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불복 재판으로 다시 트럼프 만나게 된 ‘트럼프 천적’ 판사

2023.08.03 15:00 입력 2023.08.03 20:27 수정

타냐 처칸 워싱턴 연방법원 판사. AP연합뉴스

타냐 처칸 워싱턴 연방법원 판사. AP연합뉴스

“대통령은 왕이 아니며, 원고는 대통령도 아니다.”

약 2년 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향해 이렇게 말하며 강하게 질책한 이 판사는 ‘2020년 대선 불복’ 사건 재판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다시 한번 마주하게 됐다. 그는 2021년 트럼프 전 대통령이 1·6 의회 폭동 사태 진상 조사에 필요한 백악관 문서 공개를 금지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하자 이를 기각하면서 판결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1일(현지시간) 대선 결과를 전복하려 한 혐의로 세번째 기소되자 외신들은 이번 사건의 담당 판사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이미 여러 차례 ‘악연’이 있는 워싱턴 연방 지방법원의 타냐 처칸 판사(61)다.

처칸 판사는 1·6 의회 폭동을 일으킨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중형을 선고한 것으로 유명세를 탔다. 그는 당시 일부 피고인들에게 “질서있고 평화로운 권력 이양을 막고, 폭력적으로 정부를 전복하려는 시도는 반드시 처벌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면서 검찰 구형보다 더 무거운 형을 선고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당시 판결과 관련해 처칸 판사를 “가장 엄격한 선고를 내린 판사”라고 평가했다.

자메이카 수도 킹스턴에서 태어난 처칸 판사는 대학 진학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조지워싱턴대와 펜실베이니아대 로스쿨을 거쳐 10년간 워싱턴에서 국선 변호인으로 근무했다. 이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지명으로 2014년 워싱턴 연방 판사에 임명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 취임 이후 처칸 판사는 트럼프 행정부와 대립하는 진보적 판결을 여러 차례 내려 눈길을 끌었다. 2017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일원이라는 의혹을 받은 미국 시민이 이라크에 구금된 사건과 관련해 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과 달리 피고인이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다. 또 미등록 체류자인 10대 임신부들이 임신중단 관련 서비스에 접근하는 것을 막으려는 트럼프 행정부를 저지하기도 했다. 2019년에는 사형을 재개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계획을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려 4명에 대한 사형을 막았다.

처칸 판사가 트럼프 전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부터 공격해온 이민자·여성·흑인의 정체성을 모두 가진 인물이란 점도 주목할 만하다. 처칸 판사는 연방법원에 게시된 프로필에서 “피부색 때문에 악의적인 비판에 직면할 때, 마음이 심란해지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이민자, 여성, 흑인이란 요건은 항상 비판의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에 얼굴이 두꺼워져야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동안 인종이나 출신 등으로 판·검사들을 공격해왔다. 그는 2016년 트럼프 재단의 사기 소송 재판을 맡은 곤살로 큐리엘 판사를 향해 “멕시코 혈통을 가졌기 때문에 나에게 불리하게 재판을 이끌었다”고 주장했다. 최근에도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앨빈 브래그 맨해튼 검사장, 파니 윌리스 조지아주 검사장, 레티티아 제임스 뉴욕주 검찰총장 등 자신을 수사하는 흑인 검사들에게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일삼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일단 처칸 판사를 최대한 피하려고 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측은 워싱턴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옮겨 재판을 받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 헌법상 재판은 범죄가 발생한 지역의 관할 법원에서 받게 돼 있기 때문에 장소 변경 요구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적다고 WP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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