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작심삼일’ 하실 건가요?
계획은 근사했을 거다. 다짐도 굳건했을 터다. 아침 6시 이불 박차고 일어나기, 출근 시간 버스에서 영어 듣기, 점심때 공깃밥의 3분의 1 남기기, 퇴근길 지하철에서 책 읽기, 저녁 먹고 동네 한 바퀴 돌기, 야식 라면 끊기, 잠자리 들기 전 플랭크 3분, 담배와는 이제 안녕….
2021년 새해가 시작된 지 아흐레째. 찬란했던 맹세는 잘 지켜지고 있을까? ‘예스’ 하는 사람은 드물 게 분명하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의 핑곗거리는 도처에 널려 있다. 실외 운동 못하는 건 기록적인 한파 탓, 한밤중에 라면 끓이는 건 TV 먹방 탓, 끊었던 담배를 다시 입에 댄 건 코로나19 스트레스 탓….
하지만 아직 이르다. ‘역시 난 안 돼’라고 실망하거나 ‘올해도 망했다’고 포기하기엔. 인간의 뇌 속에서 개별 행동의 회로가 생겨나는 데는 최소 3주가 걸리고, 이런 행동이 습관으로 완전히 굳어지는 데는 100일 정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100일도 도전해보지 않았다면 ‘판단 유보’가 정답이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을 쓸 때 새벽 4시에 일어나 5~6시간 동안 쉬지 않고 집필한다. 오후에는 달리기나 수영을 한 뒤,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오후 9시면 잠자리에 든다. 그는 자신의 달리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는 대형 트럭 가득히 있다. 우리가 할 일은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것뿐이다.”(에세이집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이 말은 새해 다짐에도 적용된다. 포기할 이유는 ‘한 트럭’이지만, 계속해야 할 ‘아주 적은 이유’를 붙들고 단련하는 수밖에 없다. 하루키처럼 의지가 투철하지 못하다면? 홀로 다짐을 지킬 자신이 없다면? 디지털 기술의 도움을 받아보는 것도 괜찮다. 온라인 공간에 구루와 벗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미 많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는 열망을 행동으로, 행동을 습관으로 만드는 데 도전 중이다.
리추얼 프로그램 통해
‘좋은 습관 만들기’ 도전
20분 운동·10분 독서 등
저마다의 계획 정한 뒤
같은 목표 사람들과
하루의 실천 인증샷 공유
격려·칭찬하며 의지 돋워
“6개월간의 육아휴직을 끝내고 다시 내 자리에 돌아와서 일한 지 이달 들어 1년을 맞았다. 지난 1년은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일상에 적응하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지속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다. 책 읽기조차 어려웠다. 나를 지배할 수 있는 시간, 곧 나 혼자만의 시간을 일부러 갖기로 했다. 어제부터 잠자는 시간을 줄여 운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행동으로 옮겼다. 무엇에 끌린 듯 아침 6시 반에 집 앞산을 숨을 고르며 걷고 있었다. 잠을 좋아하는 내가 아이로 인해 아침형 인간이 되었는데, 1시간 더 일찍 일어난다는 건 나 자신을 이기는 도전이다. 내일도 나를 믿고 일어나서 걸어볼 것이다.”(2020년 4월 손혜정씨의 포털사이트 다음 브런치 글)
손혜정씨(36·공무원)의 커리어에는 두 차례 분기점이 있다. 첫 번째는 세종시 이주다. 경북 출신인 그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언론사와 공공기관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석사학위도 마쳤지만, 서울에서의 삶에 한계를 느꼈다. 경력 측면에서 더 발전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고 싶었다.
마침 대전 지역 연구소에서 일하는 남자친구(현재의 남편)를 만나게 됐다. 결혼을 준비하며 대전·세종 지역을 중심으로 일터를 알아봤다. 전문성과 성장 가능성이 있는지를 염두에 뒀다. 바로 자리가 나지는 않았다. 반년쯤 “아이 없는 경단녀(경력단절여성)”로 지내다 경력직 공모절차를 거쳐 지금의 직장에 들어갔다. 새로운 터전에서 즐겁게 일했다.
이내 두 번째 분기점이 찾아들었다. 아이를 낳았다. 삶이 새로이 요동쳤다. “말보다 글을 통해 나 자신을 표현하고 위로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여겨왔는데, 1년여 동안 단 한 줄의 문장도 쓰지 못했다. 책 한 권도 완독하기 어려웠다.
