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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옛 흔적 남겨야만 ‘도시재생’일까?…쓰임에 집중한 공간 창조 시도

2022.01.10 21:31 입력 2022.01.10 21:36 수정
박정현

마을이 된 건축, 건축이 된 마을

[콘크리트와 글로 빚은 20세기 한국 건축](9)옛 흔적 남겨야만 ‘도시재생’일까?…쓰임에 집중한 공간 창조 시도

서울 은평구 구산동도서관마을<br />/김창길기자

서울 은평구 구산동도서관마을
/김창길기자

명문학교 과외방·골목식당 등 100여년 역사와 풍경
고스란히 간직한 서울 돈의문박물관마을은
완전히 새로 지어졌으나 영화세트장처럼 보여
전시관 빼면 ‘기능’ 갖고 있는 곳 찾아볼 수 없어

지난 10년 건축과 도시 분야의 정언 명령은 “기억하고 보존하라”였다. 개인의 기록에서 정부의 정책에 이르기까지 옛 자취를 없애지 않고 최대한 살리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문화재에 가까운 유서 깊은 건축물뿐만 아니라 아파트, 빌라, 오래된 가게 같은 추억이 서려 있는 곳에서 공장, 산업시설 같은 시대를 증언하는 장소까지, 잊으면 안 되는 리스트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1970~8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단지들이 하나둘 재건축되자,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들이 자발적으로 유년기의 배경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몇몇 건축가들은 다세대·다가구 주민들이 편의를 위해 임시방편으로 증축하고 고친 흔적들을 조사했다. 서울시를 비롯한 지방정부는 전면 재개발 대신 ‘재생’으로 정책의 물꼬를 바꾸었다. 30년마다 도시를 백지장으로 만드는 일을 계속 반복할 수는 없다는 반성이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두드러진 하나의 경향은 ‘마을’에 대한 애착이다. 개별 건물 하나하나는 건축적으로 큰 가치가 없더라도 이들이 모여 만들어낸 길과 풍경은 소중하다는 정서를 많은 이들이 공유했다. 여러 시대에 걸쳐 지어져 고쳐지고 쓰임을 달리하며 살아남은 곳들은 기억의 저장소이므로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서울 돈의문박물관마을이 탄생한 배경이다.

돈의문박물관마을이 위치한 경희궁과 강북삼성병원 사이의 삼각형 땅은 돈의문1구역 재정비 촉진지구에 속해 있었다. 지금 이 지구는 신축 아파트단지로 바뀌어 있다. 돈의문과 서울 성곽에 면해 있어 역사는 조선시대까지 가뿐히 거슬러 올라간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의 주택, 도시한옥, 1940~60년대 목조주택, 1970년대 불란서주택 등 다양한 유형의 주택과 유한양행과 강원산업의 사옥 등 건물이 자리했었다. 서울고등학교 등 인근에 있던 명문고등학교가 강남으로 이전하기 전에는 과외방이 불을 밝혔고, 이후에는 회사원들을 상대로 한 식당가로 변모하는 등 서울의 변화가 켜켜이 쌓인 장소였다.

재개발조합으로부터 이 땅을 기부채납 받은 서울시는 전면 철거한 뒤 공원을 만들 계획을 세웠으나, 2014년 보존하는 쪽으로 변경한다. 마을의 길과 건물, 역사와 사람들에 대한 꼼꼼한 기록과 함께 돈의문박물관마을로 조성하는 설계가 진행되었다. 약 30년 전부터 도시와 건축을 비움과 기억이라는 키워드로 바라보고 공공적이고 윤리적 실천을 강조해온 건축가 민현식이 설계를 맡았다. 건축가는 이 땅을 양피지로 여겼다. 이전에 쓴 글자를 긁어낸 흔적, 그 위에 다시 스며든 잉크 자국 등이 공존하는 양피지처럼 마을이 품은 시간의 켜를 가능한 한 드러내는 것을 과제로 삼았다. 68채 건물 가운데 15채는 완전 철거되었고, 나머지 43채는 대수선하거나 철거 후 신축 및 개축되었다.

