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원주여고의 신문 동아리 학생에게 연락이 왔다. 교훈을 개정하고픈데 동문들의 반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며 나를 인터뷰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훈의 시대>라는 책을 쓰면서 공립고등학교의 교훈과 교가를 전수조사했고 ‘훈’이라는 언어가 얼마나 낡고 보수적인 형태로 그 구성원들에게 모멸감을 주고 있는가를 살폈다. 남학교의 ‘충성, 용기, 의리’, 여학교의 ‘순결, 고결, 정숙’과 같은 언어들. 산업화와 군부독재 시기에 만들어진 50년이 넘은 그 훈들은 그 시기의 욕망을 담고 여전히 우리 곁에 숨 쉬고 있다.
원주여고는 아내가 졸업한 학교다. 책을 쓰다가 “당신 학교의 교훈은 뭐였어?” 하고 물었을 때, 그는 잘 기억하지 못했다. 검색해 보고서야 “착한 딸, 어진 어머니, 참된 일꾼”이었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교훈이 좀 이상하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그는 당신은 뭐가 또 불만이고 문제냐며, 그러면 너희 학교의 교훈은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아서 검색해 보고는 “의리, 지성, 친애”였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그 학교의 교훈이 더 이상하다고, 조직원들도 아니고 의리가 학교의 교훈이 될 수 있느냐고 말했다. 그때 나는 민망함과 함께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교훈이라는 것은 누구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노출되며 그에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강원도의 대표적 여자고등학교라면 원주여고, 그리고 지역의 이름을 가져온 강릉여고와 춘천여고가 있겠다. 각 지역에서는 굳이 지역의 약자도 넣지 않고 ‘여고’라고 부르는 것으로 안다. 그냥 “나 여고 나왔어”라고 하면 원여고, 강여고, 춘여고를 나온 것을 의미한다. 내가 <훈의 시대>라는 책을 쓴 2018년에 강릉여고의 교훈은 “순결, 협화, 근면”이었고, 춘천여고의 교훈은 “순결, 성실, 봉사”였다. 4년이 지난 지금, 강릉여고의 교훈은 “자유롭게 꿈꾸고 자주적으로 배우며 창의적으로 미래를 가꾸자”로, 춘천여고의 교훈은 “꿈을 향한 열정, 실천하는 지성”으로 바뀌었다. 이 과정을 살펴보면 재학생, 교직원, 동문회, 모두가 동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원주여고도 학교 부지를 이전하던 2012년, 재학생을 중심으로 교훈을 개정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강릉이나 춘천보다도 오히려 빨랐던 셈이다. 그러나 그 사실이 알려지고 나서 총동문회가 급히 열렸고 만장일치로 “전통을 파괴하는 행위를 반대한다”는 의견을 학교 측에 전달하게 된다. 동문회에서는 시대가 변해도 교훈은 변하지 않는 학교의 긍지이며 전통이라고 덧붙였다.
언어를 정서하고 다루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며 한 가지 배운 게 있다면, 언어는 전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느 한 시절의 구성원들을 규정하고 그것으로 그들을 움직이는 언어가 반드시 있다. 거기에 익숙해진 개인들은 그 언어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그것을 전통으로 미화하며 다음 세대에게도 강요하기에 이른다. 원주여고뿐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는 그 구성원들에게 모멸감을 주는, 그들이 선택하지 않은, 그러나 그들을 규정하고 통제하는 욕망의 언어 ‘훈’들이 가득하다. 적어도 교육현장에서라도 이러한 낡은 언어를 발견하고 바꾸어나갈 필요가 있다. 전통이란 언어가 아니라 이처럼 끝없이 다음 세대를 위해 조직을 변화시켜나가고자 하는 행위에 가깝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의 교훈들은 언젠가 바뀌어나갈 것이다. 변화를 바라는 다음 세대가 있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 춘천여고는 학생회장 후보가 교훈을 바꾸겠다는 공약을 내걸어 당선된 후 학생회에 안건을 발의했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 모두는 스스로의 훈을 선택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그들이 기성세대가 되었을 때 그다음 세대 역시 언어를 바꾸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 언어가 전통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들이 그에 기쁘게 호응해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