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남성 피해자 집 문 흉기로 훼손
경찰 구속영장 신청 끝 뒤늦게 영장 발부
잠정조치 4호 신청 검찰·법원 50% 이상 기각
전문가들 “스토킹 피해자 보호 적극 나서야”
경찰이 옛 연인을 5개월간 스토킹하다 흉기로 위협한 남성을 상대로 지난 달 ‘잠정조치 4호(유치장 유치)’를 신청했지만 검찰이 ‘초범’이라는 이유로 기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경찰이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해 가해자는 결국 구속됐다.
19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서울 은평경찰서는 스토킹처벌법 위반과 재물손괴, 특수협박 혐의로 지난달 18일 A씨를 서울서부지검에 구속 송치했다. A씨는 지난 3월부터 8월까지 옛 연인이던 피해자 B씨의 집에 여러 차례 찾아오는 등 스토킹 범행을 저질렀다.
A씨는 스토킹 과정에서 흉기를 사용해 B씨를 협박하기도 했다. A씨는 지난달 4일 피해자가 집 문을 열어주지 않자 정육점에서 쓰는 칼로 현관문을 훼손한 뒤 사용한 흉기를 현관문 틈에 꽂아놓았다. 두 사람의 주거지간 거리는 700m로 B씨는 이 사건 직후 외출을 꺼릴 정도로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문제는 이 사건 초동조치 과정에서 검찰이 경찰의 잠정조치 4호 신청을 A씨가 초범이라는 이유로 기각했다는 점이다. 잠정조치 4호는 구속영장 없이도 법원 결정으로 재발 우려가 있는 가해자를 최대 한 달까지 유치장에 구금하는 제도이다. A씨의 스토킹이 강력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구속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경찰은 잠정조치 4호가 기각된 후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보해 A씨의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고, 법원은 도주 우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서혜진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법원에서 A씨에 대한 구속 필요성이 인정될 정도로 심각한 사안인데도 검찰이 초범인 점을 앞세워 잠정조치 4호 신청을 기각했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며 “잠정조치는 스토킹 피해자를 위한 유일한 보호 수단인데 사법기관이 피해자 보호를 위해 마련된 규정조차 너무 소극적으로 활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과 법원 단계에서 경찰의 잠정조치 4호 신청이 기각되는 비율은 50%가 넘는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경찰청과 법무부에서 받은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잠정조치 신청 결과’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7월까지 신청된 잠정조치 4호 500건 중 승인된 사례는 225건(45%)에 불과했다.
서 변호사는 “검찰과 법원이 잠정조치를 구속과 비슷하게 보는 것 같다”며 “피해자보다 피의자 인권만 고려하는 태도로, 스토킹 피해자 보호를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서부지검 관계자는 “해당 검사가 당시 단계에서 A씨에게 반복 위험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며 “다만 A씨의 죄질이 불량해 잠정조치 4호 신청은 기각하되 구속영장을 신청하라는 취지로 의견을 제시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