이 과정에서 철저하게 지켜진 것은 ‘스케일’이다. 건물의 규모는 물론이고 실내 공간의 면적과 높이, 골목길의 폭 등 100여년의 시간 동안 만들어진 동네의 크기는 고스란히 남았다. 건물의 형태와 기능은 달라져도 신체의 움직임과 긴밀하게 연결된 공간의 크기가 변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곳을 쉽게 기억한다. 외벽과 창호도 가능한 한 기존 마을과 유사한 재료와 색을 선택해 설치했다.

박물관의 프로그램은 다양하다. 유한양행의 첫 사옥이 있던 곳에 새로 지은 건물은 서울도시건축센터가 사용한다. 북측에 모여 있는 한옥은 숙박시설로 계획했으나 현재는 체험학습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이탈리아 레스토랑과 한정식집은 이 일대의 역사와 유적을 전시하는 돈의문역사관으로, 나머지 건물들은 전시나 아티스트 레지던시, 식음료 판매 등 다양한 용도로 쓰인다. 몇 동을 비워내 가운데에 마련한 마당은 다양한 옥외 이벤트를 위한 공간이다. 기능이 정해져 있지 않지만 방치된 것도 아닌 한국 전통의 마당, 다양한 활동을 수용하고 촉발할 수 있는 비움의 잠재력에 오랫동안 천착한 건축가의 철학이 녹아 있다.

박물관마을이 재정비되기 전 이곳에 대한 기억이 없는 이라면, 무엇이 바뀌었는지 알아차리기 힘들 만큼 과거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시간의 지층을 보존한다는 계획은 더할 나위 없이 성공적이다. 그러나 바로 이 때문에 돈의문박물관마을은 테마파크나 영화세트장처럼 보인다. 완전히 새로 지었으나 50여년 전 주택의 작은 방 크기까지 그대로 재현된 실내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담기는 어려웠다. 2017년 도시건축비엔날레 전시장으로 사용되었으나, 낮은 층고와 짧은 관람 거리, 좁은 실내, 잦은 출입 등으로 전시에 적합하지 않았다. 한옥을 게스트하우스 같은 숙박시설로 이용한다는 계획도 여러 이유로 보류 중이다. 팬데믹이 이어지면서 돈의문전시관을 제외하면 고정된 기능을 갖고 있는 건물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여기에 복고 바람에 맞추어 설치된 1960~70년대 간판과 생활집기 등은 이곳의 시계가 과거에 멈추어 있다는 인상을 결정적으로 더한다. 지금 돈의문박물관마을은 흔적이 짙게 남은 양피지 위에 오늘의 기억을 덧쓰지 못하고 있다.

[콘크리트와 글로 빚은 20세기 한국 건축](9)옛 흔적 남겨야만 ‘도시재생’일까?…쓰임에 집중한 공간 창조 시도

서울 은평구의 구산동도서관마을. 지역주민들이 도서관 설립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예산 절감을 위해 기존 건물을 최대한 활용했다.  사진은 도서관 내부 모습.   김창길 기자

서울 은평구의 구산동도서관마을. 지역주민들이 도서관 설립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예산 절감을 위해 기존 건물을 최대한 활용했다. 사진은 도서관 내부 모습. 김창길 기자

은평구 주택 8동·막다른 도로 재정비한 ‘구산동도서관마을’
원형 보존 강박 벗어나 용도에 맞게 설계
서가와 얽혀 있는 옛 건물의 수십개 방
보통의 도서관과는 ‘확연히 다른 공간’ 경험하게 만들어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또 다른 마을이 있다.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구립 구산동도서관마을이다. 허물고 새로 짓는 쉬운 방법을 마다하고 기존 건물을 보존해 재활용했다는 점에서는 돈의문박물관마을과 유사하지만 사정이 꽤 다르다. 돈의문박물관마을은 인근이 아파트단지로 재개발되면서 조선시대부터 이어지는 이 지역의 과거를 증언할 유일한 곳이 되었고, 서울시는 예산 투입 없이 기부채납 받아 사업 부지를 마련했다. 반면 구산동도서관마을은 도서관 설립을 위한 지역주민들의 노력으로 2006년 시작되었다. 이 요청에 화답한 은평구청이 필지를 매입해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처음에는 신축을 구상했으나 예산 절감을 위해 기존 건물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 담론이나 윤리적인 당위보다 현실적인 사정이 더 절박한 곳이었다. 은평구 일대는 1960년대 구획정리사업을 통해 새로운 시가지로 구획되었고, 구산동에는 비슷한 시기 유사한 경제적, 건축적 이유로 비슷하게 지어진 건물이 지천으로 깔려 있다. 남기는 것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지역이 아니었다.

