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결혼작사 이혼작곡’ 임성한의 미신적 세계관

2021.07.30 16:27 입력 2021.07.30 17:03 수정
칼럼니스트 위근우

‘정상 가족’의 분열을 ‘초현실적 인과’로만 설명하려는 아집

‘피비’라는 필명으로 돌아온 임성한 작가의 신작 TV조선 <결혼작사 이혼작곡>에는 죽은 신기림(노주현)이 나타나는 등 어김없이 미신적 코드가 등장한다. 해당 드라마 화면 캡처

‘피비’라는 필명으로 돌아온 임성한 작가의 신작 TV조선 <결혼작사 이혼작곡>에는 죽은 신기림(노주현)이 나타나는 등 어김없이 미신적 코드가 등장한다. 해당 드라마 화면 캡처

임성한 드라마에서 미신이란 소재의 존재감을 음식과 재료에 비유한다면, 알리오 올리오에서의 마늘, 고등어 찜에서의 무처럼 굉장히 필수적인 요소일 것이다. 아예 무속인을 주인공 삼아 신병을 주요 소재로 삼은 MBC <왕꽃선녀님>이나 귀신에게 빙의된 아수라(임혁)의 눈에서 레이저 같은 안광이 나오던 SBS <신기생뎐> 같은 대표적인 사례를 비롯해 그의 작품 다수에선 빙의, 전생, 점 관련 이야기가 깨알같이 포함되어 있다. 절필 선언 이후 ‘피비’라는 필명으로 6년 만에 돌아온 TV조선 <결혼작사 이혼작곡>(이하 <결사곡>)에서도 첫 화부터 예지몽(태몽)이 나오고, 이후 죽은 신기림(노주현)의 귀신이 등장하는 등 변함없는 미신적 코드가 인장처럼 박혀 있다. 그러니 신기림의 영혼이 집에서 인절미를 주워 먹는 장면을 보며 소위 ‘막장 드라마’를 상징하던 임성한의 변함없음을 읽어내기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어쩌면 임성한 드라마 중 가장 흥미로운 작품으로 기록될지도 모를 <결사곡>을 보면(결말을 아직 보지 않았기에 유보적일 수밖에 없다) 그동안 막장 드라마 작가의 개연성을 포기한 자극적 소재로만 여겨지던 미신적 요소들이 어쩌면 그의 세계관 속 개연성을 가상적으로 완성하는 가장 중요한 토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믿는 좋은 가부장제의 세상과 그렇지 못한 가부장제가 붕괴한 갈등의 세계를 조화시키기 위해 그에겐 현실의 가부장을 넘어선 초현실적 권위가 필요하다.

전생은 임성한이 즐겨 쓰는 미신 코드 중 하나인데, <결사곡>에서도 최소 두 번 언급이 된다. 시즌 1 7화에서 신유신(이태곤)에게 의붓어머니인 김동미(김보연)는 뜬금없이 전생을 믿느냐 묻고 명색이 정신과 의사인 유신은 “전혀 근거 없지 않잖아, 여러 정황이”라고 답한다. 우리는 전생에 어떤 사이였을 것 같으냐는 동미의 질문에 그는 “연인 사이였을 수도 있고 애틋한 모자 사이였을 수도 있고”라고 말한다. 작품 내내 동미와 유신이 유지하는 유사 연애적 관계와 유신에 대한 동미의 상당히 노골적인 이성애적 욕망은 연인 아니면 애틋한 모자였을 전생으로부터의 인과로 설명된다. 시즌 2 5화에선 불륜 때문에 가족을 떠난 남편 박해륜(전노민)에게 분노한 딸 박향기(전혜원)를 달래고 이해시키던 이시은(전수경)이 “엄마도 견디려고 읽었던 책 다 떠올려봤어. 결론은, 전생에 나쁜 씨를 뿌린 모양”이라고 말한다. 대체 정신과 의사인 유신이 어떤 의학 공부를 하고, 인정받는 방송작가인 시은이 어떤 책들을 읽었기에 전생에 그리 확신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본인이 생각하는 규범의 붕괴를 구조적 차원의 문제가 아닌 초현실적 차원으로부터의 인과를 통해 설명하고픈 임성한 작가의 관점을 짐작할 수는 있다. 시은과 향기의 대사 이전 신에서 해륜에게 악다구니를 하던 향기는 “천륜? 개나 주라 그래”라고 말한다. 맞다. 임성한에게 이것은 천륜이 무너지는 일이다. 그가 다른 드라마들에서도 보여준 혈연에 대한 집착, 혈연이 소위 정상가족 모델로 유지 혹은 완성되어야 한다는 강한 믿음은 천륜이라는 개념을 통해 정당화된다. 어릴 적 헤어진 친딸을 그냥 데려오는 것도 아니고 수많은 비밀공작 끝에 자신의 의붓아들과 결혼시켜 가족을 구성하는 드라마의 제목이 <하늘이시여>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빙의·전생·점술 등 미신적 소재
임성한 드라마에선 필수적 요소
가부장제가 붕괴한 갈등의 세계
봉합을 위해 ‘초현실적 권위’ 소환

