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정치개혁의 선결과제, 의회
무엇보다 필수적인 조치는 국회의원 대폭 증원이다
역사적으로나 비교적으로 의회의 규모와 숫자는 적어도 너무 적다
또 예산도 적고, 산하기구도 부족하며, 고유 권한도 없는 국회보고
‘일 안 한다’ ‘효율성 작다’는 비판은 잘못된 비난이다
우리나라 정당이 잘못되었다는 비판 역시 옳지 않다
의회의 권한이 없는데도 정당이 발전하길 기대하는 건 논리 전도다
한국에서 민주공화국에 반하는 실제의 권력독점과 승자독식 요인은 압도적으로 대통령이지만, 한국 정치에 대한 비판과 비난은 대통령 못지않게 의회에 집중된다. 종종 훨씬 더 심하기까지 하다. 물론, 그것이 비록 반(反)정치·반의회주의의 산물이라고는 해도 일정 정도 권력현실과 일반 민의를 반영한다. 즉 국회는 마땅히 비판받아야 한다. 거의 모든 조사에서 국민들은 우리 사회의 진영대결과 진영갈등을 해결할 책임과 주체로 대통령(정부)과 의회를 지목하고 있다.
그런데 국회에 대한 비판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지금 한국의 정치개혁·선거개혁·의회개혁 논의의 모든 초점은 의회의 구성 방법, 즉 대표 선출과 의석 배분 방식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 문제도 물론 중요하지만 훨씬 더 중요한 필수 선결 문제가 존재한다. 한국의 정치개혁이 매번 실패한 연유는 선결 문제가 해결이 안 된 상태에서 후순위 과제에 계속 집중해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국의 대통령이 1987년 이전과 이후의 차이가 간선이냐 직선이냐의 선출 방법 하나를 제외하면 권력과 권한에 관한 한 거의 줄어든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현재의 권력구조를 정상적인 민주적 대통령제로 착각한 상태에서 문제에 접근하는 것만큼이나 크게 잘못된 것이다. 따라서 한국 의회개혁의 핵심은 전혀 다른 데 있다. 아니 다른 문제로 옮겨져야 한다. 요컨대 그것은 의회의 권한과 규모를 크게 확대하여 의회로 하여금 국민을 제대로 대표하게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필수적인 조치는 국회의원 대폭 증원이다. 역사적으로나 비교적으로 볼 때 현재 한국 의회의 규모와 숫자는 작아도 너무 작다. 제헌 당시 국회의원 정수 200명은 인구 10만명당 1인의 국민 대표를 선출한 셈이었다. 이것이 20만명당 1인이라는, 두 배 수준으로 급증한 것은 5·16 군사쿠데타 이후였다. 이후 의회의 축소와 표의 비등가성은 동시에 악화되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러한 비등가성은 민주화 이후에도 지속되어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결정적으로 침해하고 있다.
제5대 국회에서 291명에 달하던 국회의원 정수는 쿠데타 이후 무려 5분의 2에 달하는 116명이 축소되어 175명으로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결국 군사쿠데타 이전의, 최초 제헌 당시의 인구비례 원칙을 기준으로 하면 오늘날 국회의원 정수는 515명 수준이 된다. 그러나 현재 한국은 300명에 불과하다.
OECD 기준 의원 493명은 돼야
국제적 비교 관점에서 보더라도 한국의 의회는 대폭 확대 강화되어야 한다. 선진 민주국가들과 비교해보자. 한국(인구 17만명당 의원 1인)은 OECD 평균(10만4000명당 1인)을 기준으로 하면 적정 숫자가 493명은 되어야 한다. 단원제 국가의 평균을 따르면 적정 의원 수는 788명(6만5000명당 1인)이며, 양원제 국가 평균을 따르면 438명(11만7000명당 1인)이다. 한국 수준의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을 고려할 때 한국은 (미국과 일본을 제외한) 모든 국가들보다 의원 수가 적어도 너무 적다.
여기에서 우리와의 직접 비교가 어려운 5개국(의원 1인당 인구수가 너무 많거나 너무 적은 나라들)을 제외한 국가들의 평균 인구는 더욱 적어서(5만8300명), 이럴 경우 우리의 국회의원 숫자는 879명이 된다. 만약 의회민주주의가 발달한 동시에 사회경제적 삶의 지표가 한국보다 양호한 OECD 국가들과 비교하면, 평균 5만5700명을 기록하여 이에 맞추려면 우리는 920명의 의원을 가져야 한다. 대표 규모와 복지 수준의 비례를 말한다. 동유럽 국가들을 제외한 평균은 5만7900명으로, 그럴 때 우리는 885명 의원을 갖게 된다. 즉 의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를 달성한 국가들 평균 수준의 대표 비율을 가지려면 920명이나 885명 수준의 국회의원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예산 규모를 보자. 한국의 의회는 비효율적인 조직이 아니다. 국가 3부의 하나이면서도 전체 예산의 단지 0.15%(최근 평균 기준) 내외밖에 사용하지 않는다. 단지 0.15%의 예산을 사용하는 국민 대표들이 나머지 99.85%의 국가예산과 국민세금이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감시하고 있는 것이다. 효율성만을 놓고 본다면 국회는 규모와 예산에 비해 가장 효율적인 국가조직의 하나인지도 모른다.
