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의 감사결과보고서를 최종 의결기구인 감사위원회를 건너뛰고 공개해 논란을 빚었다. 그 후 다시 사무처가 이 사건 주심의 전자결재를 조작했다는 주장이 나와 파문이 커지고 있다. 감사원 사무처가 전산 담당부서를 통해 전 위원장 감사 주심인 조은석 감사위원이 감사결과보고서를 결재한 것처럼 전자결재시스템의 주심위원 결재란에 ‘승인’이 기재되도록 조작했다는 논란이다. 전자정부법상 ‘10년 이하 징역’의 중범죄에 해당하는 전자결재시스템 조작 행위가 다른 곳도 아닌 감사원에서 일어났다면 묵과할 수 없다. 사정 업무를 담당하는 권력기관에서는 있을 수 없는 규정 위반이다. 감사원은 진상을 밝히고 조작 가담자들을 엄중 처벌해야 한다.
전 위원장에 대한 감사는 10개월이나 끌고도 심각한 비위 없이 ‘불문’으로 끝났으니 ‘표적·정치 감사’라는 의심을 벗기 어렵다.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제보를 받았다”며 전 위원장 특별감사에 나섰다가 머쓱해진 감사원이 전 위원장에게 비위가 있는 양 보고서를 ‘분식’하기 위해 주심의 열람권을 ‘패싱’했다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감사원은 “최종 결재 권한은 사무총장에 있어 문제가 없다”면서 오히려 조 위원 등 감사위원들에 대한 감찰을 벌이기로 했다. 경위 조사를 빙자해 조 위원 쪽으로 화살을 돌리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감사원은 행정기관 자료를 영장 없이 받아갈 수 있고, 공무원은 곧바로 인사징계 요구를 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졌다. 그런 만큼 각별한 중립성과 독립성이 요구된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감사원은 노골적인 정치 감사·표적 감사로 ‘정권의 돌격대’라는 불신과 비판을 자초했다. 최재해 감사원장은 “감사원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지원하는 기관”이라며 헌법기관으로서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스스로 무너뜨렸고, 탈원전·방송통신위·KBS·어민 북송사건 등에 대한 편향된 감사로 비판을 샀다. 결재시스템 조작은 감사원이 그나마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까지 넘는 것이다.
이번 사태의 책임은 월권을 일삼아온 유병호 사무총장에게 있다. 감찰 대상은 감사위원들이 아니라 유 사무총장이어야 한다. 많은 시민이 이번 사태를 주시한다. 감사원장은 엄정한 징계·처벌로 기강을 세워 독립된 최고 감사기구의 신뢰 회복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