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은 것만 바른 것일까

[송혁기의 책상물림] 곧은 것만 바른 것일까

어릴 적 학교에서 주는 상장에는 늘 “품행이 방정하고”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정확한 뜻도 모른 채 “품행이 방정맞고”라고 읽으며 장난치곤 했다. ‘방정(方正)’은 예부터 사람의 품성과 행실이 곧고 바름을 칭찬하는 뜻으로 사용되어왔으니 적절한 표현이긴 하다. 하지만 더 쉽고 좋은 말도 많은데 마치 바꿀 수 없는 원칙이기라도 한 것처럼 천편일률 이 표현만 써온 데에서, 권위주의 시대의 그늘마저 느껴진다.

바르고 곧아서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반듯함. 이런 유가의 이상적 인간형을 함축하는 글자가 직(直)이다. 당나라 때 문인 유종원의 <참곡궤문>은 팔꿈치와 등을 기대고 앉는 기물인 궤(궤)의 모양이 반듯하지 않고 굽어 있다고 해서 베어버린다는 내용이다. 자신이 곧고 바르면 굽실대지 않고 당당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고 곡학아세하며 남의 비위나 맞추는 세태를 사물에 빗대어 통렬히 비판하는 작품이다.

조선 문인 심대윤은 유종원의 글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곧은 것만 바르고 굽은 것은 다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자연 만물을 보면 굽은 모양이 대부분이며 바퀴와 낫, 활, 갈고리 등 사람이 쓰는 유용한 도구 역시 굽은 것이 많다. 기대앉기에 적당하게 굽어 있는 궤라면 편리하게 사용하면 될 일이지 굽었다고 베어버릴 이유가 무엇인가? 곧은 것만 취하고 굽은 것은 버린다는 통념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이로움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심대윤 역시 바름을 어그러뜨리는 굽음은 단호하게 경계했다. 다만 다들 당연하다고 여기는 통념을 다시 보자는 데 초점이 있다. 그 통념이 어디서 온 것인지 생각해보면, 의외로 근거가 취약하거나 적용이 과대한 경우가 많다. 19세기 중반의 심대윤에게는, 이로움과 해로움은 도외시한 채 바른지 그른지만 따지는 세태가 깨뜨려야 할 통념이었다. 오늘날은 규범에 맞는 방정함을 그리 숭상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더 쉽게 접할 수 있는 정보의 양만큼이나 더 많은 통념‘들’이 출처도 없이 범람하고 있다. 모양과 이름에 현혹되어 마음에 먼저 경계와 표준을 정해두지 말고 오직 각각의 실정에 따라 분별해야 한다는 심대윤의 일갈은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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