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금은 누구에게나 공평할까...이재명 지사가 재점화한 '일수벌금제'

2021.05.06 18:59 입력 2021.05.06 19:02 수정

이재명 경기도지사. 이 지사가 최근 재산비례 벌금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관련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경기도지사. 이 지사가 최근 재산비례 벌금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관련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같은 죄를 지어 벌금형에 처해도 부자는 부담이 크지 않아 형벌의 효과가 떨어지고 빈자에게는 더 가혹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달 25일, 차기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페이스북 게시글이 ‘일수벌금제’를 둘러싼 논쟁에 다시 불을 붙였습니다.

벌금은 범죄를 저지른 책임을 물어 일정 금액의 돈을 국가에 납부하게 하는 형벌입니다. 현재는 판사가 범죄자의 경제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총액’만 정해 벌금을 선고합니다. 그러나 같은 액수의 벌금이라도 소득과 재산에 따라 처벌 효과는 다릅니다. 총액벌금제는 그런 상황을 감안하지 않고 선고하기 때문에 형벌의 불평등을 초래한다는 지적이 나오곤 합니다. 몇백만원 벌금을 내지 못해 교도소에 들어가 노역을 하는 저소득층 시민도 있습니다.일수벌금제는 총액벌금제와 달리 범죄자의 ‘하루 수입’에 연동해 벌금을 매기는 제도입니다. 1단계에서 범죄의 경중에 따라 벌금 일수(日數)를 정하고, 2단계에서 행위자의 경제력을 고려해 하루당 얼마의 벌금을 부과할지를 정하는 것입니다. 벌금 일수와 일수정액을 곱하면 벌금 총액이 정해집니다. 경제적 차이를 고려하기에 재산비례벌금제·공정벌금제라고도 부릅니다.

일수벌금제는 꾸준히 총액벌금제의 대안으로 거론돼 왔지만, 정작 제도로는 정착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30여년째 갖춰지지 않은 ‘현실적 여건’

일수벌금제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85년입니다. 당시 법무부의 형사법개정특별심의위원회 소위원회는 “벌금정액제의 폐단을 시정하고, 납부자의 경제적 형편에 따라 납부액수에 차등을 두는 일수벌금제를 도입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조선일보 1985년 12월20일자 보도). 범죄자의 경제력을 정확하게 파악할 만한 제도적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수벌금제가 최종 채택되지는 않았습니다.

1992년과 2011년 형법개정안에서도 일수벌금제와 관련된 내용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992년 형법개정법률안 제안이유서에는 “벌금액을 정할 때 범인의 재산상태를 고려해야 한다는 규정은 벌금액 산정의 기본 원리에 해당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벌금형의 형벌 적응성은 범인의 재산상태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라는 이유에서입니다.

반면 2011년 형법 일부개정법률안 제안이유서에는 일수벌금제를 도입하지 않기로 한 이유가 담겨 있는데요. “재산상태에 대한 충분한 기초조사가 이루어지기 곤란한 현실에 비추어 보면 일수벌금형제도를 도입할 경우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키고 형평성 시비를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2011년 개정안에는 현행 총액벌금제를 유지하는 대신 재산상태에 따라 벌금형의 형벌효과가 달라지는 폐해를 줄이기 위해 “벌금액은 범인의 경제적 사정을 고려해 정해야 한다”는 조항이 신설됐습니다.

두 개정안은 모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됐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인 당시 국가인권위원회는 “총액벌금제는 경제적 능력에 따라 형벌의 실질적 경중이 달라지고, 형벌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며 일수벌금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했습니다.

일수벌금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습니다. 2017년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문 대통령은 “소득에 따른 차등벌금제 도입을 추진하여 재산에 따른 벌금 납부 형평성 문제를 시정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한 ‘민생사법 공약’을 발표했습니다. 문 대통령 취임 이후 2019년 민주당과 법무부는 당정회의를 통해 일수벌금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도입에 큰 진척은 없습니다.

천대엽 대법관 후보자가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천대엽 대법관 후보자가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높은 도입 찬성 여론, 반면 강한 우려

지속적인 일수벌금제 도입 논의에도 불구하고 총액벌금제가 유지되고 이유는 무엇일까요? 박미숙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사가 2019년 6월21일부터 8월14일까지 일반인 1063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는 놀랍게도 일수벌금제 도입을 75.6%가 찬성한다고 응답했습니다. 서면으로 진행된 전문가 대상 조사에서도 마찬가지로 78.9% 비율로 찬성한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일수벌금제의 도입과 취지에는 동의하는 의견이 많은 것인데요. 하지만 반대 의견을 밝힌 응답자들은 그 이유를 ‘동일 범죄에 대한 다른 처벌은 불공평(73.4%)’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일수벌금제 도입 문제가 불공정 논란으로 비화할 우려 또한 높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재명 도지사의 발언 후 지난달 27일 실시된 여론조사(오마이뉴스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에서는 응답자 500명 중 일수벌금제에 대한 찬성이 47.6%, 반대가 45.5%로 팽팽한 모습도 보였습니다.