2020년, 코로나19는 또 다른 위기였다. 재택근무와 아이의 어린이집 휴원이 겹치면서, 혼자만의 시간에 대한 갈망은 더 커졌다. 더 이상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아침 걷기부터 시작했다. 24시간 중 스스로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대가 출근 전 시간뿐이어서다. 아이가 두 돌을 맞은 지난해 9월엔 온라인 리추얼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플랫폼 ‘밑미(meet me)’에 가입해 본격적인 ‘습관 만들기’에 돌입했다. 아이 생일을 맞아 엄마도 함께 새로이 출발해보자는 다짐이었다.
처음 참여한 리추얼 프로그램은 ‘모닝 글쓰기×운동하기’였다. 매일 오전 20분 동안 손으로 글을 쓰고, 20분 동안 달리기나 요가·스트레칭 등의 운동을 한 뒤 그룹 대화방에 인증샷을 올리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지금은 ‘모닝커피×글쓰기’와 ‘치유하며 글쓰기’ 등 2가지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리추얼(ritual)은 본래 ‘규칙적으로 행하는 의식·의례’를 뜻하는 말이다. 최근 온라인에선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일상의 반복적 습관(만들기)’으로 통용된다. 자기 자신을 위해 기꺼이 돈과 시간을 투자하며, 또래와 함께하는 경험을 즐기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에게 인기 트렌드가 되고 있다. 지난해 12월28일 손혜정씨와 전화 통화로 이야기를 나눴다.
작심삼일?
작은 실천 계속 모이면
꿈꾸던 내 모습으로
- 업무와 육아 외에 매일 일정한 시간을 내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사실 대단한 성취를 바라고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글 쓰기는 2차적 목표였고, 1차적 목표는 내 시간을 확보하는 데 있었어요. 처음에는 그 자체가 즐거워서 했습니다. 그런데 시작한 지 30~70일 사이 종종 고비가 찾아오더군요. 연애 과정하고 비슷하달까요? 연애도 초기에는 뜨겁게 달아올랐다가 얼마 지나면 조금 시들해지잖아요. 그 시기를 넘기면 관계가 더 단단해지고요.”
- 고비를 어떻게 넘겼습니까.
“리추얼 메이커(리추얼 프로그램을 함께하며 이끄는 리더)의 조언이 기억에 남아요. ‘너무 바쁘면 단 한 문장이라도, 단 5분간이라도 써보라. 아침에 못 했으면 오후에라도 해보라.’ 그 말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누구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나를 인정하기 위해서 시간을 쪼개게 되더라고요.”
- 시작한 지 100일을 넘겼는데, 어떻게 달라졌나요.
“몸의 기억, 근육의 기억이라는 게 있잖아요. 한동안 자전거를 안 타다가 오랜만에 다시 타도 조금 연습하면 금세 능숙해지는 식으로요. 글쓰기도 다르지 않더라고요. 1년2개월 동안 한 줄도 못 썼지만, 리추얼을 꾸준히 하다 보니 글 쓰는 근육이 다시 살아난 느낌이 듭니다. 이제는 1주일에 한 편 정도는 글을 완성할 수 있게 됐어요. 최근에는 한 주 동안 세 편이나 쓰기도 했습니다. 아이와 산책하던 중 글감이 떠올라서 휴대전화에 녹음했다가, 집에 오자마자 풀어서 글로 옮긴 적도 있어요. 포털 다음의 브런치에 계속 연재를 하고 있고요. 연재글 중 6편은 다음 메인에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 책도 많이 읽게 됐습니까.
“독서 습관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엄청나게 많이 사들이고 여러 권을 한꺼번에 속독하는 쪽이었는데, 지금은 매일 한 챕터씩 꾸준히 읽어나가는 식으로 정독하게 됐어요. 11월에는 8권 정도 읽었습니다. 오는 2월부터는 커리어 플랫폼 ‘원티드’에서 온라인 북클럽도 맡아 진행하게 됐고요.”
- 플랫폼 서비스의 도움을 받았지만, 결국 핵심은 본인의 의지겠지요?
“그렇죠. 더 나은 내가 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의지에서 행동으로 이어지고, 그 행동이 매일 지속적으로 연결돼야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것 같아요. 리추얼은 내가 원하는 결과물을 얻기 위한 과정일 뿐이죠.”
