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국민연금 재정추계 결과가 나왔다. 언론은 기금 소진시점이 2018년 추계의 2057년보다 2년 앞당겨졌음을 집중 조명하였다. 그런데 이는 앞으로 연금 보험료, 수급연령 등이 수십년 동안 아무 변화 없이 유지된다고 가정할 때 나온 추정치이다. 국민연금제도 조정에 따라 기금은 2055년 이후에도 유지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미래, 예컨대 2080년 국민연금 지출은 GDP의 9.4%로 2018년 재정계산 결과와 같다. 지금도 연금지출로 GDP의 10% 이상을 지출하는 나라는 여럿이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2080년 65세 이상 인구가 47%가 넘을 것이라면, 이들 노인 중 다수에게 주된 노후소득원이 될 국민연금 지출이 이 정도인 것을 많다고 할 수는 없다. 또한 오래 살게 됨에 따라 국민연금 수급 시기를 65세보다 더 늦춘다면 지출은 더 줄어든다.
독일, 프랑스 등 기금 없이도 이 정도 규모의 공적연금을 지출하는 경우는 여럿 있다. 기금은 최소화하고 보험료를 거둬 바로 연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이들 국가의 연금보장에는 조세의 역할도 상당하며, 특히 자산소득 과세로 연금재정을 뒷받침하도록 하자는 방안에도 물꼬가 트이고 있다.
이 가운데 한창 진행 중인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보장성 강화 없는 보험료 인상’으로만 귀결될 것이 우려스럽다. 국민연금 보험료만 대폭 올리고 급여수준은 그대로 놔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금도 계산식의 국민연금 급여수준은 2028년까지 매해 떨어지고 있다. 이는 국민연금에 더 오래 보험료를 내는 미래 노인에게도 급여가 충분하지 않을 것임을 의미한다. 국민연금 급여액 평균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액과 큰 차이가 없는 상황이 미래에도 이어진다. OECD 국가 중 노인빈곤율 압도적 1위인 나라의 연금개혁으로는 이상하기 짝이 없다.
이 경우 상당 기간 국민연금기금 규모는 더욱 커질 것이다. 국민연금 급여수준은 국제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지만 기금규모만큼은 압도적 1위가 된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일이다.
사회연대 기반 위에 작동하는, 재분배적 요소가 강한 국민연금을 이대로 계속 축소시키는 연금개혁의 메시지는 ‘미래세대여, 각자도생하라. 죽을 때까지!’라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노후에 적정보장을 하는 방안을 포기하는 것은 미래세대를 위한 것이 아니다.
기초연금을 대안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보험료라는 별도 재정기반이 없는 기초연금이 이대로 노인 70%에게 현 수준의 급여를 계속 보장할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즉, 2050년, 2060년에 노인이 될 사람들에게 국민연금이 부족해도 기초연금이 있으니 괜찮다고 보증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런 방식은 바람직하지도 않다.
고령사회에 대응하는 길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국민연금제도라는 노후소득보장제도는 보장성과 재정안정성이라는 두 개의 날개가 필요하다. 어느 하나를 포기해서는 존립이 어렵다. 또한 연금재정 안정성은 제도 안팎을 가로지르는 접근을 통해서만 확보될 수 있다. 보험료와 수급연령을 점진적으로 조정해나가는 제도 내 접근과 함께 계층 간, 세대 간 상생을 위해 노동-돌봄-노후 생애 주기 변화와 재정기반 확대를 함께 계획해 나갈 때 우리는 연금제도의 진정한 지속을 말할 수 있다.
국민연금은 사회연대를 통해 모든 일하는 사람들에게 안정적 노후를 보장하고자 하는 기획이다. 가족, 노동, 돌봄 모든 영역에서 삶의 불안정성이 심화되고 있는 지금, 국민연금 보장성 강화를 도외시한 채 고령사회를 준비하자고 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지금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을 말한다면 이는 적정수준의 보장성 강화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