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부터 2011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1991년 4월22일 더치페이가 지침인 회사가 있다고요?
밥값을 각자 내는 ‘더치페이’, 다들 익숙한 문화일 겁니다. 책 <콩글리시 찬가>는 더치페이를 “깍쟁이 같은 네덜란드인들을 못마땅하게 본 미국인들이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며 “해방 후 미국을 규범으로 삼은 한국의 서구화가 비교적 잘 반영된 콩글리시”라고 설명하는데요.
30년 전 오늘 경향신문에는 더치페이를 ‘제도화’한 회사에 대한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광림’이라는 곳인데요. 소방차와 크레인 등 특장차를 생산하는 회사입니다.
1991년 4월 광림 측은 “점심값은 각자의 주머니에서 개별 지불하며 직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점심값을 한꺼번에 내는 것을 금한다”라는 권고지침을 사내에 발표했습니다. 점심시간에 동료들끼리 식당에 가게 되면 으레 가장 직책이 높거나 먼저 나가는 사람이 밥을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요. 당시 물가가 매일 치솟는 실정이라 4~5명의 밥값을 혼자 내기에는 부담이 너무 컸다고 합니다. 이 지침은 사내에서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결혼이나 돌잔치 등을 기념해 한턱 내는 경우마저 막은 것은 아닙니다. ‘대외 접대 목적의 점심은 접대 책임자가 한꺼번에 밥값을 지불하고 접대비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한다’는 예외 규정을 뒀습니다.
회식할 경우에는 될 수 있는 한 값싼 소주를 택해 마시도록 했습니다. 소주를 ‘광림술’이라고 칭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다만 주량은 마음껏으로요. 때에 따라서 ‘입가심’으로 1인당 맥주 1병씩은 허용했다고 합니다.
좋아보이기도 하면서 다소 강압적으로 느껴지는 이 지침. 이렇게까지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시 회사 측은 “직장생활에 있어 점심 한끼는 소박한 즐거움이지만 점심 한 끼, 술 몇 잔으로 해서 서로가 마음의 부담을 느끼거나 가정과 건강에 주름이 가게 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 것 같아 이를 막는다는 뜻에서 마련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이러한 지침이 속되거나 강압적이라는 인상을 줄 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각자의 주머니 사정상 점심값을 무한정 쓸 수 있는 형편이 못 되는 바에야 일정한 범위를 정해 그 안에서 부담 없이 지내자는 취지”라며 대다수 직원이 긍정적으로 지침을 받아들인다고 했습니다.
더치페이 문화는 2016년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확산됐습니다. 통계로도 확인됐습니다. 지난 2016년 신한카드가 김영란법 시행 전 열흘과 시행 후 2주간(평일 기준)의 법인·개인카드 일 평균 사용액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는데요. 유흥주점에서의 법인카드 이용금액은 법 시행 이전보다 5.7% 감소했습니다. 요식업종은 4.4%, 골프는 6.4% 줄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