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 배우들의 희노애락…연극 <분장실>

2021.08.16 14:37 입력 2021.08.16 22:51 수정

지난 7일부터 서울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상연 중인 연극 <분장실>의 한 장면. T2N미디어 제공

지난 7일부터 서울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상연 중인 연극 <분장실>의 한 장면. T2N미디어 제공

안톤 체호프의 연극 <갈매기>가 공연 중인 어느 극장의 분장실. 화장대 거울 앞에서 배우 A와 B가 분주하게 분장을 하고 있다. 분장실에 들어온 또 다른 배우 C는 막간을 이용해 주인공 ‘니나’의 독백을 연습하고 곧이어 무대로 향한다.

무대에선 공연이 진행되고, 아무도 없는 텅 빈 분장실에 고전 연극의 대사가 울려 퍼진다. 분장실의 유령, A와 B는 이제껏 자신들이 연기했던, 혹은 연기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주요 배역을 떠올리며 자신들만의 역할극을 펼친다.

지난 7일부터 서울 대학로에서 공연 중인 <분장실>은 극장 분장실을 배경으로 배우들의 무대에 대한 열정과 회한을 담은 연극이다. 지난 4월 타계한 일본 극작가 시미즈 쿠니오의 대표작으로, 1977년 초연 이후 일본에서 누계 상연횟수가 가장 많은 작품 가운데 하나다. 한국 상황에 맞게 각색돼 무대에 올랐다.

극중 A와 B는 죽어서도 분장실을 떠나지 못한 유령이다. 독재정권 시절 대학을 다니고 연기를 시작한 A는 ‘여자 배역’에 대한 로망이 있다. 생전 그는 주로 프롬프터(배우에게 대사와 동작을 일러 주는 사람)를 하거나 대사 없는 남자 단역을 맡았다. 함께 공연하던 남자 배우들이 걸핏하면 데모하다 끌려가 남자 배역이 늘 모자랐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서 제대로 긴 대사를 해본 적은 없지만, 단역부터 주인공까지 모든 동선과 대사를 기억할 만큼 연기 열정이 넘친다. B는 죽어서도 선망했던 ‘니나’ 역에 미련을 놓지 못한다. 하필 <갈매기> 공연이 벌어지고 있는 극장에서 니나를 연기하는 배우 C의 소품부터 의상까지 하나하나 탐 내며 그를 따라한다. 둘은 공연이 한창 진행 중인 극장 분장실에서 티격태격하며 연기 연습을 하고 자신들만의 ‘관객 없는 무대’를 만들어간다.

그러던 중, C의 언더스터디(주연 배우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대신 투입되는 배우)인 D가 나타나며 분위기가 급변한다. D는 주인공 ‘니나’가 원래 자신의 배역이라는 망상을 갖고 있다.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C에게 D는 젊은 자신에게 니나 역을 돌려달라고 말한다. 이런 상황이 어처구니 없게 느껴지는 C와 집착을 버리지 못한 D는 다툼을 벌이다 헤어지고, 곧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한다.

지난 7일부터 서울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상연 중인 연극 <분장실>의 한 장면. T2N미디어 제공

지난 7일부터 서울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상연 중인 연극 <분장실>의 한 장면. T2N미디어 제공

지난 7일부터 서울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상연 중인 연극 <분장실>의 한 장면. T2N미디어 제공

지난 7일부터 서울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상연 중인 연극 <분장실>의 한 장면. T2N미디어 제공

여성 배우 네 명이 무대에 오르는 연극은 연기와 삶에 대한 배우들의 희노애락을 풀어보인다. 분장실은 무대 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들의 내면의 아픔과 결핍이 드러나는 공간이다. 배우들은 분장실에서 크고 작은 다툼을 벌이기도 하고 때로 갈등하지만, 서로가 가진 무대 위에서의 외로움과 불안을 깊이 이해한다.

분장실의 유령들은 누구보다 강한 연기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지만, 정작 무대 위에 서는 것이 두려운 듯 분장실을 떠나지 못한다. 분장실에서 출발해 시종일관 이곳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연극은 마침내 공연 말미, 무대 위를 비추며 막을 내린다.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아온 배우들이 연기하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체호프의 <갈매기>와 <세 자매> 등 고전 명작의 극중극 장면은 이 공연이 선사하는 또 다른 매력이다.

연극과 TV 드라마를 오가며 활동하는 연기파 배우들이 다수 출연한다. 극중 A역에는 서이숙과 정재은이, B에는 배종옥과 황영희가 번갈아 가며 출연한다. C는 손지윤과 우정원이, D는 연극 무대에 첫 데뷔하는 이상아, 지우가 캐스팅됐다. 서울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9월12일까지 공연한다. 여자 배우들의 공연이 끝나면 원작을 남자 배우 4명이 출연하는 작품으로 각색한 버전이 9월19일부터 10월31일까지 무대에 오른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