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8일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 당국 간 회담을 북한에 제의했다. 권 장관은 이날 담화에서 “이산가족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지기 전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서 “과거와 같은 소수 인원의 일회성 상봉으로는 부족하다. 신속하고도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회담 일자와 장소, 의제와 형식 등은 북측의 희망을 적극 고려할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북핵 문제에 뒷전으로 밀려 있던 이산가족 상봉이 논의 대상이 된 것을 환영한다. 북한이 적극 호응해 회담이 성사되기를 기대한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2018년 8월 북측 금강산에서 열린 행사를 끝으로 4년간 이뤄지지 않았다. 그동안 이산가족 상봉은 100명 남짓 소수가 만나는 방식으로 진행돼왔다. 그러다 보니 21차례 대면 및 7차례 화상 상봉으로 꿈을 이룬 이산가족은 3000여명으로, 전체 상봉 신청자의 2.28%에 불과했다. 상봉을 기다리다 유명을 달리한 신청자는 올 들어서만 하루 10명꼴인 2만4000여명이다. 4만3000여명 남은 생존자 중 90세 이상이 약 3분의 1이다. 이산가족 상봉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이다.
권 장관의 이날 담화에서 눈에 띄는 점은 적십자사 채널이 아닌 당국 간 회담을 제안한 것이다. 당국이 책임있게 회담에 나서자는 취지이다. 하지만 권 장관의 회담 제의에 북한이 응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 강경 기조 탓에 남북 소통 창구 자체가 막혀 있다. 남측에서는 이산가족 상봉을 인도적 문제로 접근하지만, 북한으로서는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 필요한 사안이다. 즉 이산가족을 상봉시킬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야 회담에 응할 것이라는 말이다. 북한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맞아 제안한 비핵화 ‘담대한 구상’에 대해 “윤석열 자체가 싫다”며 거부했다. 내년 예산안에서 상봉 예산을 10% 이상 삭감한 통일부가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회담을 제안했는지도 의심된다.
권 장관은 북한의 호응이 없어도 “계속해서 북에 대해 문을 두드리고 제안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 말대로 정부는 북한과 대화와 교류의 장을 열기 위한 시도와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남북 간 대화의 여건을 만드는 것이 먼저다. 이산가족을 더 이상 희망고문해서는 안 된다. 이산가족 상봉 제의가 일회성 이벤트가 돼선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