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 부평공장 하청노동자
4년치 임금명세서 살펴보니
월별 상여금, 통상시급선 빼고
최저시급 계산 땐 포함 ‘꼼수’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때
예견된 우려가 현실화한 것”
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시간 개편이 노동자의 건강권은 물론 생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2018년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기본급·통상임금이 최저임금보다 낮아진 탓에, 많은 노동자가 기본급·통상임금에 연동되는 연장·심야수당에서도 원래 받아야 하는 몫을 ‘떼이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시간 개편안이 시행되면 사업주들이 싼값에 더 많은 노동을 시키려 할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20일 경향신문이 확보한 한국지엠 부평공장 한 사내하청사 노동자 A씨의 4년치 임금명세서(1월 기준)를 보면, A씨의 기본 시급과 통상시급은 4년 내내 법정 최저시급에 미치지 못했다.
연도별로 보면, 2020년 1월 A씨는 178.4시간을 일하고 기본급 141만1144원을 받았다. 이를 계산하면 기본 시급은 7910원으로, 당해년도 법정 최저시급인 8590원보다 680원 적었다. 산업 안전교육 수당 등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수당이 통상시급에 포함되지 않아 A씨의 통상시급은 기본 시급과 같다.
A씨의 연장·야간수당 내역을 보면, A씨의 ‘통상시급(추가수당 계산 기준)’이 최저시급에도 못 미치는 ‘기본 시급’과 같은 금액인 점이 명확하다. 2020년 1월 A씨는 ‘연장수당’ 명목으로 3만1560원을 받았는데, 이를 시간외 근무시간 2.66시간으로 나누면 기본 시급(7910원)의 1.5배인 1만1865원이었다. 연장수당은 통상시급의 1.5배로 계산한다.
2021년부터 A씨의 기본 시급(통상시급)은 8000원으로 고정됐다. 2021년 1월 A씨는 197시간 일하고 기본급 157만6000원을 받았다. 시간당 8000원이다. 2021년 최저시급은 8720원이었다. 이달 A씨는 심야 근무 20.97시간에 심야 가산수당 8만3880원을 받았다. 심야 가산수당은 통상시급의 0.5배로 계산한다. A씨의 심야 가산수당을 심야 근무시간으로 나눠보면 시간당 4000원이다.
최저시급이 9160원으로 오른 2022년 1월에도 A씨의 기본 시급은 8000원에 머물렀다. 심야 가산수당은 4.66시간에 1만8640원으로, 역시나 시간당 기본 시급 8000원의 0.5배인 4000원으로 계산했다. 최저시급이 9620원인 올해 1월에도 A씨의 기본 시급은 8000원고, 심야 근무 23.3시간에 대한 심야 가산수당은 9만3200원으로 시간당 4000원이었다. 최저시급이 계속 오르는 동안에도 기본 시급이 묶여 있으면서 A씨의 심야근무 수당도 오르지 않았다.
A씨의 기본 시급이 법정 최저시급보다 낮아진 것은 2018년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확대되면서부터다. 원래 ‘최저임금’ 항목에는 ‘기본급’과 매달 고정적으로 받는 ‘수당’만 포함됐다. 그러나 2018년 ‘최저임금’의 범위에 매월 지급되는 정기상여금과 현금성 복리후생비까지 포함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최저임금’을 구성하는 임금 항목 목록에 더 많은 항목을 끼워 넣을 수 있게 되면서, 기본급이 최저임금에 한참 미달하는 사례가 생겼다. 상여금이 최저임금에 포함되면서 전체 수입도 줄었다. 노동계에서는 당시 이 개편안이 ‘개악’이라며 반발했다.
A씨는 기본급이 낮은 대신 연 530%의 상여금을 받았는데 2018년 이후 회사는 이 상여금을 월별로 쪼개서 최저임금 산입범위 안에 넣었다. 그리고 ‘월별 상여금’을 ‘월말까지 다니는 노동자에게만 지급한다’는 조건을 넣었다. 고정적으로 지급이 보장된다는 ‘고정성’이 빠지면서, 이 월별 상여금은 ‘최저시급’을 계산할 때는 포함되지만 ‘통상시급’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이 ‘통상시급’이 하락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계산하는 연장 노동 가산수당도 함께 줄었다. 기본 시급이 최저시급에 미달하는 한 A씨는 연장노동을 할수록 손해를 보는 셈이다.
특히 A씨처럼 연장 노동과 야근이 많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이 같은 임금체계가 확산하고 있다고 노동문제연구소 ‘해방’은 전했다. A씨는 “산입범위를 넓힐 때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당시 개념이 복잡하고 어려우니까 많은 사람이 몰랐는데, 2~3년이 지나며 현실화한 것”며 “물가는 오르는데 3년 전과 임금이 비슷하니 생계가 빠듯하다”고 했다.
2차 하청업체 소속인 A씨는 임금을 놓고 사측과 제대로 교섭조차 할 수 없다. A씨는 “회사는 원청과 1차 하청업체가 돈을 적게 내려줘서 권한도 힘도 없다고 한다”며 “원청에 교섭 요구를 하고 있지만 원청은 노조법상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교섭을 거부하고 있다”고 했다.
2018년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당시에도 이 같은 문제가 제기됐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를 이끌었던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당시 원내대표)는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된 항목들을 통상임금과 일치시키겠다”고 약속했지만 관련 법 개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주 69시간’ 등 연장노동 유연화가 시행되면 과로와 저임금은 더 만연해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오민규 ‘해방’ 연구실장은 “사업주들은 마음 놓고 연장근로를 시키고, 물량이 늘어나더라도 인력을 충원하는 게 아니라 기존 인력에게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게 훨씬 이윤이 남게 된다”며 “(최저시급에 기반한 수당보다)더 낮은 돈으로 일을 시킬 수 있는데, 정부는 여기에다 한도 끝도 없이 연장근로를 시킬 수 있도록 길까지 열어준 셈”이라고 했다.
김요한 노무법인 ‘노동을잇다’ 노무사는 “법을 개정해 통상임금의 최저한도를 최저임금 이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며 “고용노동부도 이 같은 임금체계에 문제가 없다고 보는 기존 행정해석을 바꿔, 언제 어디서든 1시간 일하면 최저시급 이상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