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있는 독립영웅 5인의 흉상을 철거·이전한다고 해 논란이 일고 있다. 그 자리에 국가보훈부가 ‘친일’ 기록을 삭제해준 백선엽 장군 동상과 한·미 동맹 공원을 세우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가 국군의 뿌리인 독립군의 역사마저 지우려는 것인가. 역사인식 문제 이전에 헌법 정신마저 부정하려는 모습이 개탄스럽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지난 25일 국회에서 “육사에 공산주의 활동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되느냐에서 (이 논의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5인 중 홍범도 장군(1868~1943)의 1920년대 소련 국적 취득 및 공산당 가입 이력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일제 식민지배에 저항하고 싸운 선조들은 1945년 8월15일까지 독립될 조국의 정체가 자유주의 국가일지, 공산주의 국가일지 알지 못했다. 각자 서 있는 자리에서 최선이라고 믿은 길을 택했을 뿐이다. 국방부 논리대로라면 해방 정국에서 남로당 조직책으로 활동하며 육사 전신인 국방경비대 제1연대 장교양성소를 좌익 장교들의 온상으로 만든 박정희 전 대통령 흔적도 지워야 할 것이다.
정권이 역사 해석에서 자신의 이념적 지향을 반영하려는 게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윤석열 정권의 행보는 결국은 모두 실패한 이명박 정권의 건국절 제정, 박근혜 정권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의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지금 윤석열 정권의 모습은 한국 사회에 확립된 ‘해방 전 독립운동’의 공감대마저 깨려 한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1962년 박정희 대통령은 홍 장군에게 건국훈장을 추서했고, 2021년 홍 장군 귀환·유해 안장식엔 국민의힘 대표도 참석했다. 그때는 독립운동 헌신을 앞세우고, 지금은 소련 공산당 가입을 문제 삼는 이중적 잣대가 아닐 수 없다.
윤 대통령은 지난 25일 국민통합위원회 회의에서 “오른쪽 날개는 앞으로 가려 하고 왼쪽 날개는 뒤로 가려 한다면 그 새는 날 수 없고 떨어지게 돼 있다”고 말했다. 과연 누가 뒤로 가려고 하는지는 시민들이 판단할 것이다. 정권이 앞장서서 정부와 반대되는 목소리 자체를 공산주의와 연결지으며 부정하는 것은 합리적 토론을 차단하는 태도이다. 정부가 ‘공산주의 척결’을 외치지 않아도 선현들의 독립운동 평가는 시민들의 자유롭고 상식적인 토론장에서 먼저 걸러진다. 윤석열 정권이 역사에 대해 보여주는 과도한 이념적 재단과 편가르기는 한국 사회의 성숙·통합과도 반대로 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