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변호사 실력 없다는 얘기

2021.04.18 12:00 입력 2021.04.18 16:38 수정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헌법학 연구과정을 지난해 수료했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법학을 공부하는 한국인 학생끼리 종종 모였다. 학부 법학과, 로스쿨, 대학원 법학과에 다니는 열 명 남짓이다. 이 중에 로스쿨을 휴학하고 사법시험 예비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이 있었다. 예비시험은 로스쿨 검정고시 같은 것으로, 합격하면 사법시험 응시자격이 생긴다. 그리고 로스쿨에는 입학시험에서 법학 실력을 보는 2년 과정과 그렇지 않은 3년 과정이 있는데, 이 친구는 2년 과정이었다. 후다닥 졸업하면 될 텐데 왜 예비시험을 치는지 궁금했다. “도쿄대학 로스쿨 졸업장보다는 예비시험 합격증을 취업시장에서 더 알아주고, 더구나 나는 출신학부가 도쿄대학이 아니라 더욱 필요하다”고 했다.

[이범준의 저스티스] 요즘 변호사 실력 없다는 얘기

일본 사법시험 합격자 4명 가운데 1명이 예비시험 출신이고, 이들이 대형 로펌 변호사 자리를 휩쓴다. 2020년 사법시험 합격자 1450명 출신을 보면 예비시험이 26.07%(378명)로 가장 많다. 로스쿨 출신 합격자는 도쿄대학 8.69%(126명) 게이오대학 8.62%(125명) 교토대학 7.38%(107명) 순이다. 합격률도 예비시험 출신이 가장 높아 89.36%(423명 중 378명)다. 주요 로스쿨 합격률은 그보다 낮아 히토쓰바시대학 70.59%(119명 중 84명) 도쿄대학 59.43%(212명 중 126명) 교토대학 57.84%(185명 중 107명) 순서다. 유명 로펌에 취업한 변호사들 학력은 대학 졸업이 끝인 경우가 많다. 예비시험 출신이라서다. 로스쿨 학력이 있어도 ‘중퇴’를 붙인 소개가 적지 않다. 일본 로스쿨은 실패했다는 게 안팎 평가이다.

천경훈 서울대 로스쿨 교수가 지난주 한 토론회에서 변호사시험 형식을 확 바꾸자고 제안했다. 그는 “현재 변호사시험은 너무나 많은 판례를, 요지만 피상적으로 암기하도록 요구하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학생들은 수험용 요약서에만 매달리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실무능력도 약화할 것”이라고 했다. 대안으로 “근본 내용을 이해하고 있으면 잡다한 지식을 잔뜩 암기하지 않고도 풀 수 있는 문제, 근본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판례를 많이 외우고 있어도 풀기 어려운 문제를 내야 한다”고 했다. 가령 미국 변호사시험에서는 ‘이러한 상황에서 이러저러한 권리가 있는가’라고 묻고는, 선택지로 ① Yes, because ## ② Yes, because $$ ③ Yes, unless && ④ Yes, unless %%를 준다고 한다. 쟁점을 아는지 묻는다는 것이다.

천경훈 교수는 최연소로 사법시험에 붙고 수석으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이런 경력이다 보니 어떤 변호사들은 “모든 학생이 천 교수 당신 같지는 않다”고도 한다. 그러면서 “요새 나오는 변호사들은 (우리 때와 달리) 실력이 변변치 않다. 오히려 판례를 더 외워도 시원찮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 변호사 실력 없다는 얘기는 언제나 있었다. 지금은 1500명인 합격자가, 1000명이던 시절은 물론 700명, 500명, 300명 때도 있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1971년 사법시험에서 처음으로 정원을 정해 뽑았다. 이전까지 절대평가였다. 이 때문에 사법연수원 교수가 “실력도 없는 무자격자를 뽑았다”고 했다. 이 연수원 제1기 입학생은 이공현 전 헌법재판관을 비롯해 32명에 불과했다.

판례란 소송의 결과다. 이런 판결들을 그것도 결론만 외우다 졸업하면 모든 사안을 소송 관점에서 보게 된다. 소송을 일으키거나 이를 막으면서 돈을 받는 소송업무 시장은 오래전부터 포화다. 로스쿨이 도입되기 직전인 2007년 나는 경제신문에서 일했는데, 조근호 사법연수원 부원장과 함께 사내·자문 변호사를 늘려야 한다는 캠페인 기사를 썼다. 그는 “연수원과 기업을 잇는 브로커가 되겠다”고까지 말했고, 스스로도 고검장 퇴직 이후 회사를 차려 대표이사가 됐다. 송무 변호사가 아닌 자문 변호사를 늘리자는 이유가 있었다. 분쟁을 해결하는 것보다는 예방하는 것이 기업을 비롯한 법률 소비자에게 이득이고, 변호사로서도 전문분야가 생겨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사내 변호사가 생각만큼 늘지는 않았다. 변호사를 채용한 기업들은 이들 때문에 도리어 일이 안 된다고 했다. 계약서 검토를 시키면, 이래서 위법이고 저래서 불법이라며 부정적인 의견만 내놓는다고 했다. 사내 변호사로 들어간 연수원 제자들을 불러 모은 조근호 부원장이 “내가 검사장이지만 기업에서 일하는 변호사라면 가능하면 일이 되는 쪽으로 조언을 하는 게 맞다”고 했다. 로스쿨 학생이 더 많은 판례를 외운다고 좋은 사내 변호사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송무가 기본이 되어야 자문 변호사도 된다는 반론도 별다른 근거가 없다. 오히려 요즘 글로벌 기업에 입사하는 적잖은 변호사가 로펌을 거쳐 가고 있다. 로스쿨이 아닌 로펌에서 기업 자문을 배워 입사하는 셈이다.

로스쿨 교수들이 출제와 채점 편의를 위해 계속해서 단순 암기를 묻는 이상, 독학으로 변호사가 되겠다는 요구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일본처럼 되는 것이다. 이미 인공지능이 판례를 검토해서 소장까지 쓰는 시대다. 분쟁을 일으키는 변호사가 아닌 갈등을 해소할 법률가가 사회에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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