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1980년대 테니스는 백인들의 스포츠였다. 두각을 나타내려면 어린 시절부터 유명한 코치에게 배워야 했다. 부모들의 열성적인 심지어 혹독한 교육열도 뒷받침되어야 했다.
리처드 윌리엄스는 좀 특이한 사람이었다. 형편이 넉넉지 못한 흑인 가정의 가장인 그는 딸들을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로 키우기로 마음먹었다. 아이가 태어나기 2년 전부터 78쪽에 달하는 챔피언 육성계획을 세웠고, 아이가 태어난 뒤에는 이 자료를 들고 다니며 코치를 구하려 했다. 대부분 코치들이 비웃었다. 윌리엄스는 굴하지 않고 직접 두 딸을 가르쳤다. 자매는 실력을 인정받아 일찌감치 스타의 길을 걸을 수 있었으나, 리처드는 이를 거부했다. 오히려 검증되지 않은 길을 택했다.
<킹 리차드>는 테니스 스타 비너스·세리나 윌리엄스 자매를 키워낸 아버지의 삶을 바탕으로 한 실화 영화다. 대부분 스포츠 전기 영화들이 선수 당사자가 역경을 딛고 성공하거나 실패하는 이야기를 다루지만, 이 영화는 선수의 아버지를 그린다. 리처드 윌리엄스의 행동, 교육관이 워낙 독특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윌리엄스 가족이 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컴튼은 게토 지역으로 꼽힌다. 닥터 드레 등 유명한 갱스터 래퍼들이 이 지역 흑인들의 정서를 담은 음악으로 유명해졌다. 언제 총에 맞을지 모르는 위험한 지역에서 아버지는 딸들을 보호하고 교육한다. 불량배들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하고 대신 그들로부터 구타를 당하기도 한다. 아버지는 그저 참을 뿐이다. 딸들이 스타가 된다면 이 모든 굴욕을 잊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흥미로운 건 비너스·세리나 자매가 성공하리라는 보장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리처드 윌리엄스는 스포츠와는 전혀 상관 없는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면서도 딸들이 세계적 스타가 되리라고 믿는다. 이 믿음은 거의 신앙과도 같다. 왜 그가 그런 신앙을 갖게 됐는지 영화는 자세히 보여주지 않는다. 노력하면 언젠가 기회가 찾아오고 그 기회를 통해 결국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드림을 내재했기 때문인지, 컴튼의 절망적인 환경을 벗어나기 위한 도피처로서 딸들에게 매달리는 것인지, 그가 그저 터무니없이 낙천적인 인성을 가졌기 때문인지 알 수 없다. 어떤 이유에서든 성공에 대한 아버지의 확신과 이를 별 불만 없이 따르는 딸들의 모습은 놀라우면서도 기이하다.
백인 중심인 테니스계에서 압도적 실력과 강력한 자기확신으로 성공을 향해 질주하는 윌리엄스 자매의 모습은 근래 미국 사회의 주요한 문화적 흐름인 ‘블랙 프라이드’를 드러낸다. 윌리엄스 자매는 자신들의 행보가 또 다른 흑인 소녀들의 꿈이 되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윌 스미스가 리처드 윌리엄스를 연기했다. 스미스는 확신과 허풍, 성공에 대한 열망과 겸양, 자부심과 열등감 사이에 놓인 특이한 인물을 절묘하게 연기함으로써 다음주 열릴 아카데미 시상식의 유력한 남우주연상 후보로 떠올랐다. <킹 리차드>는 남우주연상을 포함해 작품상, 여우조연상 등 아카데미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상영시간 144분. 24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