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8일 “백두산 폭발, 남북이 함께 연구하자”

2021.03.18 00:10 입력 2021.03.18 00:11 수정

1961년부터 2011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영화 <백두산> 시나리오 표지 이미지.

영화 <백두산> 시나리오 표지 이미지.

■“백두산 폭발, 남북이 함께 연구하자”

2019년 12월 개봉한 영화 <백두산>은 백두산이 폭발해 한반도에 대재앙이 일어난다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백두산 폭발로 한반도가 쑥대밭이 되고, 북한 노동당 당사로 추정되는 건물이 무너지는 영화 내용을 겨냥한듯 북한은 남한을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가슴치며 통탄해야 할 민족 분열의 비극을 돈벌잇감으로 삼고 여기서 쾌락을 느끼고 있는 자들이야말로 한 조각의 양심도 없는 너절한 수전노, 패륜아들”이라고 말입니다.

10년 전 오늘(2011년 3월18일) 경향신문에는 <북한, 백두산 화산 공동조사 제안>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당시 북한은 지진국장 명의로 ‘백두산 화산 공동연구와 현지답사·학술토론회 등 협력사업을 추진시켜 나가기 위한 협의를 진행하자’는 내용의 전통문을 남한의 기상청장 앞으로 보냈습니다. 정부는 “북측 제의에 대해 남북간 협력이 필요하다는 인식 하에 이를 검토해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백두산의 분화 가능성은 지속적으로 제기돼왔습니다. 백두산은 활동을 멈춘 휴화산이 아니라, 지하에 거대한 마그마가 존재해 언제든 분화할 수 있는 활화산이라는 것입니다. 946년 첫 분화를 한 백두산은 1688년, 1702년, 1903년 등 30회 넘게 분화한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10세기 이래 세기마다 빠짐없이 분화했습니다. 2000년대에도 백두산의 화산 활동이 관찰됐습니다. 2003년부터 백두산 인근에서 지진 발생이 급증했습니다.

백두산이 폭발하면 직접적으로 피해를 받는 국가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과 북한이지만, 한국도 화산재로 인한 간접 피해를 받게 됩니다. 946년 첫 분화 때 화산재가 남한 전체를 1m 두께로 덮을 정도였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1702년 분화와 관련해 조선왕조실록에는 이렇게 쓰여있다고 합니다. “하늘과 땅이 갑자기 캄캄해졌는데 연기와 불꽃 같은 것이 일어나는 듯했고, 비릿한 냄새가 방에 꽉찬 것 같기도 했다. 큰 화로에 들어앉은 듯 몹시 무덥고, 흩날리는 재는 마치 눈과 같이 산지사방에 떨어졌는데 그 높이가 한 치가량 됐다.”

[오래 전 ‘이날’] 3월18일 “백두산 폭발, 남북이 함께 연구하자”

기상청은 “백두산이 언제든 폭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됨에 따라 주변국과의 협력, 화산감시 기술 확보 등의 종합대책을 마련하게 됐다”면서 2011년 북한 제안에 앞서 ‘선제적 화산 대응 종합대책’을 세웠습니다. 천리안 위성을 통해 화산 활동이나 화산재 확산을 감시하고 화산 분화·폭발에 대한 음파 관측소를 신설하는 등 화산감시 체계를 구축해 나간다는 내용입니다.

정작 백두산에 대한 남북 공동연구는 현재까지 진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북한 제안에 따라 2011년 3월29일과 4월12일 백두산 화산 문제를 논의하는 남북 전문가회의가 열렸습니다. 현지답사까지 이야기가 나왔지만 의견 대립으로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기상청은 2018년에는 백두산에 남북 공동으로 화산 활동을 감시하는 관측소를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소식은 없습니다. 중국 정부는 백두산이 있는 지린성에 화산연구소를 만든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김복철 한국지질자원연구원장은 지난해 10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백두산의 평균 분화 주기가 100~200년 사이인데, 마지막 분화가 1903년이었으니 (현재) 분화 주기에 와 있다고 볼 수 있다”며 “화산 분화는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고 보는데, 중요한 것은 그 규모”라고 했습니다. 백두산의 폭발 가능성과 대책에 대한 남북 공동 연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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