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개혁이라는 열망을 등에 업고 민주당이 급조했던 형사소송법 및 검찰청법 개정안은 그 자체가 가진 위헌성 및 허술함을 굳이 설명할 필요 없이 조악하기 그지없었다. 이 개정안을 둘러싼 여야의 전운이 고조되고 민주당이 소속 의원 탈당이라는 탈법까지 감행하는 사태가 일어난 후, 지난 22일 국회는 중재안에 합의했다는 발표를 한다.
갑자기 국민에게 통보된 이 중재안은 민주당 개정안에 대한 반대 논리와 우려를 거의 고려하지 않은 채, 국회의원 당사자들의 이익보호에 직결되는 사항을 거래한 ‘야합안’이었다. 검찰의 직접수사권 범위에서 ‘공직자범죄’와 ‘선거범죄’가 사라지면서, 여야는 갑자기 한마음이 되어 손을 부여잡았다. 1%도 안 되는 권력형 범죄의 수사권을 ‘협상’의 도구로 활용하여 그 수사에 직접 영향을 받는 이해관계자끼리 국가의 중대한 형사사법체계의 근간이 되는 법을 순식간에 고친 것이다.
애초에 민주당 개정안에 대한 반대 논리는 경찰에 집중되는 수사권을 통제할 방안이 없다는 것과 모든 범죄(대부분이 서민사건과 민생사건)에서의 피해자 중 불송치 결정을 받은 사람을 구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지만, 이 99%에 대한 고려는 중재안에 없었다.
중재안에서 그나마 피해자 보호와 관련된 것은 하나였다. ‘송치 사건, 불송치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 사건에 대하여 검찰이 범죄의 단일성과 동일성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만 수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언급된 ‘단일성과 동일성’이라는 표현은 형사 ‘재판’에서 쓰이는 개념으로 수사의 범위를 정할 말이 아니다. 수사는 살아있는 생물과 비슷하다. 수사 중 진범이나 공범이 나올 수 있고, 추가 피해자가 발견될 수도 있다. ‘단일성과 동일성’이라는 불필요한 문구를 법문에 넣을 경우, 피의자는 검찰에서 뭔가를 물으려 할 때마다 동일성과 단일성을 들먹이며 방어하며 시간을 끌 것이다. 적법한 여죄 수사나 명백히 드러나는 범죄에 대한 인지수사도 불가능해진다. 작년부터 일반사건에 대한 검찰의 1차 수사권이 모두 없어졌기에, 적어도 범죄자 기소를 위한 보완수사는 충실히 할 수 있어야 한다.
경찰로 집중되는 수사 권력을 통제하는 방안이랍시고 새로운 권력기관을 뚝딱 만들어내겠다는 중재안의 인식은 황당한 수준이다. 무조건 검찰만 아니면 된다는 식으로 검찰을 형식적으로 배제하며 다른 수사기관을 신설하여 수사 권력을 더 비대하게 만드는 방식은 결코 수사에 대한 통제로 기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수사권 조정 논의의 방향은 검찰이 인지수사와 특수수사와 같은 막강한 수사권이 있는 상태로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제도적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지에 대한 것이었다. 민주당 개정안과 국회의 중재안은 모두 그 초심을 외면한 채, 권력자들의 기득권을 어떻게 하면 수월하게 지킬 수 있는가 하는 타협의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지금이라도 멈춰야 한다. 아직 2년의 입법기가 남았고, 형사사법체계는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제도이기에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심사숙고와 공개 토론이 선행되어야 한다. 검찰 인사 개선, 객관적 사건 배당, 정보공개, 불복절차, 수사심의위원회 등 검찰의 왜곡된 권력체계를 고칠 방법이 아직 많다.
도저히 이 폭주하는 국회의 수레바퀴를 멈출 수 없다면, 적어도 모든 경찰 수사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복원하여야 한다. 경찰은 기동성과 수사력을 바탕으로 사건 1차 수사에 집중하고, 검사는 형사법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사건의 경중에 관계없이 수사통제를 통하여 경찰의 1차 수사가 부실수사 혹은 과잉수사된 점은 없는지 보완할 수 있게 된다. 형사사법체계의 존재 이유는 죄를 범한 사람에게 합당한 처벌을 받게 하는 것과 더불어 억울한 피해자 및 피의자가 없게 하여 사회 안전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를 제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