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근무 중 뇌종양 진단 노동자, 2년 전 산재 신청했지만 결론 못보고 또 사망

2021.11.29 17:21 입력 2021.11.29 18:44 수정

2018년 7월22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가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농성을 벌이는 현장의 모습. 김영민 기자

2018년 7월22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가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농성을 벌이는 현장의 모습. 김영민 기자

삼성전자에서 일하던 중 병에 걸린 노동자가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보상을 신청했지만 역학조사가 진행되는 과정에 사망하는 일이 또 발생했다.

29일 노동인권단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는 삼성전자에 입사해 액정표시장치(LCD) 천안사업장(현 삼성디스플레이)에서 근무하다 뇌종양 진단을 받았던 박모씨(37)가 전날 사망했다고 밝혔다.

박씨는 2010년부터 LCD 공정 자동화 설비의 유지 보수를 담당하는 엔지니어로 일했고, 2014년 처음 뇌종양 진단을 받은 뒤 수술을 받는 등 치료를 해왔다. 2019년 초 뇌종양이 재발해 그해 8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보상을 신청했다. 지난해 1월 산업안전보건공단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으로 사건이 넘어갔고, 이곳에서 역학조사를 시작했다. 역학조사는 질병과 유해·위험요인의 인과관계를 따지는 절차다. 반올림에 의하면, 지난 12일 연구원 측이 현장조사를 진행했는데 박씨는 병세 악화로 참여하지 못했다. 산재 보상 신청 때로부터 2년이 넘었지만 승인 여부를 확인하지 못한 채 끝내 박씨는 사망했다.

지난 9월에도 삼성전자의 LCD 천안사업장에서 7년간 근무한 뒤 유방암 진단을 받았던 A씨(39)가 산재 보상을 신청한 뒤 승인 여부를 통지받지 못하고 사망했다. A씨 사건은 근로복지공단 산하 직업환경연구원에서 역학조사를 진행하던 중이었다. 내부 지침상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6개월, 직업환경연구원은 3개월 안에 역학조사를 마쳐야 하지만 상당수 사건이 이를 어겨 처리되는 것으로 집계된다. 공단 쪽은 인력 부족을 호소하지만, 노동계에선 적극적으로 역학조사를 생략해 산재 처리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비판해왔다.

▶관련기사: 지침 있어도 늦어지는 산재 역학조사…그 사이 노동자는 죽고 없다

반올림은 입장문을 내고 “개별 산재 여부를 밝히기 위해 2년이나 넘게 역학조사를 하는 것은 신속한 보상이라는 산재보험 취지에 어긋나는 긴 조사기간이자 투병 중인 당사자에게 가혹하게 긴 시간”이라며 “고인은 투병 중에 꼭 필요했던 산재보험 지원을 받지 못했고, 유해하고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일했기에 발생한 산재임을 인정받지 못한 채 사망했다”고 했다. 반올림은 “반도체·LCD 산업에서 이미 많은 뇌종양 피해자들이 드러났고 10명이나 산재로 인정됐으며, 2019년 반도체 제조공정 근로자에 대한 건강실태 역학조사도 ‘뇌 및 중추신경계 암’은 위험비가 증가하고 있다고 나왔다”며 “언제까지 산재 인정을 받기 위해 역학조사를 이유로 이렇게 긴 시간이 걸려야 하느냐”고 했다.

반올림은 정작 역학조사가 형식적으로 이뤄진다는 점도 지적했다. 반올림은 “현장 조사는 고인이 실제 근무했던 열악한 천안사업장 대신 아산사업장에서 이뤄졌고, 그마저도 제품 생산이 되지 않는 멈춰진 라인을 보여주는 방식의 조사였다”며 “회사가 보여주는 대로만 하는 형식적인 조사로 어떻게 억울한 죽음의 원인을 밝힐 수 있느냐”고 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측은 “진행 중인 역학조사와 관련해서는 비공개”라며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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