중앙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와의 비교도 흥미 있는 점을 보여준다. 의회와 예산 규모가 비슷하거나 역전된 기초자치단체들과 비교해볼 때는 물론이려니와, 전체 정부 예산 증가율과 비교할 경우 효율성 문제는 아예 반대다. 지난 20년 동안 정부 예산 증가율에 비해 의회 예산 증가율은 평균 2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국회의 비효율성을 비판하는 담론들에서, 위의 기간 동안 정부 예산이 두 배나 더 많이 증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20년 전에 비해, 또 국회에 비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두 배나 더 효율적이라고 평가하는 주장은 들어보지 못하였다.
행정부 내에서 국회보다 예산이 적은 부처를 찾기는 어렵다. 3부의 하나인 대법원의 경우 국회와 비교 자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예산이 크다. 처음 들으면 누구라도 믿기 어렵겠지만 국무조정실 및 국무총리비서실과 국회의 예산 규모는 큰 차이가 나질 않는다. 종종 정치개입과 인권탄압으로 비판받은 바 있는 한 국가기구는 단일 조직에 불과함에도 예산 규모가 의회와 비슷하다.
그러나 국회가 하는 일은 실로 막중하다. 0.15% 내외의 예산에 비하면 국회의 일이 국민생활과 국가 기능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은 단순수치상 그 10배(1.5%)에서 100배(15%), 200배(30%)에 달한다. 민주공화국, 즉 대의민주주의에서 국회의 중요성은 행정부의 한 부처의 역할과는 비할 바가 아니다. 자주 매우 결정적이다.
좋은 선출직 많아야 더 많은 복지
셋째로는 의회 권한의 확대다. 매우 중요한 문제다. 어쩌면 가장 중요하다. 국회가 일을 하지 않는다는 말은 잘못된 것이다. 외려 지금 국회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 ‘헌법상’ 너무 적(게 배정되)어서 문제다. 의회주의와 국회에 대한 혐오 담론은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 발을 묶어 민주적 감시와 제약을 벗어버리려는 재벌과 언론, 행정관료와 검찰, 상층 기득세력의 반민주·반국민 담론일 뿐이다. 과거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가장 탄압한 집단이 당시 최고 기득세력이던 군부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국회를 오늘처럼 축소시킨 것도 군부였다. 지금 반국회·반정치 담론을 주도하는 중심은 기업과 언론, 관료와 검찰과 시민단체로 바뀌었다.
대한민국 국회는 현재 정책·인사·예산·감사라는, 현대 국가통치의 가장 중요한 핵심 요체 중 하나도 고유한 결정권한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이른바 적극적 정치의 결여를 말한다. 근대 국가기능의 핵심인 이 네 가지 결정권한은 모두 행정부와 대통령이 독점하고 있다. 한국 헌법의 근간인 대의민주주의, 즉 민주공화 원리의 위반이다. 한국의 헌법과 권력구조는 엄밀한 의미의 3권분립 체제가 아니다. 현재의 헌법과 권력구조하에서 의회는 다만 비판·반대·청문·계수조정이라는 소극적 정치만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적극적 정치를 향한 예산도 적고, 산하기구도 부족하며, 고유 권한도 없는 국회보고 ‘일을 안 한다’ ‘효율성이 작다’는 비판은 잘못된 비난이다. 그들이 지닌 소극적 권한과, 0.15%에 불과한 예산 비중에 비하면, 국회는 분명 국가의 어떤 기관보다도 일을 많이 한다. 권한을 주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근대 민주공화국의 기축 원리다. 정당이 잘못되었다는 비판 역시 옳지 않다. 의회가 권한이 적은데도 불구하고 정당이 발전하길 기대하는 것은, 원인과 결과가 잘못 연결된 논리 전도이기 때문이다. 국민 대표인 의회가 권한과 예산이 크게 부족한데 정당은 능력 있고 유능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마차를 말 앞에 놓은 채 잘 달리기를 바라는 잘못된 주장인 것이다.
이제 비리 문제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 대표인 국회의원은 청렴성 의무는 강조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행정부의 예산낭비와 부정비리 규모에 비하면, 유권자와 언론, 반대당과 검찰·경찰의 거의 상시 감시를 받는 국회의원들의 그것이 훨씬 더 작다는 점은 지적될 필요가 있다(나중에 다시 살펴볼 것이다). 즉 여기에는 과도한 의회 공격을 통한 감시 회피와 비선출직 역할 증대의 의도가 숨어 있다는 점이다.
