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중 하나인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미국계 투기자본에 대한 거액의 국가 배상 판정으로 이어졌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는 지난 20일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 절차(ISDS)에서 한국 정부가 엘리엇 매니지먼트에 손해배상과 이자 등으로 약 1300억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엘리엇은 2018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근거해 소송을 제기했다. 느닷없이 거액의 국민 세금이 축나게 된 이번 판정을 보는 심정은 당혹스러움이다.
2015년 삼성물산 1대 주주였던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주가를 저평가한 상태에서 이뤄진 두 회사 합병에 찬성표를 던져 이재용 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도움을 줬다. 이로 인해 국민연금은 손실을 입었고 이 회장은 이득을 얻었다. 국민연금에 찬성표를 던지도록 압력을 가한 혐의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기소됐고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정경유착으로 외국 투기자본에까지 추가로 세금을 내주게 된 것이다. 당시 시민단체들은 부당 합병으로 인한 사법 리스크를 우려하며 국민연금에 반대표를 던질 것을 촉구한 바 있다. 국가 권력의 불투명성은 더 이상 국제적으로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결정이 나온 셈이다. 정확히 누구의 어떤 행위로, 한·미 FTA의 어떤 부분을 위반했기에 막대한 세금을 투기자본에 물게 됐는지 국민들이 알아야 한다. 법무부는 판정문을 공개해야 한다.
대원칙은, 이익은 개인이 취하고 비용은 사회가 지불하는 불공정한 일이 있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 유죄를 받은 이 사건 관련자들에게 구상권을 청구해야 한다. 정부는 이미 ISDS 패소로 미국계 펀드 론스타에 약 3000억원, 이란 다야니 가문에 800억원을 배상해야 한다. 법무부는 무효소송을 제기한다고 하지만 외려 지연 이자만 더 내게 될 위험이 있다. 차제에 한·미 FTA 등의 대표적 독소조항인 ISDS에서 탈퇴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