구산동도서관마을은 기존 주택 8동과 막다른 도로를 포함해 11개의 필지에 건축가 최재원의 설계로 조성되었다. 1972년과 2002년 사이에 지어진 주택 5동과 이들을 연결하는 구조물과 신축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주변 주택과 유사한 재료와 규모로 만들어진 구산동도서관마을은 쉽게 눈에 띄지도 않는다. 얼마 전에 지었는지 예전부터 있었는지 가늠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도서관이라는 프로그램에 맞게 완전히 새로이 재구성된 내부는 건축이 지닌 가능성을 탁월하게 보여준다. 언제 생긴 건물인지 헷갈렸던 방문자라도 실내에 들어서는 순간, 이곳이 삶의 방편에 따라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라 정교한 계산과 기획의 결과라는 것을 대번에 알아차릴 것이다. 실내에서 기존 건물의 외벽은 방문객으로 하여금 지금 서 있는 곳이 한때 골목길이었음을, 여러 건물들이 모여 하나의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건축가는 기존 건물을 원형 그대로 살리려는 강박에 빠지지 않았다. 옛 건물을 연결하는 새로운 증축부에 서가와 서고를 배치했다. 엄청난 책의 무게를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보존한 주택 5동에 있던 수십 개의 방은 이 서가와 얽혀가며 열람실, 토론실, 동아리활동실 등이 되었고, 여러 계단은 이 방들을 수직으로 연결하며 도서관 전체를 미로처럼 만든다. 하나하나 따져보지 않았지만, 이곳에서 각 실을 오갈 수 있는 경우의 수는 규모가 훨씬 큰 통상적인 도서관에 비할 수 없이 많을 것이다. 부분적으로 트이고 서로 합쳐지기도 한 주택의 방들은 책에 파묻히기 쉬운 ‘구석’을 곳곳에 펼쳐놓는다. 시험공부를 위해 구산동도서관마을을 독서실처럼 이용하려는 이라면 실망할지 몰라도, 모처럼 글자들 속에 빠져들기를 바라는 이라면 자신에게 꼭 맞는 자리 하나쯤은 어렵지 않게 찾을 것이다.

작은 방들의 열람실에는 미묘한 높이 차이가 있다. 같은 2층이라도 각 주택의 높이가 조금씩 달랐을 테니 말이다. 바닥의 이 작은 차이로 공간은 더 풍성해지고 특정한 방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을 더해준다. 하나의 층에 넓게 개방된 하나의 열람실이 있곤 하는 보통의 도서관과 확연히 다른 공간 경험이다. 이곳에 새 건물을 지었다고 해서, 지금보다 덜 활용될 것이라고 상상할 필요는 전혀 없다. 예산만 충분했다면 더 많은 서가와 열람실을 확보했을 수도 있다. 다만 그랬더라면 우리는 도시재생 프로젝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시도, 오래된 것이 있기 때문에 열리는 가능성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구산동도서관마을에서 오래된 것은 새로운 것을 위해 봉사한다. 이곳에서 과거의 기억은 새로 쓰일 기억 앞에서 금세 빛이 바랜다. 지난한 삶의 자취가 향수를 불러일으키지도 않고, 과거에 덧없는 진정성을 덧씌우지도 않는다. 허물지 않고 남은 파편이 현재, 나아가 미래의 토대가 되는 흔치 않은 현장이다.

■박정현

[콘크리트와 글로 빚은 20세기 한국 건축](9)옛 흔적 남겨야만 ‘도시재생’일까?…쓰임에 집중한 공간 창조 시도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건축은 무엇을 했는가: 발전국가 시기 한국 현대 건축>을 비롯해 <김정철과 정림건축>(편저), <전환기의 한국 건축과 4.3그룹>(공저) 등을 쓰고, <포트폴리오와 다이어그램> <건축의 고전적 언어> 등을 번역했다.

2018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 등의 전시에 큐레이터로 참여했다. 현재 도서출판 마티에서 편집장으로 일하며 건축 비평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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