의원 비리, 행정부에 비해 적어
국회의원 규모를 크게 늘려야 할 절대적 필요성의 하나는, 대표가 소수일 경우 그들은 지나치게 성공한 상류계층 출신으로 구성된다는 점과 직결된다. 민주주의를 ‘민중의 지배’라고 할 때, 여기에서 말하는 ‘민중’(demos)의 본래 뜻은 ‘귀족’ ‘과두세력’ ‘부자’에 포함되지 못하는 ‘평민’이다. 귀족을 포함한 시민 일반으로 의미가 확대되는 것은 한참 뒤에 가서였다.
즉 민주주의는 ‘평민의 지배’ ‘다수의 지배’라는 뜻을 갖는다. 기득세력 지배·과두 지배·부자 지배·소수 지배가 아니라는 뜻이다. 여기서 민중의 다른 한 뜻은, 지방·지역·마을을 말한다. 즉 민주주의는 가능한 한 내가 사는 동네와 마을에 가까운 자치를 말한다. 그것은 대표의 숫자가 많을수록 가능하다. 숫자가 적으면 대표들이 어떻게 평민·시민·국민 일반의 상황을 잘 알 수 있으며, 평민의 지배이자 마을의 지배일 수 있는가? 자기가 사는 마을과 공동체와 나라에서 평민들 스스로, 또는 그들의 대표가 지배하기 때문에 곧 자치의 뜻을 갖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점은 대표의 숫자와 규모와 비율이 클수록 민주주의와 복지국가에 근접한다는 점이다. 선진 민주국가의 대표 규모와 비율, 사회화와 복지화의 상관관계, 즉 인간화와 복지화, 사회화 역시 대표의 강화 및 민주주의 수준과 직결되어 있다. 요컨대 민생과 복지를 포함한 사회경제 문제는 대표와 의회를 통해 입법과 정치로 풀어야 하는 것이다. 다양한 계층의 대표가 가능한 한 많이 모여서 자신들의 의사를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반영하게 하는 것 이상 민주주의와 민생복리를 함께 발전시킬 방법은 없다.
민주공화국은 국민 대표들이 입법을 통해 통치하는 국가를 말한다. 따라서 그들의 입법활동, 예산심의, 복지입법, 대통령 견제, 행정부 감시, 검찰 제어, 인권보호가 잘못되었을 때, 국가와 국민은 말할 수 없는 고통과 피해를 입는다. 대표적인 민주주의 이론가들이 하나같이 말하듯 민주주의는 한마디로 선출직의 비선출직에 대한 감시와 견제의 정도만큼 발전한다. 그리고 그만큼 국민들은 공화국의 자유와 재화와 복리를 함께 누릴 수 있게 된다. 국민들은 좋은 선출직을 많이 가질 수 있는 제도 아래에서 살 때 더 많이 자유롭고, 더 고르며, 더 많은 복지를 누릴 수 있다.
자주 국제기준을 강조하는 한국에서, 특히 한국의 보수·진보 담론과 단체에서 이렇게나 작은 의회의 확대와 의원 증가 운동을 하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의회개혁, 정치개혁의 제일 핵심은 대표 강화와 의회 강화를 통한 행정부(대통령)-입법부(의회)-주권자(국민) 사이의 균형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대의민주주의를 추구하고 있다고 하면서도 얼마나 심각하게 대표의 규모를 제약해왔는지 한국의 과거 및 현재 세계와의 비교는 명백하게 보여준다. 더욱이 선거제도에 관계없이 의회 규모가 작을수록 불비례성이 증가하여, 밑으로부터의 대표성뿐만 아니라, 유권자의 표를 의석으로 전환하는 비례성까지 문제가 발생한다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현재의 한국 의회 구성은 대폭 확장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한국 정치, 헌법, 그리고 경제와 사회 개혁을 위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의 하나가 되어야 한다.
다시 강조컨대 세계 거의 모든 나라들에 대한 비교연구를 볼 때 가장 뚜렷한 점은 민주주의 지표의 상위 나라들은 모두가 대표 구성 비중이 높은 국가들과 일치한다. 민주주의는 줄여 말해 소수 상층계층과 과두 부문이 아니라, 일반 시민과 대표의 의사가 반영된 체제를 말한다. 의회 확대는 대표의 증가를 통해 다양한 사회문제가 의회로 수렴되어 국가에 반영될 수 있는 통로와 가능성을 높인다. 동시에 크게 확대된 대표와 의회는 재벌과 언론, 관료와 검찰, 그 어떤 과두권력으로부터도 독립된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여성, 청년, 노동, 소수자를 포함한 약자들의 진출 역시 훨씬 더 용이해진다. 그렇다면 국민들이 이토록 의회를 비판하는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들의 규모와 권한, 예산과 기구를 키울 수 있을 것인가? 다음회에 하나하나 좀 더 상세하게 살펴보자.
연세대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다. 제주 4·3(석사)에 이어 한국전쟁에 대한 연구(박사)로 학문의 길에 들어선 이래 평화 문제를 중심으로 정치현상 연구에 천착해왔다. 정치학자로서, 역사학자로서 전쟁과 평화, 생명과 인간, 그리고 국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 2> <다음 국가를 말하다> <역사와 지식과 사회> <한국 1950: 전쟁과 평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