불륜을 해서 아이 생긴 게 아니라
예지몽이 불륜을 통해 실현되는 등
구시대적 믿음과 욕망의 공존 위해
시대구분 넘는 초월적 세계에 의존

가부장제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로 점철된 드라마가 임성한만의 것은 아니다. 출생의 비밀을 지닌 주인공이 혈연에 의해 본래 얻어야 할 영광을 얻고 결혼하며 완성되는 일일극, 주말극의 플롯은 시청자들에게도 매우 익숙하다. 임성한의 드라마가 그중 흥미로우면서도 분열적인 건, 그가 그리는 갈등이 전통적 가족 개념에 이미 내재한 모순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임성한의 작품 중 가장 대중적 인기를 끌고 상대적으로 무난했던 MBC <보고 또 보고>에선 ‘겹사돈’이라는 소재가 화제가 되었는데, 정씨네 자매 중 첫째(윤해영)와 둘째(김지수)가 박씨네 형제 중 둘째(허준호)와 첫째(정보석)와 각각 결혼하고 소위 가족 내 서열이 꼬이는 것에 대해 극중 어른들은 극구 반대한다. 이러한 갈등은 결혼을 독립된 두 주체의 결합이 아닌, 여성이 남성의 집에 편입되는 가족 모델로 보는 관점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보고 또 보고>는 이러한 가부장적 모델을 해체하는 방식 대신, 남자 집안에서의 서열로 부인 간 서열을 정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봉합한다. 도식적으로 설명하면 문제의 원인이 가부장적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있는데, 해결 방법을 정상가족에 대한 믿음에서 찾는 것이다. 그러니 필연적으로 균열이 생긴다. 임성한이 막장 드라마의 대모가 되는 분기점인 MBC <인어아가씨>의 중반부까진 주인공 은아리영(장서희)이 새 가정을 꾸린 아버지와 그의 후처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 집 딸 은예영(우희진)의 애인을 뺏는 이야기다. 가정이 붕괴됐다. 이것은 임성한 세계에선 천륜을 어긴 일이다. 그러니 복수해야 한다. 하지만 임성한은 남자의 변심 후 남은 가족이 힘들어지고, 이혼이 유독 여성과 자식에게 흠결로 남는 것이 남성 중심적 가족제도와 사회적 통념 때문이라는 것은 외면한다. 그것을 인정하면 주인공의 욕망과 주인공에 이입한 시청자의 욕망은 최종적으로 실현될 수 없다. 아리영의 복수는 본인이 예영 대신 좋은 집안 남자를 만나 또 다른 가부장제에 편입되는 것으로 완성된다. 구조적 문제에 대한 성찰이 빠진 상태에서 악은 오직 천륜을 어긴 아버지와 그의 후처의 개인적 문제일 뿐이다. 여기서 균열이 생긴다. 그렇다면 예영은 무슨 죄인가? 양심적 작가라면 예영에 대한 아리영의 복수를 쉽게 긍정해선 안 된다. 하지만 근대적 시민사회의 도덕률이 아닌 본인이 믿는 천륜이 기준인 임성한의 세계에선 예영이 겪는 일을 어머니의 업보로 표현한다. 대를 물려 내려오는 업보란 전생 개념과 오십보백보 차이다.

