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발리에서 15일 막을 올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뜨거운 화두는 단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었다. 푸틴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지만 개막연설부터 공동선언문까지 우크라이나 전쟁이 주요 이슈로 다뤄졌다.
조코위 “전쟁 안 끝나면 전진 어렵다”
젤렌스키 “전쟁 중단하고 생명 구할 때”
수낵 “푸틴이 여기 왔어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의장국을 맡은 인도네시아의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은 이날 개막연설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이라고 직접 언급하진 않았으나 “만약 전쟁이 끝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세계를 분열시켜선 안 된다”고 말했다. 세계 경제에 대해서도 “전 세계가 엄청난 위기와 도전에 직면했으며 식량과 에너지 공급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협업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회복을 위한 촉매로서 G20의 역할을 강조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G20 회원국은 아니나 초청을 받아 이날 회의 첫 번째 세션인 식량·에너지 안보 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했다. 그는 “지금이 러시아의 파괴적인 전쟁을 중단해 수천명의 생명을 구해야 할 때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러시아가 핵무기로 위협하고 있다며 “핵무기 협박에는 어떠한 변명도 있을 수 없다. 이것을 분명히 해준 (러시아를 제외한) G19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오는 19일 만료를 앞둔 ‘흑해 곡물 이니셔티브’를 확대 또는 무기한 연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일찍이 이번 G20을 러시아 규탄의 장으로 삼겠다고 밝혔던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정상회의에서도 푸틴 대통령을 직격했다. 그는 “한 사람이 이 모든 것을 바꿀 힘을 갖고 있다”며 푸틴 대통령이 다른 정상들을 마주할 준비를 해야만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푸틴 대통령이 여기에 우리와 함께하지 못하겠다고 느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만약 그가 왔더라면 우리는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경제가 무기화돼선 안된다며 대러시아 경제 제재를 비판했다. 시 주석은 “식량과 에너지 문제를 정치화하려는 시도에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며 “일방적인 제재와 과학기술 협력에 관한 제한은 제거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를 비판하며 애둘러 러시아 편을 든 것이다. 앞서 시 주석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핵무기 위협과 사용은 “용납할 수 없다”며 푸틴 대통령의 핵공격 위협에는 반대 입장을 밝혔다.
공동선언 초안에 ‘우크라이나 침공 규탄’ 포함
G20 정상회의 참여국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메시지를 정상회의 공동선언문 초안에 넣는데 성공했다. 이번 정상회의를 앞두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이 러시아를 향해 외교적 총공세를 펼칠 것으로 예상돼, 중국과 터키 등 친러시아 국가와의 합의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 바 있다.
dpa통신은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이사회 상임의장이 러시아 대표를 포함한 G20 국가 협상 대표들이 초안에 합의했음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러시아가 반대했지만 서방 국가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난하는 문구를 넣는 데에 성공했다고 dpa는 보도했다. 선언문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러시아 측 표현인 ‘특별 군사작전’이 아닌 ‘전쟁’으로 표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견이 있다는 내용도 초안에 들어있고, 각국 정상이 선언문을 아직 최종 채택한 건 아니라고 로이터통신은 설명했다. 또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이 아닌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으로 표기하는 절충안으로 러시아와 중국이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코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서방을 상대로 러시아에 대한 비판 수위를 낮춰달라고 설득했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몇 개국이 공동선언에 동의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는 회원국 ‘대부분’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력히 비난하는 내용의 선언문을 발표할 것이라고 AFP통신에 밝혔다. 이 관계자는 “많은 이들이 막대한 인도주의적·경제적 고통의 근원을 러시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G20 내에서 중국, 인도, 터키 등이 러시아를 공개적으로 비난하지는 않고 있으나, 급등하는 연료 및 식품 가격에 영향을 받지 않은 나라는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함께 회복, 더 강한 회복’(Recover Together, Recover Stronger)을 주제로 하는 올해 G20 정상회의는 16일까지 이어진다. 마지막 날 공동선언문이 채택될 것으로 예상된다. 비록 푸틴 대통령은 불참했지만 주요국 정상들이 러시아 대표와 함께 단체사진을 찍을지도 관심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