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심사위원장 김형석, 위원 이상호·정민아) 수상작에는 이병현 평론가의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박찬욱 선언문’이 선정됐다.
이 상은 박인환 시인(1926~1956)의 문학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20년 제정됐다. 강원 인제군과 인제군문화재단, 경향신문, 박인환시인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공동 주관한다.
시 부문 상금은 3000만원, 영화평론은 500만원이다. 시상식은 16일 인제군 박인환문학관에서 열린다.
박인환문학상 영화평론 부문 수상작인 이병현씨의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박찬욱 선언문’은 “수많은 평론에서 다룬 박찬욱이라는 감독의 작품 세계를 또 하나의 새로운 시선”으로 다뤘다는 평(심사위원장 김형석, 심사위원 정민아·이상호)을 받았다.
‘새로운 시선’은 ‘개미’ ‘카메라’ ‘거울’이라는 모티브로 글을 풀어간 점을 두고 한 평이다. <공동경비구역 JSA> 후반부 오경필(송강호)이 자신의 손가락 위를 기는 개미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복수는 나의 것>에선 영미(배두나)가 류(신하균)에게 “너는 개미 같은 녀석”이라며 개미는 예지력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올드보이>에선 오대수(최민식)가 개미 환각을 보고, 미도(강혜정)는 “가장 외로운 사람만 개미를 본다”고 말한다. 미도의 전철 장면에는 거대 개미가 등장한다. <헤어질 결심>에선 기도수(유승목) 눈알 위를 기는 개미가 나온다.
이씨는 개미 등 곤충 이미지가 “시체나 죽음과 깊게 결부”된 것으로 보며 “죽음을 응시와 동일시하는 상징” 등으로 해석한다. ‘박찬욱의 카메라’는 “계약을 이행하면 관객의 영혼을 속박하려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로, 거울은 “박찬욱 영화는 보는 이에 따라 모습을 바꾸는 거울과 같은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분석한다.
이씨는 e메일 인터뷰에서 “평론을 준비하며 박찬욱의 모든 작품을 최소한 두 번 이상 다시 봤다”고 했다. <올드보이> 등 ‘복수 3부작’은 “찝찝한 기분이 얼룩”처럼 남아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영화였다고 한다. “막상 계속해서 보다 보니, 또 그렇게까지 불편한 마음이 들진 않더군요. 박찬욱 영화와 화해하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왜 박찬욱 영화를 비평 대상으로 삼았을까.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이 개봉한 이후 박찬욱에 대한 말과 글이 많이 나왔는데, 그중에서 제 마음에 쏙 드는 글이 없어서 직접 쓰게 됐다”고 말했다. “제가 ‘작가’라고 인정하는 한국 영화감독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편인데, 시간을 들여서 그 모든 작가에 대한 감독론을 쓰고픈 욕심이 있습니다. 그중 첫 번째로 박찬욱을 선택한 것입니다.”
장르는 SF, 감독은 존 포드나 구로사와 아키라를 좋아한다고 했다. 2019년 <종의 전쟁> 등 <혹성탈출> 리부트 시리즈를 분석한 ‘0과 1이 된 링컨과 릴리안 기쉬’로 부산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됐다. 이 평론을 두고도 “제대로 맥을 짚는 평론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항변하려고 평론을 썼다. 최소한 한국어와 영어로 된 평론 중에는 제가 쓴 글 만큼 ‘혹성탈출’ 리부트 시리즈에 대해 제대로 잘 다룬 글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제가 쓰는 모든 글이 쓰나 마나 한 글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는 소리입니다. 또 그런 확신이 들 때만 글을 열심히 쓰는 편입니다.”
이병현은 대중영화 개봉작, 독립예술영화 개봉작, 영화제와 시네마테크 영화에다가 IPTV 직행 영화, 고전영화까지 틈이 나는대로 챙겨보는 영화 마니아였다고 한다. “지금은 유튜브 운영을 위해 간간이 일반적인 멀티플렉스 개봉작만 챙겨보는 수준입니다. 독립예술영화 중에서는 최근 화제가 된 영화 아니면 제가 원래 좋아하던 감독의 영화 정도만 간신히 보는 수준이고요. 일반적인 대중보다는 영화를 많이 보겠지만, 영화평론가치고는 게으른 편이다,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이씨는 앞서 수상소감에 “생존신고. 전화로 수상 소식을 전달받았을 때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다. ‘그래도 생존신고는 했구나’ 안심이 되는 한편 씁쓸하기도 했다”고 썼다. 2019년 등단 이후 글 청탁을 거의 받지 못한 처지를 두고 한 말이다. 발표 글이 없어 청년예술인 활동증명기간도 만료됐다고 했다. “즉, 예술인 복지사업 시스템에 따르면 나는 공식적으로 예술인이 아닌 셈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어쩔 수 없는 자리에서조차 스스로 작가라 자칭할 때마다 부끄러웠다. 이제는 좀 덜 부끄러워해도 되겠다 싶다”고 썼다.
등단 뒤 일종의 무직 상태가 이어진 게 가슴에 많이 맺힌 듯했다. 영화평론계와 등단 제도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제가 불만을 가진 시스템은 등단시켜놓고 육성할 생각은 전혀 없는, 이 소위 ‘영화평론계’라는 시스템입니다. 어차피 수요도 없는 곳이라 신인 영화평론가가 감당이 안 된다면, 쓸데없이 등단은 왜 시키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씨는 여러 사람과 팀을 이뤄 영상 비평 유튜브 ‘크리틱스컷’(https://www.youtube.com/channel/UCxUYhpFSvLdip0Br8ulGOKA)을 함께 운영한다. “최근엔 영화평론을 읽는 사람은 거의 없고, 유튜브 영상 보는 사람이 더욱 많은데, 저는 사람들이 흔히 보는 그런 영상에 불만이 많은 성격 이상한 사람인지라 유튜브 영화리뷰 생태계에 혼란을 일으키는 메기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평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씨는 “가장 그럴듯한 오답”이라고 답했다. “조금이나마 영화사에 기여하는 글이면 좋겠다고 빈다”고도 했다. 최근 직장을 구했다고 한다. “글쓰기를 ‘병행’하는 것이 아니라 ‘전업’으로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꿈꾸고 있긴 합니다. 저 혼자 꿈만 꾼다고 이뤄질 일은 아니지만요. 일단 열심히 써봐야죠.”