을 찍은 다큐멘터리이다. 레베카는 낙태가 법으로 금지된 국가에서 열악한 불법 시술에 노출된 여성을 자신의 배에 태운다. 낙태죄가 없는 네덜란드 국적의 레베카가 탄 배는 국제법에 따라 낙태가 가능한 공간이 된다. 레베카의 프로젝트는 임신 당사자 여성에게 결정권을 돌려주는 것이다. 그렇다. 낙태죄 논의에서 번번이 뒷전으로 밀리는 여성의 기본권 말이다.
최현정은 <낙태와 헌법 논쟁>에서 낙태죄를 법적으로 검토한다. 형법 제27장 낙태죄는 총 다섯 가지 유형을 포함한다. 자기낙태죄(여성을 처벌한다), 업무상동의낙태죄(의사도 처벌한다), 동의낙태죄(의사 등이 아닌 사람이 낙태수술을 한 경우 처벌한다), 부동의낙태죄(당사자 부탁이나 승인 없이 낙태한 경우 의사인지 아닌지와 무관하게 처벌한다), 낙태치사상죄(수술을 받던 여성이 상해를 입거나 사망하면 더 무겁게 처벌한다). ‘낙태죄 폐지’는 자기낙태와 함께 동의낙태, 업무상동의낙태의 비범죄화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 남성의 책임은 어디에도 없다. 햇볕을 쬐고 잉태한 신화 속 주인공도 아니건만, 여성과 의사가 처벌받는 사이 단 한 명의 공범이 빠져나간다. 다른 죄와 달리, 사생활이자 의료 기밀에 해당하는 임신중절 시술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제한적이다. 수사기관이 알아낼 방법도 없다. 그러니 낙태죄를 신고하는 사람 또한 이 ‘저 혼자 안전한’ 공범이며 대부분 보복성이다.
이 지점에서 낙태죄의 또 다른 모순이 물에 뜨는 기름처럼 선명해진다. 낙태죄의 목적은 여성이나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 처벌하려는 목적뿐이다. 국가는 임신과 출산으로 여성이 침해당할 기본권이나 정상 가족 바깥에서 태어난 아이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다. 최현정은 같은 글에서 자기낙태죄가 여성의 기본권을 다양한 층위에서 침해하는 양상을 짚어낸다. “임신과 출산에 내재하는 특별한 희생을 강요하지 않을 자유”인 자기운명결정권뿐, 근로의 권리(자발적으로든 비자발적으로든 임신과 출산은 여성이 노동을 중단하는 큰 이유이다), 교육받을 권리(임신한 청소년은 즉각 학교에서 퇴출당한다), 혼인과 가족생활에 관한 권리(임신이 결혼의 계기가 되는 경우), 국가의 모성 보호 의무 및 국민의 보건권(건강에 영향을 미치기에)과도 얽힌다. 이외에도 신체의 자유, 재산권, 성적 자기 결정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대한 제한, 평등권, 혼인과 가족 생활에 있어서의 성평등 원칙과도 관련 있다.(87~90쪽 참고) 헌법에는 생명권 규정이 없고 법 체계상 태아는 ‘사람’이 아니다(태아가 사람이 되는 시기나 범위는 법마다 다르니 책을 참고). 내가 중학교 때 봤던 비디오처럼 인간의 형체를 갖춘 경우도 거의 없다. 그런데도 임신중단을 살인과 비교하고, 여성의 기본권과 태아의 생명권을 저울에 올리려는 폭력은 칼날 같다.
평생 원치 않는 임신으로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릴 위험이 없는 몸들만이 낙태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국회의 성비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낙태죄는 이러한 몸들의 못된 심보, 여성에게 두려움과 죄책감을 주입하여 이들이 ‘함부로 몸을 굴리지 않’도록 하며, ‘그럼에도’ 감히 임신을 한 이들은 혹독한 대가를 치러 마땅하다는 심리를 근간으로 한다. ‘낙태 남용’이 우려되어 폐지할 수 없다는 진부한 반대 의견 역시 여성을 한 명의 인격체로 보지 못하는 빈약한 머리에서 나온다. 시술 혹은 수술을 겪는 것은 여성의 몸이다. 어떤 형태로든 건강에 부담을 주기에 가장 피하고 싶은 최후의 방어선이다. 임신중단이 비범죄화되면 다들 피임 없이 섹스하고, 미용실 가듯이 낙태할 것 같습니까? 수술이 안 먹으면 손해인 공짜 과자인가요? 사람들이 왜 보험금까지 탈 수 있는 교통사고를 뻥뻥 당하지 않고 조심조심 차를 피하게요?
여성혐오가 뿌리내린 사회에서
낙태죄 폐지는 끝이 아니라 시작
성착취·아동학대·경력단절 등무수한 규범들과 싸워야 하니…
영화감독 이길보라는 <배틀 그라운드> 추천사에서 임신중단을 경험한 몸을 “엮여 있는 몸들”이라고 호명한다. “같은 전선에서 정상성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몸”이라는 의미에서 임신 가능한 몸은 연결된다. 이 연결망 속에서, 낙태죄 시위 참가자들과 함께 배를 두드리며 외쳤다. “야, 이건 내 거야! 국가는 나대지 마라!” 유교 문화가 뿌리내린 여성혐오 사회에서, 낙태죄 폐지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그다음은 공기처럼 퍼진 사회적 낙인과 편견, 여성의 성을 통제하려는 무수한 문화 규범과 싸워야 하니 바쁘다 바빠, 현대인! 포궁 없으면 저리 빠지고 할 일이나 하면 된다. 노키즈존 규제, 아동 성착취물 소지자 및 제작자 처벌, 아동학대 근절, 어린이집 및 유치원 충원, 임신·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 해결…. 이런 현실에서도 아이를 낳아 기르는 사람과 태어난 아이는 세포보다 훨씬 많은 것이 절실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