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그간 공언해온 ‘시민단체 선진화 특별위원회’를 29일 구성했다. 3선 하태경 위원장과 재선 류성걸·이만희 의원, 초선 서범수 의원 등 당내 인사와 민경우 대안연대 공동대표를 비롯한 외부 인사 등 9명으로 구성됐다. 지도부가 예고한 ‘시민단체 정상화 태스크포스(TF)’에서 명칭을 ‘선진화’로 바꾸고, 위상도 당내 특별기구인 ‘특별위원회’로 격상한 것이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시민단체가 국민 신뢰를 회복하고 사회적 양심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하도록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했다. 하지만 자율성을 근간으로 하는 시민단체를 정치권이 간섭·통제하겠다는 발상은 시대착오적이자 그 자체로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다.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25일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 유족과 피해자의 배상금 일부를 요구했다는 보수언론 보도를 인용해 “피해자를 위한다지만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 위한 것이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시민팔이 시민단체는 더 이상 안 된다”고 했다. 보수언론의 왜곡 보도를 지렛대로 시민단체를 정상화하겠다는 당치 않은 발상을 현실로 옮기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시민모임은 정부 보조금을 받지 않고 시민들의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단체이다. 모임 소속 변호사들이 무료 변론을 통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등을 상대로 10년간 소송을 이끌어왔다. 시민모임이 공개한 약정서에 따르면 2012년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할 경우 피고로부터 지급받은 돈 중 20%를 일제 피해자 지원 등 공익사업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조항이 있다. 무료 소송에서 승소해 배상금을 받는다면 그 일부를 나누자는 취지의 약정에 보수언론들이 피해자들에게 금전적 요구를 했다며 ‘과거사 브로커’라는 오명을 씌웠고, 국민의힘은 이를 기화로 시민단체 옥죄기에 나선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말 시민단체의 보조금 사용 현황을 전면 감사하겠다고 했다. 국고보조금을 빌미로 시민단체를 길들이려 한다는 비판이 잇따랐는데, 이제는 보수언론과 여당이 총대를 메고 있는 형국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권에 비판적인 시민단체를 위축시키려는 시도라는 것은 누가 봐도 뻔하다. 국민의힘은 시민사회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불온한 시도를 당장 중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