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부터 2011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1991년 4월1일 “환경공단이 환경파괴했다”...수로 태워 증거 없애기도
1991년 4월 1일자 경향신문 1면에는 ‘환경공단이 환경파괴’라는 제목의 큼직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환경을 지켜야할 환경공단이 환경을 파괴했다니, 대체 무슨 영문이었을까요?
기사에 따르면 환경처 산하의 환경관리공단 경기도 화성사업소가 폐수를 정화하지 않고 흘려보냈다는 의혹이 당시 제기됐습니다. 폐수 방류로 인해 피해를 본 경기도 화성군 우정면 어촌 어민 238명은 모여 화성사업소를 규탄했습니다. 화성사업소가 유독성 폐수를 마구 인근에 방류해 주변의 약 200ha에 달하는 황금어장이 오염돼 일대에서 양식중이던 맛(맛조개), 가무락(모시조개), 굴 등이 떼죽음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주민들도 심한 피부병에 시달리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갯벌이 오염되면 곧 어민들은 삶의 수단을 잃게 됩니다. 이들 어민들은 30여년 전부터 마을 앞에 위치한 200ha의 어장에서 자연산, 양식으로 해산물들을 연간 350~400t씩 생산해서 약 13억원의 소득을 올려왔지만 약 1개월 전부터 갑자기 갯벌에서 악취가 나고 어패류가 집단 폐사하는 상황에 처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본격적인 출어기를 맞고도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당시 주곡3리 어촌계장 윤정홍씨는 “지난 2월 하순 갯벌에서 채취한 자연산 맛에서 심한 악취가 나고 부패돼 상인들로부터 반품소동이 일어났고 손해배상을 요구받아 갯벌을 정밀조사한 결과 환경관리공단 화성사업소에서 배출한 폐수로 오염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어느 정도 예견된 재앙이었습니다. 환경관리공단 화성사업소는 1987년 서해안 황금어장인 화성군 우정면 주곡리에 특정유해산업폐기물처리를 위해 건립한 곳이었습니다. 여기서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 지역 310개 업체 및 각 기관에서 나온 수은·유기인·PCB계 화합물·중금속 등이 포함된 유독산업폐기물을 하루 60t씩 수거, 처리해 왔습니다. 즉, 산업폐기물처리능력을 자체적으로 갖추지 못한 수도권 업체들로부터 폐기물을 가져와 대신 처리해주는 것을 주된 업무로 하는 곳이었죠. 1t당 약 1만원씩의 위탁 수수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화성사업소는 산업폐기물의 성분을 분석해 화학약품으로 환경기준치 이하이면 희석해 바다로 방류하거나 인근에 매립 혹은 소각했지만, 당시 2500평 규모의 매립장도 부족해 8000평 규모의 매립장을 확대 건설하던 중이었습니다.
어민들은 삶의 수단만 잃은 것이 아닙니다. 화성사업소 인근 어민들은 방류된 폐수로 인해 건강에도 심각한 해를 입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어민들은 3월 초 맛을 채취하러 바다에 들어갔다가 팔, 다리에 피부병이 걸려 고생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한 해 전인 1990년 여름에는 하천에서 미역(멱)을 감던 어린이들이 온몸에 피부병이 걸려 물집이 생겼고, 기사가 나오던 당시에도 10여명의 어린아이들이 피부병을 앓고 있었다고 합니다.
어민들에 따르면 이런 상황에서도 환경처는 대책을 강구하기는커녕 증거를 없애려고만 했다 합니다. 하천 옆 갈대밭이 폐수와 기름덩이가 엉켜 악취를 풍기자, 갈대밭을 불태우고 인근에서 흙을 파와 이를 덮어버리고 악취를 없애는 약품을 뿌리기도 했다는 겁니다.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어민들은 농성을 이어갔고, 이후 화성 인근 주민들도 1000명이 넘게 나와 화성사업소 이전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기도 했습니다.
문제가 커지자 당국은 그해 11월부터 5개월간 민관합동조사에 돌입했습니다. 8가지 분야로 나누어 가해자(환경처), 피해자(어민) 측이 각각 추천한 전문가들이 조사를 수행하게 됐습니다. 이는 환경분쟁 해결을 위해 가해자, 피해자 측이 추천한 전문가들이 수행하는 첫 조사 사례라고도 합니다.
조사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요? “사업소 폐쇄가 필요할 정도로 오염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져 화성사업소는 이듬해 1월부터 사실상 정상 가동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당시 언론들은 “환경분쟁 해결 모범사례”라며 추겨세웠습니다.
하지만, 이후 1993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민주자유당 송두호 의원이 “화성사업소가 폐기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 주변 농토, 지하수가 오염되고 있다”고 지적하는 등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