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욕 외교’ 논란 학교 교실에 불똥···역사 교사들 “우리 정부 잘못, 어떻게 설명하나”

2023.03.29 17:05 입력 2023.03.29 20:00 수정

이신철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소장이 28일 서울 종로구 흥사단에서 열린 ‘2023 일본 소학교 사회과 교과서 검정 결과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참석자들은 “역사 부정을 부추기는 일본 정부의 교과서 기술 개입을 우려한다”며 “진정한 한·일 우호관계와 상생의 미래를 위해 일본 정부 교과서 개입 중단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성동훈 기자

이신철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소장이 28일 서울 종로구 흥사단에서 열린 ‘2023 일본 소학교 사회과 교과서 검정 결과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참석자들은 “역사 부정을 부추기는 일본 정부의 교과서 기술 개입을 우려한다”며 “진정한 한·일 우호관계와 상생의 미래를 위해 일본 정부 교과서 개입 중단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성동훈 기자

“100년 전 일본이 한국을 식민 지배했다는 내용을 가르치려면 지금의 한·일 관계도 이야기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우리 정부 책임을 아예 빼고 학생들에게 설명할 수가 있을까요? 선생님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에요.”

인천의 한 고등학교에서 한국사를 가르치는 A씨(46)는 정부의 대일 외교와 관련된 소식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면서 수업 때마다 ‘줄타기’를 하는 심정이라고 했다. 그는 “일본에서 ‘역사 왜곡’ 교과서를 발표했다는 말을 듣고 3·1절 기념사, 강제동원 배상안 등 최근 정부의 대일 외교 기조와 무관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아이들에게 이런 얘기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이 된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발표부터 지난 16일 한·일 정상회담, 28일 일본 문부과학성 검정을 통과한 초등학교 교과서 역사 기술까지, 대일 저자세 외교의 불똥이 학교 교실로 튀었다. 한국사는 과목 특성상 과거사와 현안을 연결해 설명해야 할 때가 많은데, 교사들은 윤석열 정부의 외교 정책을 비판적으로 언급하면 자칫 ‘정치적 중립성’ 시비가 일까봐 조심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한국사를 가르치는 맹모씨(34)는 역사 교사들이 점점 위축된다고 했다. 맹씨는 29일 “한·일 관계 문제가 뉴스에 자주 나오면 이 문제를 궁금해하는 학생들도 많아진다”면서 “위안부와 강제 동원을 가르치는데 생존해 있는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마저도 정치적 행위로 보일까봐 선생님들이 많이 위축된 상황”이라고 했다.

경기 화성시 창의고등학교에서 수업을 하는 이종관씨(43)는 요즘 동료 교사들로부터 ‘불안하다’ ‘고민된다’는 문자 메시지를 자주 받는다. 이씨는 “국가보훈처가 이승만 전 대통령의 기념관 건립을 추진한다고 한 것을 비판했다가 민원을 받았다는 교사도 있었다”고 했다. 맹씨는 “과거사가 예민한 문제로 다뤄질수록 관련 언급을 불편해하는 학생들이 생긴다”며 “학생과 교사 간의 소통에서 끝나면 괜찮은데 학부모 민원으로 확대되면 곤란해진다”고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4일 한·일 정상회담을 ‘굴욕 외교’라고 비판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이라 볼 수 없다”는 공문을 보냈다. 교사들이 학생, 학부모, 정부까지 이중·삼중의 눈치를 보게 된 것이다.

역사 교사들은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에 대해 ‘참담한 심정’이라고 했다. A씨는 “위안부·강제동원처럼 가해자와 피해자가 나뉘는 문제는 교사들이 굉장히 잘 설명해야 하는 문제”라며 “학교폭력을 얘기할 때도 피해자는 회복도 하지 못했는데 과거는 묻고 앞으로 잘 지내라고 하는 게 이상하지 않냐”고 했다. 맹씨는 “일본과의 경제 협력을 통해 먹고 사는 걱정이 줄어들었으면 한다”면서도 “무조건 과거를 묻고 미래로 가자고 할 수는 없는데, 지금은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큰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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