일수벌금제를 도입하지 못한 현실적인 이유는 지난달 28일 천대엽 대법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 발언에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경제력에 비례해 벌금을 부과하는 게 실질적 공정, 법의 정신에 맞지 않느냐’는 김남국 민주당 의원 질문에 천 후보자는 “개인의 재산과 소득을 어떻게 파악할지 등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채 도입되면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러면서 ”재산이 하나 있는 시민은 자칫 역차별을 당할 수도 있다“라며 시기상조론을 내세웠습니다.

벌금액 산정 방법과 기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 필요, 소득과 재산을 파악하는 조사관 제도 같은 행정 시스템의 미비, 형평성 논란, 기본권 침해 등 위헌 소지 여부 논란이 일수벌금제 도입이 늦어지는 주된 이유입니다. 다만 현재 실시되고 있는 총액벌금제도 법률상 명문으로 된 근거는 없습니다. 벌금 제도에 대한 폭넓은 해석이 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벌금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벌금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재산과 소득, 분명히 나눌 수 있을까

21대 국회에서는 민주당 이탄희 의원과 소병철 의원이 각각 일수벌금제 도입을 담은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한 상태입니다. 이탄희안과 소병철안에서 일수벌금제를 규정하는 방식은 미묘하게 다른데요. 법안을 보면 벌금형의 일수 정액을 정하는 기준으로 이탄희안은 “피고인의 1일 평균 수입”을, 소병철안은 “피고인의 자산과 1일 평균 수입”으로 하도록 돼 있습니다. 벌금 액수 산정에 고려되는 경제력을 ‘소득’만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소득과 재산을 합친 것’으로 볼 것인지는 일수벌금제를 둘러싼 또 하나의 쟁점입니다.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도 페이스북 글에서 “소득이 적은 사람들에게 벌금액을 감경하는 것에 찬성한다”면서도 “벌금액을 소득과 재산에 모두 비례시키는 것에는 반대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최정학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재산과 소득을 모두 고려해 벌금 액수를 정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소득은 범죄자의 직업이나 소득세 과세 현황 등을 조사해 비교적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반면 재산은 그 성격을 일률적으로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조상의 무덤이 있는 선산처럼 곧바로 현금화하기 어려운 재산이 있는 반면 적금이나 주식처럼 경제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금융자산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소득과 재산은 명확하게 구분되는 배타적인 개념이 아니기에 판결 과정에 복합적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습니다.

독일의 경우, 일수벌금은 원칙적으로 동산이나 부동산 등의 재산을 제외한 ‘순소득’을 기준으로 정하도록 돼 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일수벌금의 산정을 위해 재산과 그 밖의 사실”을 추산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피고인의 소득이 적다고 하더라도,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예비자금 성격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판단되면 이를 일수벌금 산정의 대상으로 볼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을 둔 것이죠.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수벌금제를 도입한 국가와 폐지한 국가

일수벌금제를 제일 처음 도입한 국가는 핀란드입니다. 형벌은 행위자의 상이한 경제적 능력에 적합한 것이어야 한다는 이유에서 법안이 제정됐습니다. 이후에도 덴마크·독일·오스트리아·프랑스·스위스에서 일수벌금제를 도입해 적용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시범 시행 후 폐지한 국가도 있습니다. 미국 위스콘신 밀워키 지방법원과 영국이 그 사례입니다.

일수벌금제의 목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비교적 가벼운 범죄에 벌금 부과의 형평성을 높이기 위해서와 비교적 무거운 범죄에 구금시설의 인적, 물적 비용을 절감하고 단기 자유형의 폐해를 막기 위해서입니다. 대부분의 국가가 최저 일수와 최고 일수, 벌금액에 최소와 최대한도를 두고 있습니다. 과도한 벌금액이 부과될 경우 본래 목적과 다르게 벌금 미납으로 인해 형의 종류가 단기 자유형으로 넘어가게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핀란드, 오스트리아의 경우 고의가 아닌 경우 재산상의 변동을 반영하여 벌금액을 다시 부과하도록 운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스위스의 경우 납부 기간 연장과 사회봉사활동으로 대체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독일 또한 분납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오히려 고통을 장기화시킨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영국의 경우 시범 운영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나 실제 도입 이후 부정적 평가가 주를 이루고 범죄자의 소득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문제에 부딪혀 7개월 만에 폐지했습니다. 미국과 일본 또한 개인의 경제 사정에 대한 정확한 조사가 어렵다는 등의 현실적인 한계 탓에 도입 논의 수준에 그칩니다.

공정벌금제·재산비례벌금제 등 다양한 이름으로 논의되고 있는 일수벌금제. 관련 법안이 꾸준히 발의 되고 있는 만큼 관련 논의는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 지사가 쏘아올린 공이 현실이 될 수 있을까요? 공평한 기준을 세우는 것과 함께 불공정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를 잠재우는 것이 관건일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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