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 역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출근길 지하철에서 안내방송 듣는다면?

2023.01.02 14:26 입력 2023.01.02 14:45 수정

지난 28일 서울 용산구 남영역에서 비장애인 시민들이 승강장으로 연결된 계단을 오르고 있다. 휠체어 리프트 버튼을 누르는 자리엔 ‘고장수리 공지’가 붙어있다. ‘제품조달의 어려움으로 수리를 못하고 있다. 신속히 조치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쓰여 있다. 전지현 기자 이미지 크게 보기

지난 28일 서울 용산구 남영역에서 비장애인 시민들이 승강장으로 연결된 계단을 오르고 있다. 휠체어 리프트 버튼을 누르는 자리엔 ‘고장수리 공지’가 붙어있다. ‘제품조달의 어려움으로 수리를 못하고 있다. 신속히 조치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쓰여 있다. 전지현 기자

전동휠체어를 타는 지체장애인 김동수씨(54)는 지난달 5일 지하철 출근길 서울 1호선 남영역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이번 역은 남영, 남영역입니다” 낭랑한 안내 방송은 평소보다 한 마디를 덧붙였다.

“승강장 리프트 고장으로 역 출구까지 휠체어 이용이 불가합니다. 휠체어 이동 고객은 다음 역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안내방송이 끝나기 무섭게 열차가 역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내릴 태세를 마친 시민들은 발빠르게 하차했다. 그러나 김씨는 내릴 수 없었다. 그는 ‘휠체어 이동 고객’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한 정거장을 지나쳐 1호선 서울역에서 하차했다. 예상치 못한 변수에 평소보다 30분 늦게 회사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남영역, 리프트도 고장났다

지난달 28일 고장난 서울 용산구 남영역 휠체어 리프트의 모습. 리프트가 고장난 지는 한 달이 넘었다. 전지현 기자 이미지 크게 보기

지난달 28일 고장난 서울 용산구 남영역 휠체어 리프트의 모습. 리프트가 고장난 지는 한 달이 넘었다. 전지현 기자

휠체어 리프트 고장으로 김씨 발이 아예 묶인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남영역은 1호선 외대앞역, 7호선 남구로역과 함께 서울 지하철역 중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은 곳이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리프트 말고는 휠체어가 아래층 출구로 내려갈 방법이 없다. 김씨는 “비장애인들은 계단으로 걸어내려가면 끝이지만 휠체어 장애인들은 아니다”라며 “아예 어딘가를 가지 못할 때 제일 내가 장애인이어서 사회적인 차별을 당한다고 느낀다” 토로했다.

휠체어를 탄 이들이 남영역을 이용하지 못한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남영역 관계자는 통화에서 “수리 업체가 마지막으로 수리를 해보고 작동이 안 됐던 게 11월30일”이라고 했다. 2일 현재 리프트에는 수리 예정일이 오는 31일로 공지돼 있다. 휠체어 출입이 두 달간 제한되는 것이다. 남영역 관계자는 “필요한 부품이 아직 조달이 안 돼서 수리를 못하고 있다”며 “최대한 빨리 고치려고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는 동안 김씨의 출퇴근길은 험난해졌다. 그의 직장은 남영역에서 전동휠체어로 5분 거리다. 하지만 최근에는 삼각지역에서 내려 전동휠체어로 20-30분 가야 한다. 눈이 내린 뒤로는 길이 얼어붙어 바퀴가 미끄러질까봐 더 조심해서 다닌다고 한다. 추위는 감수해야 한다. 그는 “힘들고 멀지만 어쩔 수 없다”며 “나는 뇌성마비인데 추우면 몸이 더 경직된다. 회사에 도착하면 몸이 얼어서 움직이는 게 더 힘들다”고 했다.

안내방송 이외에 휠체어 이용자들이 리프트·승강기 고장 사실을 알 수 있는 방법도 없다. 김씨는 자주 이용하는 역의 역무원에게 ‘고장이 나면 연락달라’고 미리 부탁해 안내 문자를 받아본 적 있다고 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고장 정보를 알리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계정 공지 등은 없다. 1호선 남영역을 관리하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 관계자는 “역내 안내방송과 리프트 고장 표지 이외에 SNS등에서 공지를 따로 하고 있진 않다”고 했다. 서울교통공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재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는 “지난해 초반까지 엘리베이터가 없던 명동역에서도 지하철 내부 안내방송만으로만 ‘휠체어는 역 이용이 안 되니 다른 역을 이용하라’고 공지했다”고 했다.

휠체어 이용자들은 지하철 리프트나 승강기 고장으로 이동권이 제한되는 건 너무 비일비재한 일이라 말한다. 남영역 인근에 거주하는 윤두선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 대표는 “나에게 남영역은 없는 역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리프트 고장이 워낙 잦아 자택 바로 근처인데도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윤 대표는 용산구·서울시·코레일에 근본적인 해결책인 승강기 설치를 촉구해왔다.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와 용산시민연대는 남영역에 엘리베이터와 남쪽출구를 신설할 것을 2021년부터 요구했다. 이원영 용산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작년 가을쯤 코레일 담당자로부터 예산 편성과 관련해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고, 용산구청에서도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했다”고 했다. 건설 부문을 담당하는국가철도공단 관계자는 “아직 용산구청과 협의 중인 사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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