결심은 새해 초에만? 목표가 일상이 되면 ‘진짜 기념일’ 되는 거죠
- 새해 ‘작심삼일’로 고민할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1년 단위로 계획을 세우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새로운 결심이나 다짐을 반드시 새해 초에 하고, 며칠 만에 잘 안 됐다고 실망할 필요가 있을까요? 자신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아이의 생일이나 학교 입학일 등에 맞춰서 시작하면 어떨까 싶어요. 첫 기념일은 누구나 축하해주지만 2주년이나 3주년, 두 돌이나 세 돌은 나만 아는 기념일이 되거든요. 그런 시점에 맞춰 2주년 기념 다짐, 3주년 기념 결심을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면 일상에서 찾고 기억하고 새로이 시작하는 ‘진짜 기념일’이 되는 거죠.”
항공사에서 일하는 박모씨(29)는 ‘챌린저스’라는 습관 만들기 플랫폼에 참여하고 있다. 챌린저스는 미션을 정한 뒤, 참가비를 내고, 목표 달성률에 따라 돈을 돌려받는 서비스다. 달성률이 85% 이상이면 전액이 환급된다.
박씨는 취업준비생 시절이던 2019년 7월 서비스에 가입했다. 그해 말 직장에 들어간 뒤에도 계속 이용하고 있다. 회사 업무로 바쁠 때 잠시 쉰 적은 있지만 꾸준히 참여해온 편이다. 지금은 6000보 걷기, 책 읽기, 아침 7시 일어나기 등에 도전 중이다.
그는 “자기관리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 서적을 많이 읽고 유튜브 동영상도 보곤 했다”며 “생각을 하고 의지도 있는 편인데, 실천을 잘 못했던 게 문제였다”고 했다. 취준생 시절 계획 세우는 일을 좋아해서 세밀하고 정교하게 계획표를 짜놓곤 했다. 하지만 다음날 눈을 떠보면 이미 해가 중천에 뜬 10시, 11시일 때가 많았다. 하루의 시작부터 어그러지다 보니 계획은 무위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챌린저스 애플리케이션(앱)을 내려받게 됐다.
박씨는 챌린지를 계속하고 있지만, 한 번도 손해 본 적은 없다. 한 챌린지에 예치금 1만원을 걸고, 목표를 85% 이상 달성해 돈을 돌려받은 뒤, 돌려받은 1만원으로 다른 챌린지에 다시 참가하는 식으로 해왔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돈이 걸려 있으니까 동기 부여가 되는 게 사실이지요. 벌금 내는(참가비를 돌려받지 못하는) 건 싫으니까요.”
리추얼 앱에 기대면 어때요~ 내 실천 돕는걸요
평생 스마트폰 앱에 의지할 수는 없지 않을까? 결국은 홀로 서야 하지 않을까? 박씨의 대답이 흥미로웠다.
“그런(앱 사용을 중단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앱 없이도 목표를 실천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처럼 잘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성공률, 즉 목표 달성률이 지금보다 못할 것 같아요. 앞으로도 필요한 서비스는 적극 활용할 생각입니다.”
회사원 이모씨(26)는 여가 액티비티 플랫폼 ‘프립’에 참여해왔다. 지난해엔 자신이 좋아하는 달리기를 주제로 ‘랜선클럽’을 조직해 ‘호스트’ 역할을 맡기도 했다. 랜선클럽은 특정 주제를 두고 목표를 설정해 참가자들끼리 서로 응원하고 격려하는 온라인 동호회다. 이씨가 조직한 랜선클럽은 참가자 15명이 2주 동안 각자 20㎞를 달리고 인증샷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는 “혼자서 달릴 수도 있지만, 다른 누군가와 함께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일이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잘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작은 목표도 꾸준히…그러면 분명 변하게 됩니다
정재경 더리빙팩토리 대표(47)는 2017년 6월 스스로 ‘아침 글쓰기’를 시작했다. 이후 3년 넘게 계속하며 세 권의 책을 탈고했다.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지금은 밑미의 리추얼 메이커로 활동 중이다. 그에게 좋은 습관을 만들고 유지해 나가는 길을 물었다.
“처음부터 너무 잘하려고 애쓰면 외려 힘들어집니다. 이제 (습관 만들기를) 시작하는 사람인데, 오랜 시간 해온 사람처럼 잘하려고 하면 될 리가 없지요. 목표를 100% 이루면 좋겠지만,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50%, 아니 단 5%라도 꾸준히 끌고 가면 돼요. 그러면 시간이 갈수록 분명히 나아집니다. 제가 ‘아침 글쓰기’를 3년 반이나 계속하게 될 줄은 저도 몰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