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용 ‘추천위원장 전언’ 폭로
“인사총괄심의관, 칼럼 뽑아와서
‘이분 눈여겨 볼 만’ 전하고 갔다”
해당 인물, 처음 후보 오른 이흥구
대통령 임명까지 일사천리로 진행
김명수 대법원장 ‘쪽지 관행’ 의혹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가 권순일 전 대법관 후임 대법관 제청 과정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선호하는 후보를 후보추천위원회에 사전 제시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 대법원장이 추천위가 거수기로 전락하는 것을 막겠다면서 ‘대법원장의 대법관 후보 제시권’을 폐지해놓고 실제로는 법원행정처를 통해 추천위 심사에 관여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송승용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는 8일 법원 내부통신망에 ‘대법원장은 헌법재판소 재판관 지명권을 적정하게 행사해야 한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송 부장판사는 이 글에서 2020년 9월 퇴임하는 권 대법관 후임 대법관 제청을 위한 추천위가 구성된 뒤 법원 외부인사인 추천위원장으로부터 ‘행정처 측에서 특정 후보를 거론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폭로했다.
추천위에는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선출한 법관이 위원으로 참여하는데, 송 부장판사에 따르면 당시 추천위원장과 전·현직 추천위원인 법관들이 점심 식사 자리를 가졌다. 전직 추천위원인 송 부장판사도 이 자리에 참석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추천위원장이 “이번에는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판사)이 관련 자료를 가져오면서 모 신문 기자의 칼럼을 뽑아와서 피천거 후보 중 특정한 이모 후보에 대해 ‘이 분을 눈여겨 보실만 합니다’라는 취지의 말을 하고 가더라”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모 후보’는 이흥구 대법관이다. 이 대법관은 당시 처음으로 대법관 후보에 올랐는데, 추천위 추천과 대법원장 제청, 대통령 임명이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대법관 제청은 대법원장 권한이기는 하지만 법원 안팎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외부위원이 참여하는 추천위가 3배수를 추천하면 그중 대법원장이 1명을 제청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왔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때까지는 대법원장이 추천위에 본인 의중을 ‘쪽지’로 내려보내는 관행이 있어 추천위가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판사들이 대법관 제청권이 있는 대법원장에 줄을 서게 만들어 사법 관료화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김 대법원장은 2017년 9월12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추천위에서 실질적인 논의가 될 수 있도록 대법원장이 일절 개입하지 않겠다”며 “(추천위에서) 추천된 후보 중에 타당한 원칙을 가지고 제청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법원장은 취임 후 첫 대법관 제청 때부터 추천위에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를 제시하지 않았고,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규칙을 개정해 대법원장의 후보 제시권도 폐지했다. 그런데 그런 김 대법원장 체제에서도 ‘쪽지 관행’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송 부장판사는 글에서 “(추천위) 위원장님의 말씀을 듣고 참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며 “만약 인사총괄심의관의 행동에 대법원장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면 대법원장은 스스로 공언한 제시권의 폐지를 뒤집고 간접적이고 음성적이면서도 보다 교묘한 방식으로 추천위를 대표하고, 회의를 주재하는 위원장님께 제시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는 대법원장의 부당한 제시권 행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추천위의 공적 검증기능을 사실상 형해화하는 것”이라며 “헌법상 보장된 대법관의 제청권까지 무분별하게 남용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송 부장판사는 2018년 자신이 고영한·김창석·김신 대법관 후임 대법관 제청을 위한 추천위에 법관위원으로 참여했을 때는 김 대법원장 측이 의중을 전달하는 일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송 부장판사는 자신이 들은대로 김 대법원장 측이 선호 후보를 추천위원장에게 제시한 사실이 있는지 입장을 밝히라고 했다. 또 헌법재판관 추천위의 객관성과 중립성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대법원은 오는 3·4월 퇴임하는 이선애·이석태 헌법재판관 후임 재판관을 지명하기 위한 헌법재판관 후보추천위를 구성한 상태다.
당시 추천위원장은 이날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기억이 잘 나지 않고, 기억이 나더라도 위원장으로서 이야기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라고 했다.
안희길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은 이날 법원 내부통신망에 글을 올려 “(추천위원장에게) 심사자료를 전달하고 회의 진행을 위한 절차를 설명한 후 위원장이 요청하는 여러 후보들에 관한 심사자료의 주요 내용을 말씀드렸다”며 “그 과정에서 신문 칼럼에 언급된 심사대상자들에 대한 질문에도 답변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안 심의관은 “통상적인 업무로서 위원장에게 제청 절차 전반을 설명하고 질문에 답변했을 뿐이나, 그것이 오해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부분까지 고려하지 못한 점에 대해 송구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