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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위기로 치닫는 경제와 무능한 정부

2022.09.22 03:00

원·달러 환율이 한 달 새 100원가량 폭등했다. 조만간 달러당 1400원대에 진입할 것이 확실하다고 한다. 지난달 0.25%포인트 인상해 연 2.25%인 기준금리는 연말까지 3% 이상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7%로 여전히 높은 편인데, 인상 대기 중인 품목이 적지 않다. ‘3고’가 뉴노멀로 자리 잡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제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복합위기, 퍼펙트 스톰, 스태그플레이션 등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용어가 등장한다.

안호기 논설위원

안호기 논설위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예측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올해 2.8%, 내년 2.2%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각각 5.2%, 3.9%로 전망했다. 성장률보다 물가가 더 높다면 성장해도 소용이 없다. 내년 물가가 안정을 찾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전기와 가스는 원가가 상승한 만큼 요금이 인상되지 않아 언제든 오를 수 있다. 가공식품 가격도 줄줄이 오르고 있다. ‘3고’가 맞물려 금융·실물 경제를 악화시키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야 한다.

부채는 한국 경제의 가장 취약한 고리다. 국제금융협회(IIF)의 올해 1분기 ‘세계 부채 모니터’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4.3%였다. 조사 대상 36개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가계와 기업, 정부가 1년간 생산한 부가가치를 쏟아부어도 가계빚에 못 미친다. OECD 분석 결과 지난해 기준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6.6%였다. 세금과 보험료 등을 제외하고 쓸 수 있는 돈을 2년간 모아야 빚을 갚을 수 있다.

글로벌 금리의 ‘기준’이 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연말까지 기준금리를 4%대로 상향할 것으로 보인다. 같은 폭은 아니어도 한국 역시 따라 올릴 수밖에 없다. 대출금리가 올라가면 소득에 비해 대출이 많은 가계나 기업은 원리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금융기관 3곳 이상에 빚을 낸 다중채무자는 450만명이 넘는데, 1인당 평균 1억3269만원을 빚지고 있다. 금리는 뜀박질하는데 고물가로 실질소득 감소까지 겹친다면 빚을 갚지 못해 파산하는 취약 대출자가 속출할 수 있다. 채무불이행이 급증하면 금융기관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부동산과 증시마저 급락할 경우 금융시장은 말 그대로 패닉에 빠지게 된다.

2000년 이후 월평균 환율 고점은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의 1453.35원이다. 환율은 지난 16일 장중 1399원까지 치솟아 최고점 턱밑까지 이르렀다. 정부는 “외환보유액 등 대외건전성 지표가 안정적이어서 과거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재현 가능성은 낮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원화가치 하락(환율 상승) 속도가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는 전문가들의 경고와는 결이 다르다.

원화가치가 떨어지면 수출이 늘어 무역수지 흑자가 커지고 외환보유액도 증가해야 하는데 현실은 반대다. 4월부터 5개월 연속 기록했던 무역적자는 9월까지 이어질 공산이 크다. 물가 불안을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외환보유액은 9월 현재 4364억3000만달러로 6개월 새 5.5% 줄었다. 에너지와 곡물 수입 가격이 고공행진을 한 데다, 한국의 수출 경쟁력이 떨어진 탓이다. 성장과 수출을 주도해온 반도체 산업은 최근 가동률이 떨어지고 재고는 늘어나는 등 둔화 움직임이 뚜렷하다.

최악의 상황은 아직 오지 않았다. 많은 전문가들은 내년 상반기를 경기침체 저점으로 꼽는다. 얼마나 더 나빠질지 알 수 없다. 명백한 사실은 형편이 어려운 가계와 기업일수록 고통이 크다는 점이다. 3고 복합위기는 실질소득 감소와 자산거품 붕괴를 초래한다. 증시와 집값은 계속 떨어질 것이다. 한계상황에 내몰린 가계와 기업은 도산하고, 일자리를 잃는 사람도 크게 늘어난다. 취약계층은 고난의 시기를 버텨야 한다. 희망이 사라진 사회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과거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는 정부가 얼마나 무능한지를 증명했다. 그럼에도 비빌 언덕은 정부뿐이다. ‘선제적 위기 대응태세’ ‘모니터링 강화’ ‘비상계획 검토’ 등 위기 때마다 반복해온 앵무새 같은 다짐은 그만두기 바란다. 시민을 안심시킬 대책을 내놔야 한다. 물가와 외환시장을 안정시킬 정책이 시급하다. 취약계층에 대한 안전망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 미국과 중국 틈바구니에서의 생존 전략도 필요하다. 과거 위기 때마다 역할을 했던 민간 네트워크를 총동원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 중이다. 통화 스와프든 한국산 전기차 보조금이든 뭐라도 성과를 거두고 돌아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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