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부터 2011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1981년 3월31일 스토킹하다 대통령까지 쏜 청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힐튼 호텔에서 연설을 마치고 나옵니다. 기자들이 “미스터 프레지던트(대통령 각하)”를 외치며 질문합니다. 그 때 어디선가 총 소리가 연달아 6번 울립니다. 대통령이 그 중 한 발에 맞아 중심을 잃습니다. 제임스 브래디 백악관 대변인과 티모디 J 매카디 백악관 경호원, 토머스 K델라헌티 순경도 총에 맞아 쓰러졌습니다. 경호원들은 황급히 대통령을 방탄 승용차에 밀어넣었습니다. 경호 차량과 구급차는 호텔에서 약 1.6㎞ 떨어진 조지워싱턴대학 병원으로 질주했습니다.
현지시간으로 1981년 3월30일 오후 2시26분 레이건 대통령이 피격됐습니다. 40년 전 오늘 경향신문엔 이 사건을 다룬 기사가 실렸습니다.
범인은 콜로라도주 에버그린 출신의 존 워노크 힌클리 주니어(당시 25세)였습니다. 힌클리는 레이건 대통령으로부터 약 3.1m 떨어진 거리에서 0.22구경 권총으로 대통령을 저격했는데요. 다행히 총알이 심장을 빗겨가 왼쪽 폐에 박혀 대통령은 부상만 입었습니다. 힌클리는 현장에서 바로 체포됐습니다. 백악관 경호실은 힌클리가 텍사스주 댈라스에 있는 하일랜드파크 고등학교를 졸업해 예일대학에 진학했으나 중퇴했다고 밝혔습니다.
힌클리의 신상이 공개된 직후, 정신병력이 있는 게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습니다. 힌클리의 부모는 “힌클리가 최근 정신질환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우리는 그의 정신질환이 심각한 것이 아니라고 받아들여 경계하지 않았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FBI 수사로 밝혀진 범행 동기는 충격적이었습니다. 힌클리가 좋아하던 배우에게 자신을 각인시키기 위해 한 영화에 나온 수법을 그대로 따라했다는 것입니다. FBI 관계자들은 “힌클리가 당시 예일대에 다니던 배우 조디 포스터(당시 18세)에 매료된 나머지, 포스터가 출연한 영화 <택시 드라이버>(1976)를 본떠 레이건 대통령 살해를 기도함으로써 그에게 강한 인상을 주려 했다”고 밝혔습니다. <택시 드라이버>에선 베트남 참전 경력이 있는 택시 운전사(로버트 드니로)가 대통령 후보로 나온 상원의원을 암살하려는 장면이 나옵니다. 조디 포스터는 이 영화에서 10대 성매매 여성으로 등장합니다.
이름이 오르내리자 포스터는 기자회견을 열어 “힌클리를 만난 적도, 어울린 적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포스터는 “지난해 가을과 지난달에 JWH 또는 존 힌클리라고 서명된, 전혀 알지 못하는 이름으로부터 몇 통의 편지를 받았으나 그대로 휴지통에 버렸다”며 “이 편지가 레이건 대통령 저격범이 보낸 것이었다는 것을 알고 충격과 공포를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3월 초에 받았던 편지 3~4통을 학장을 통해 FBI에 넘기기도 했습니다.
경찰은 힌클리가 묵었던 호텔방에서 미발송된 편지 한 통을 찾아냈습니다. 워싱턴포스트가 편지 전문을 공개했는데요. 일부를 소개합니다.
“사랑하는 조디, 나는 레이건 대통령 암살을 기도하다가 틀림없이 살해될 것이오. 내가 지금 당신에게 편지를 띄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소. 당신이 잘 알다시피 나는 당신을 끔찍이 사랑하오. 지난 7개월 동안 나는 당신이 나에게 관심을 기울여줄 것이라는 희미한 희망을 가지고 10여통의 시·편지, 그리고 메시지를 보냈소. (중략) 조디, 내가 만약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만 있다면, 그리고 당신과 함께 남은 생을 누릴 수만 있다면 나는 지금 당장에 레이건 대통령 암살 기도를 포기할 것이오. 당신과 함께 살 수만 있다면 그 생활이 아무리 궁상하더라도 견딜 수 있을 것이오. 내가 지금 대통령 암살을 실행에 옮기려 하는 이유는 더 이상 당신이 막연히 나에게 감동하도록 기다릴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점을 솔직히 밝혀두는 바이오. 내가 당신을 위해 무엇이든지 하고 있다는 사실을 당신이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나는 이제 무슨 일인가를 해보아야만 하오. (중략) 조디, 부디 마음을 돌려 내가 이 역사적 행위를 통해 당신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해주길 바라오. 언제까지나 당신만을 사랑할 존 힌클리가.”
힌클리는 레이건 대통령에 앞서 대통령 암살을 시도한 적 있습니다. 1980년 10월9일 지미 카터 대통령이 선거 유세를 위해 내슈빌을 방문했을 때였는데요. 당시 힌클리는 총기소지 혐의로 체포됐습니다. 이 역시 포스터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벌인 행각이었습니다. 힌클리는 벌금 62달러를 내고 하루 만에 석방됐습니다. 한 차례 전적이 있음에도 그의 이름은 ‘대통령 암살 가능 용의자’ 리스트에 올라가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기애 인격장애’ 진단을 받은 힌클리는 정신이상을 이유로 범행 이듬해 무죄를 선고받습니다. 감옥 대신 워싱턴 남동부 세인트 엘리자베스 정신병원에 수용됐습니다. 2016년 7월27일(현지시간) 미 연방법원의 판결에 따라 영구 석방돼 고향인 버지니아주에서 생활하게 됐습니다.
당시 힌클리의 범행은 ‘대통령 암살미수’ ‘정신장애’로만 이야기 됐습니다. 이젠 명확히 ‘스토킹 범죄’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