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가 2번 이상 작성자… 62개 쓴 이용자도 있어
‘투표 독려’ 특정 일자에 집중적으로 올라오기도
댓글 토론뿐 아니라 찬반 투표 신뢰도에도 의문
대통령실이 KBS 수신료 분리 징수 추진의 주요 근거로 든 국민제안 홈페이지의 토론 댓글 넷 중 하나는 같은 사람이 두 번 이상 쓴 것으로 분석됐다. 댓글이 올라온 시각도 유튜브에서 투표 독려를 한 특정 시간대에 집중됐다. 이 홈페이지에서 이뤄진 수신료 분리 징수 찬반 투표 결과의 신뢰도에도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14일 경향신문 데이터저널리즘팀 다이브가 대통령실이 운영하는 국민제안 홈페이지의 TV 수신료 징수방식 관련 토론(지난 3~4월 진행) 댓글을 분석한 결과 모두 6만3886개의 댓글 중 1만6486개(25.8%)가 두 번 이상 댓글을 단 이용자의 댓글로 추정됐다. 한 이용자가 무려 62개의 댓글을 작성한 경우도 있었다.
동일인 계산은 댓글을 쓴 이용자의 ‘전체 글보기’ 기능을 통해 진행했다. 전체 글보기를 구현하는 웹의 소스 코드를 분석한 결과 태그마다 10자리의 고유 ‘아이디 값’(속성명 data-mbrid)이 붙어 있었다. 이 아이디 값이 같은 이용자는 공개된 이름 첫 글자도 모두 같았다. 같은 사람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다.
실제로 아이디 값이 같은 이용자는 댓글 패턴이 비슷했다. 62개의 댓글을 쓴 같은 아이디 값의 ‘민**’이라는 이용자는 ‘좌파’ ‘왜곡보도’ ‘편파방송’ ‘역겹다’는 표현을 자주 쓰면서 수신료 징수 폐지를 주장했다.
대통령실은 지난 5일 국민제안 홈페이지의 투표 결과 96.5%가 찬성했다며 방송통신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에 수신료를 분리 징수하도록 법령 개정을 권고했다. 토론 댓글도 91%가 폐지 혹은 분리 징수를 원하는 내용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의견수렴이 진행되던 당시에도 카카오톡이나 네이버, 페이스북, 구글, 국민신문고 등 각기 다른 아이디로 로그인하면 동일인의 중복 투표가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어뷰징’ 우려가 제기됐다. 댓글 역시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달 수 있어 이론상 무제한으로 작성할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실제 댓글 분석 과정에서 아이디 값은 다르지만 이름이 같고 똑같은 댓글을 쓴 이용자가 여럿 발견됐다. ‘김**’이라는 이름을 쓴 이용자는 서로 다른 아이디 값으로 두 차례 댓글을 달았는데 그 내용이 ‘시청료 강제 징수 절대 반대합니다’로 동일했다. 한 사람이 여러 수단으로 로그인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토론 댓글 작성자가 추천·비추천 투표에도 참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찬반 투표의 신뢰성에도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아이디 값과 이름이 모두 다르지만 똑같은 내용의 댓글도 여러 차례 확인됐다. ‘장**’ 등 10명의 이용자는 “KBS를 수신하지 않은지 오래됐음은 물론이고, 스마트폰 유튜브 ucc ott 등 다양한 방법으로 방송을 이용하고 있는데…”라는 댓글을 똑같이 적었다. 특정 집단에서 댓글 토론을 주도하려 한 것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추천과 댓글 게시량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인 시각이 특정 시간대에 집중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앞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유튜브 ‘배승희 변호사’ 채널에 장예찬 국민의힘 청년 최고위원이 출연해 KBS 수신료 분리 징수 관련 국민제안에 찬성 투표를 독려한 지난 3월29일에 ‘추천’ 숫자가 크게 증가했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댓글도 마찬가지였다. 3월29일 이전 분당 0.6개 정도 올라오던 댓글은 3월29일에 분당 6개까지 증가했다. 다시 한번 독려 방송이 진행됐던 4월5일에도 분당 2.6개, 4월6일에는 분당 4.7개까지 증가했다. 3월29~30일, 4월5~6일에 작성된 댓글은 모두 2만6817개로 전체의 42%에 달했다. 댓글이 가장 많이 올라온 시간대 역시 4월6일 오전 10시47분으로 1분에 33개가 작성되기도 했다. 이 나흘을 제외하면 댓글 작성은 분당 0.9개 정도에 불과했다.
토론 댓글은 추천·비추천 투표와는 다르다. 댓글은 같은 아이디로 한 번 로그인해서 여러 차례 쓸 수 있지만 추천·비추천은 아이디별로 한 차례밖에 할 수 없다. 그러나 토론 댓글이 특정인이나 집단에 의해 상당수 작성되고 있다면 추천·비추천 역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제도 자체의 실효성에 의문이 드는 지점이다.
정용욱 대통령실 국민제안비서관은 “댓글은 토론이기 때문에 주고받으면 무한정일 수도 있어서 중복이라 볼 수 없다”며 “한 사람이 한 번만 달 수 있다고 얘기한 적이 없고, 자신의 의견을 반박하면 그것에 대해 다시 의견을 피력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