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은 살아 있다

2022.08.15 03:00 입력 2022.08.15 03:02 수정

법무부는 지난주 검사의 ‘수사 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로 인해 국회 입법권이 사실상 무력화되었다는 주장이 있으나 사실과 다르다. 법무부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검수완박법은 그대로 살아 있으며, 그 시행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이번 법무부 발표의 골자는 두 가지이다. 기존에 장황하고 복잡했던 검사의 수사 개시 범죄 범위를 간명하고 이해하기 쉽게 고침으로써 국민의 예측 가능성을 확보한다는 것과, 경찰에서 송치한 사건에 대하여 검찰이 직접 관련성이 있는 범위에서 적극 수사하여 범죄자를 잘 기소하라는 것이다. 입법권 무력화가 아니라 잘못된 입법 정상화이다.

왜 검경수사권조정은 잘못된 입법인가. 정치적 계산으로 국민에게 심대한 피해를 입히는 내용으로 입법되었기 때문이다. 2019년 민주당이 패스트트랙으로 검경수사권조정 법안을 서둘러 통과시키면서, 문재인 정부 초반 입법 방향과 크게 달라진 법안이라는 것을 국민에게 알리지 않았다. 원안은 검찰의 직접 수사 개시 폐해를 없애면서 경찰은 수사실행을, 검찰은 수사지휘를 충실히 하여 수사와 기소가 유기적으로 작동되도록 하는 것이었지만, 입법 막바지에 돌연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삭제하고 경찰에 수사종결권을 부여하며 현장의 대혼란을 초래했다.

2021년부터 이 수사권조정 법률이 시행되면서 사람들은 의아했다. 왜 기존에 검찰과 경찰 아무 데나 내면 되던 고소장 제출이 하늘의 별 따기가 되었는지, 왜 경찰이 법리 판단을 포함한 수사 종결(불송치)을 하는지, 그 수사 종결을 다투려 왜 별도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 관할 경찰서장에게 이의신청서를 제출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경찰이 대부분 사건의 수사를 개시, 실행, 종결하게 되면서 사건 처리가 심각하게 지연돼도, 사건이 검찰과 경찰을 오가며 증발해도 입법자 누구도 현실을 살펴보거나 책임지지 않았다. 절차가 길어지고 용어가 복잡해지면서 피해자들은 더 많은 시간과 돈을 쏟아붓거나 중도에 포기했다.

수사권조정으로 올해부터는 법정에서 피고인의 ‘부인한다’ 한마디면,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는 휴지조각이 되어 증거로 쓸 수 없다. 수사권조정제도 시행 1년을 맞아 올해 초 실시한 조사에서 형사사건을 대리하는 변호사의 70%가 심각한 사건지연을 성토했고, 근거 없는 고소장 접수 거부, 법리적 오류인 불송치 이유를 겪었다고 답변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4월 휘몰아친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 입법은 설상가상이었다. 장애인 학대, 동물 학대, 내부비리, 환경범죄 등 주로 ‘고발인’만 있는 사건은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대하여 이의신청권이 아예 박탈되었다. 사회를 정화하는 고발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입법이 보름 만에 일사천리로 처리되었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경찰국을 신설해도, 법무부에서 검사 수사개시 규정을 손보아도 당장 9월10일이면 시행될 검수완박법은 시퍼렇게 살아 있다. 중대범죄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 통제 방안은 여전히 공백이라는 뜻이다. 사건이 경찰에 어떻게 접수되는지, 사건 처리가 얼마나 지연되는지, 경찰 수사에 과잉이나 부실은 없는지, 경찰의 수사종결과 그 이유가 적법하고 타당한지 볼 시스템 복원 논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한 해에 50만건의 고소가 접수되며, 개인은 형사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오로지 국가를 통해서만 범죄자 처벌이 가능한 나라이기에, 망가진 형사사법체계는 평범한 사람들의 억울함을 쌓는다. 장애가 있거나 못 배우고 가난한 피해자가 복잡한 제도로 희생되지 않도록 지금이라도 졸속 입법을 반성하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종국적으로는 법 개정으로 정리되어야 할 문제이지만, 이에 앞서 실무적 대책을 논의하고 있는 검경협의체의 합리적인 대안 도출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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