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6일 북의 가족, 만날 수 없다면 편지라도…

2021.03.16 00:01 입력 2021.03.16 00:03 수정

1961년부터 2011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남북 이산가족 서신교환을 하루 앞둔 2001년 3월14일 오후 대한적십자사 직원들이 북으로 보낼 편지들을 분주하게 행낭에 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남북 이산가족 서신교환을 하루 앞둔 2001년 3월14일 오후 대한적십자사 직원들이 북으로 보낼 편지들을 분주하게 행낭에 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형님 편지가 왔건만 어머님은 말이 없고

“어머님의 안부를 몰라서 자다깨어 가슴 아프게 지내왔는데 오늘 어머님이 살아계시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온밤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50년 만에 처음으로 어머니께 편지를 올리는 제 가슴은 세차게 높뛰고 있습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김민하씨(당시 67세)가 병상에 누워있는 100세 노모 앞에서 편지를 한줄 한줄 읽어내려 갔습니다. 판문점을 통해 북에서 온 형의 편지입니다.

김씨는 이산가족입니다. 형과 누나가 한국전쟁 때 행방불명됐습니다. 반세기만에 생존 소식이 담긴 편지가 북에서 왔는데 의식 불명인 어머니는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편지엔 자식들 걱정으로 평생 괴로워했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구구절절 배어있었습니다. “우리 3남매는 명절 때마다 서로 만나 잘 지내니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 환갑·진갑 때 밥 한끼 못 올린 불효를 용서하세요. 통일되면 만날 것입니다.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년 전 오늘(2001년 3월16일) 경향신문에는 <‘이산편지’ 분단을 넘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남북은 2001년 3월15일 양측 이산가족 각 300명이 보낸 서신 600통을 판문점에서 교환했습니다. 2000년 6월15일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서 이산가족의 대면 상봉이 여러차례 진행됐지만, 서신 교환은 분단 이후로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북측에서 편지를 보낸 이산가족들에는 생사와 주소가 확인된 사람, 상봉을 위해 서울에 방문단으로 와보지 못했던 사람이 포함됐습니다. 북측이 상봉을 하지 못한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편지를 쓸 수 있도록 배려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오래 전 ‘이날’] 3월16일 북의 가족, 만날 수 없다면 편지라도…

대한적십자사는 북측 이산가족들의 편지를 남측 가족들에게 우편으로 발송했습니다. 편지에는 편지지와 사진이 각각 2~3장씩 들어있었습니다. 대부분 안부를 전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잔치 장면과 독사진을 넣어 보내면서 사진 뒷면에 볼펜으로 사진을 찍은 날짜를 적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남측에서는 수신자의 이름·주소를 편지봉투 아래쪽에, 발신자의 이름·주소를 위쪽에 쓰지만 북측은 반대로 썼습니다. 북측 편지에는 우표가 붙어있지 않았는데, 대신 우표 자리에 파란색 스탬프로 ‘흩어진 가족, 친척 편지’라는 글귀가 찍혀있었습니다.

통일부의 이산가족 등록현황에 따르면 1988년부터 현재까지 이산가족으로 등록한 사람은 13만명입니다. 8만4000여명이 사망했고, 4만8000여명이 생존해있습니다. 생존자 중 80세 이상이 67.1%나 됩니다. 당국 차원의 서신 교환은 2003년 끊겼습니다. 대면 상봉을 한 사람은 2만여명 뿐이고, 가장 최근이 2018년입니다. 가족의 소식도 모른 채 매년 수천명의 이산가족이 숨을 거두고 있습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달 “이산가족 문제만큼은 인륜의 문제로서, 천륜의 문제로서 어떤 정책적 고려 없이 최우선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장관은 “지금이라도 남북이 마음만 먹는다면 전국 13개 장소에서 화상상봉할 준비가 됐다”며 “남북 간 화상상봉으로 먼저 시작해 코로나19가 진정되는대로 남과 북이 함께 기념할 수 있는 날에 꽤 규모있는 이산가족 만남을 추진하겠다”고 했습니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은 지난해 3월 “이산가족 문제는 남북관계에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인권문제”라며 “최소한의 생사 확인과 서신 교환이 이뤄질 수 있도록 양국이 노력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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