‘피비’라는 필명으로 돌아온 임성한 작가의 <신기생뎐> 속 아수라의 빙의와 안광도 회자되는 장면이다. 해당 드라마 화면 캡처

‘피비’라는 필명으로 돌아온 임성한 작가의 <신기생뎐> 속 아수라의 빙의와 안광도 회자되는 장면이다. 해당 드라마 화면 캡처

MBC <오로라공주>에서 동성애자인 나타샤(송원근)가 108배를 통해 이성애자가 되는 장면은 방영 당시에도 성소수자 혐오 논란이 있었는데, 이성애적 혈연 가족을 천륜으로 여기는 임성한에게 동성애자란 말하자면 세계관 내 오류 같은 것이다. 존재 자체를 지우진 않지만 해결은 해야 한다. 그러니 108배라는 종교적 행위를 통해 천륜을 복구한다. 한국 드라마 역사에 길이 남을 괴한 장면인 <신기생뎐> 속 아수라의 빙의와 안광도 그 자체만으로는 뜬금없어 보이지만, 시아버지인 아수라에게 인정받지 못하던 단사란(임수향)이 남편 가족 안에 편입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 사실 여기서도 문제는 제왕적 가부장인 아수라에게 있다. 그걸 부정할 수는 없지만, 또한 부잣집 며느리가 되고 아이를 낳아 가족을 이루는 욕망도 포기할 수 없다. 그러니 빙의를 통해 아수라의 가부장적 권위를 잠시 흔들어놓되, 빙의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사란의 기지와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해 사란은 사란대로 가족에 편입하고 아수라도 다시 착한 가부장의 권위를 획득한다. 여기서 귀신, 빙의, 업보 같은 것은 서사적 도구로서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아니다. 효용이 다한 구시대적 믿음(이것이 임성한 작품의 시대착오적 장면들을 구성한다)과 아직도 유효한 구시대적 욕망(이것이 임성한 작품의 시청률을 보증한다)이 공존하기 위해선 시대적 구분을 뛰어넘는 초월적 세계가 바탕에 깔려야 한다. 그것이 임성한의 초자연적 세계다.

칼럼니스트 위근우

칼럼니스트 위근우

앞서 <결사곡>이 임성한 드라마 중 가장 흥미로운 작품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고 한 것은, 불륜 중인 남편들에게서 천륜의 어긋남보다는 자기중심적이고 이중적인 태도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그의 부인들이 슬퍼하거나 분노하는 와중에도 이혼을 충분히 고려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진일보가 맞다. 하지만 시은의 전생 타령처럼, 임성한은 이것을 결혼제도에 내재한 모순들로 파악하고 밀어붙이기보다는 우리가 미처 파악할 수 없지만 인과가 확실한 업보의 문제로 둔다. 그가 미신을 광신해서가 아니라, 각각의 욕망을 정당화하거나 비판할 충분한 도덕적 기준과 정합적 세계를 여전히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젊고 잘난 남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천지신명께 비는 동미의 욕망을 밀착해 묘사하면서도, 그가 잠든 유신에게 키스하려 할 때 기림의 영혼 시점으로 힐난하듯 쳐다본다. 마찬가지로 부인 부혜령(이가령)과 비출산 부부로 살던 판사현(성훈)이 불륜을 통해 생각지도 못한 아이를 갖게 되는 것은 사현의 예지몽으로 제시되고, 이를 들은 혜령은 “우리가 피임만 안 하면 태몽”이라 풀이한다. 불륜을 해서 아이가 생긴 게 아니라, 아이가 생길 운명이 피임 때문에 다른 여성과의 관계에서 실현되는 것이다. 아이를 통해 완성되는 정상가족 신화를 포기하지 못하는 작가에게 다른 여자와의 섹스는 분명 잘못이지만, 아이를 낳지 않고 남편의 가족에 편입되는 걸 바라는 것도 잘못이다. 자유로운 삶을 고집하는 혜령의 욕망을 아주 부정하진 않더라도, 그 때문에 진정한 행복을 놓친 여성의 어리석음을 증명해야 한다. 그러니 예지몽이라는 형태로 운명론을 제시해야 한다. 기존 임성한식 설명을 빌리면 사현의 혼외자식은 혜령의 피임의 업보다. 심지어 최근 혜령은 본인이 불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여기서 예영의 불임이 어머니의 업보 탓이었던 <인어아가씨>의 끔찍한 관점이 반복되는 느낌을 받기란 어렵지 않다. 그래서 임성한의 미신이란, 세상을 자기 나름대로 설명하기 위한 관점인 동시에 세상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고 설명하려는 아집이다. 물론 그의 미신 코드는 언제나 비판의 대상이었다. 구분해야 할 건 그의 미신 코드가 괴팍한 작가의 악취미보다는 체계적으로 왜곡된 관점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리고 후자가 훨씬 좋지 않다. 시청자에게도, 본인에게도. 적어도 <결사곡>은 지금보단 훨씬 괜찮은 작품이 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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