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25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심판 청구를 재판관 9명 전원 일치 의견으로 기각했다. 헌재는 “헌법과 법률의 관점에서 (이 장관이) 재난안전법과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해 국민을 보호할 헌법상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헌재의 기각 결정으로 이 장관은 곧바로 직무에 복귀했다.
헌재 결정에 유감을 표한다. 탄핵 심판은 엄격한 입증 책임을 요하는 형사재판과 다르다. 헌재의 이번 결정이 건전한 법 상식을 가진 시민들의 판단에 얼마나 부합할지 의문이다. 결국 서울 한복판에서 159명이 사망하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지만 주무장관조차 파면하지 못하는 반민주적인 판례를 남겼다.
이 장관은 이태원 참사 발생을 인지하고도 관용차를 타느라 85분이나 지나 현장에 도착했다. 초기부터 이 장관은 면피성 발언으로 시민의 공분을 샀다. 이 장관은 “경찰과 소방 배치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라고 했다. 유족에게는 “제가 놀고 있었겠느냐”고 항변하는가 하면 “나도 폼나게 사표 내고 싶다”고 했다. 행안부가 유족들 명단을 확보했지만 국회 국정조사 특위에서 명단이 없다고 허위 발언을 했다.
그러나 헌재는 재난 대응의 미흡함을 이유로 책임을 묻는 것은 탄핵심판의 본질에 부합하지 않다고 봤다. 이 장관의 사전 예방조치 의무, 사후 재난대응, 국회에서의 사후 발언 등 모든 쟁점과 관련해 탄핵 사유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 장관의 발언이 부적절하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장관직을 파면시킬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런 논리라면 오송 지하차도 참사로 14명의 무고한 시민이 숨졌지만 충북도지사나 청주시장, 흥덕구청장,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등 어느 누구의 책임도 물을 수 없다.
헌재 선고 뒤 이 장관은 “이번 기각 결정을 계기로 10·29 참사와 관련한 소모적인 정쟁을 멈추고, 다시는 이러한 아픔을 겪지 않도록 우리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어이가 없다. 자숙해도 모자랄 판에 이 장관은 유족과 시민 가슴에 또다시 대못을 박았다.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고 국가의 책임을 따지는 일이 과연 소모적인 정쟁이란 말인가. 대통령실도 “(이 장관에 대한 탄핵 소추는) 거야의 탄핵소추권 남용”이라며 “이러한 반헌법적 행태는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탄핵 청구에 앞서 국회는 이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의결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고교 후배인 이 장관을 두둔하고 제대로 된 대국민 사과도 하지 않았다.
헌재가 이 장관에게 면죄부를 줬지만 국가의 책임까지 면한 것은 아니다. 주권자인 시민은 재난 주무장관의 해태와 무책임을 용인할 수 없다. 이 장관 개인의 법적 책임은 한 고비를 넘었을지 모르지만 윤 대통령의 정치적·윤리적 책임은 더 커졌다. 국회는 특별법 제정을 통해 이태원 참사 발생 전 단계부터 정부 대처까지 전 과정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자에게 응분의 죗값을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