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부터 2011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1971년 3월30일 ‘SST 킬러’가 SST를 살렸다?
50년 전 이날 경향신문에는 ‘SST 킬러’라는 사람이 소개돼 있습니다. 윌리엄 프록시마이어라는 이름의 미 연방 상원의원인데요. 기사는 “1961년부터 1969년까지 프록시마이어 의원은 5번이나 SST개발계획을 위해 지출되는 정부예산 정책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였으나 실패했었다”며 “그럼에도 실망하지 않고 꾸준히 공청회 등 시간을 끌면서 심의를 방해해왔다”고 그의 이력을 전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SST개발비 지출 반대 투쟁에서 성공을 거둔 것이다”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당시 미 상원은 기사 게재 시점으로부터 닷새 전인 그해 3월24일, SST개발 계획에 대한 정부의 지원금 요청을 거부했는데요. 기사는 당시 거부 결정을 이끌어낸 주역 중 한 명이었던 프록시마이어 상원 의원을 조명한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기사에서 이 상원의원보다 더 관심이 가는 건 ‘SST 개발계획’입니다. SST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SST는 ‘Super Sonic Transport’, 초음속 수송기를 뜻합니다. 수송하는 대상은 물자뿐 아니라 사람도 포함되죠. 때문에 당시엔 사실상 ‘초음속 여객기’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콩코드’가 바로 대표적인 SST입니다. 기사에 소개된 것처럼 미국 정부는 적어도 1961년부터 SST 개발 계획에 정부 예산을 투입하려 했었는데요. 이유는 당시 소련과 영국·프랑스가 벌이던 ‘초음속 여객기 개발 경쟁’이었습니다.
1960년대 미국이 대기권 밖에서 소련과 ‘우주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면 대기권 내에서는 영국과 프랑스가 소련에 맞서 ‘초음속 여객기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1960년대 초 소련은 초음속 여객기 개발 계획을 발표하고 1963년부터 ‘투폴레프(Tupolev) TU-144’의 개발에 들어갑니다. 영국과 프랑스도 비슷한 시기에 합작으로 ‘콩코드’ 개발에 착수했고요. 이후 1968년 12월 소련이 먼저 TU-144의 시험비행에 성공하고 ‘세계 최초의 초음속 여객기 개발’이라는 타이틀을 가져가자 다급해진 영국과 프랑스도 1969년 3월 ‘콩코드’의 초도비행을 성공시키며 ‘최초의 상용화’라는 타이틀 만은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씁니다.
이처럼 영국·프랑스와 소련이 ‘초음속 여객기’를 두고 경쟁을 벌이자 미국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는데요. 미국 정부는 보잉사가 개발 중이던 ‘보잉 2707’을 미국의 SST 시제기 기종으로 선정하고 개발비 중 무려 75%를 지원하는 계획을 세웁니다. 이 계획이 바로 기사에 언급된 SST 개발 계획입니다. 그러나 당초 수송능력이나 속도 등 모든 면에서 ‘콩코드를 능가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던 터라, 개발 기간이 길어지고 개발비가 증가했습니다. 기사에 소개된 것처럼 결국 미 상원에서 개발비의 75%에 달하는 정부 예산 지원을 거부함으로써 미국의 SST계획은 좌초됩니다.
그런데 이 결정은 결과적으로 미국에겐 ‘신의 한수’가 됩니다. 당시 초음속 여객기는 몇 가지 치명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었습니다. 일단 경제성이 매우 낮았는데요. 대형 비행기의 경우 음속을 돌파하는 데에는 물론, 돌파한 이후에도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음속을 넘는 속도에서는 공기가 액체처럼 작용해 지속적인 항력을 발생시키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당시 콩코드의 연료 소모율은 보잉 747기의 6배에 달했습니다. 반면 항력을 줄이기 위해 가느다랗게 만들어진 동체 탓에 승객 수용 한도는 3분의 1 수준이었습니다. 당시 콩코드의 운임은 일반 여객기 퍼스트클래스 가격의 4배에 달했고, 이 때문에 미국과 유럽을 잇는 대서양 노선 이외에선 승객이 10여명 수준이었습니다.
소닉붐(음속 돌파 충격파)도 문제였습니다. 지상에서는 마치 천둥소리같은 소음으로 인한 민원이 빗발쳤습니다. 결국 미국은 자국 영토 상공에서 초음속 비행을 금지시켰고, 콩코드는 바다로 나갈 때까지 초음속에 돌입하지 못했습니다. ‘복선화가 덜 된 고속철’ 같은 신세였죠.
영국과 프랑스도 개발 도중 이같은 문제점들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이미 10억달러 이상의 개발비가 들어간데다 소련과의 자존심 싸움에서 밀릴 수 없었기 때문에 개발을 강행했습니다. 그러나 콩코드는 상용화 이후에도 채산성 문제 등을 극복하지 못해 2003년 결국 운항을 중단합니다. ‘세계 최초의 초음속 여객기’인 TU-144도 1978년 상용화 1년 만에 같은 운명을 맞았고요.
반면 미국은 SST개발이 좌초되면서 막대한 예산 낭비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국 프랑스 등이 ‘초음속’에 집착하는 동안 ‘보잉747’처럼 속도보다 적재 중량과 경제성에 초점을 맞춘 모델을 세계에 내놓으면서 향후 전세계 항공 운송 시장을 장악하게 됐죠.
참고로 당시의 SST들이 안고 있었던 기술적 난제들은 현재 어느 정도 극복돼 가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개발 중인 차세대 SST들은 ‘콩코드’ 등에 쓰였던 ‘터보제트’ 엔진보다 연비와 신뢰성이 우수한 ‘터보팬’ 엔진을 채택하고 있으며 소닉붐과 항력을 최소화하는 동체 디자인도 속속 선보이고 있습니다. ‘X-59 QueSST(Silent Supersonic Technology)’라는 시험 항공기는 5만5000피트 상공에서 마하 1.42의 속도(시속 1512㎞)로 날면서도 지상에는 자동차 문 닫는 소리 정도의 소음만 남긴다고 합니다.
역설적인 것은 곧 등장할 이 ‘콩코드의 후손’들 대부분이 미국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기술 개발과 지원을 하는 미 항공우주국(NASA)과 록히드마틴은 물론, 상용기를 만들 예정인 보잉사와 ‘에어리어슈퍼소닉’, ‘스파이크에어로스페이스’, ‘붐슈퍼소닉’ 등의 스타트업들 역시 미국 회사들입니다
이쯤 되면 ‘SST 킬러’였던 프록시마이어 의원이 결과적으로는 미국의 SST를 살린 사람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